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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by 답설재 2014. 12. 10.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오근영 옮김, 걷는나무, 2014

 

 

 

 

 

 

 

또 뭘 읽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목이 저렇게 좋은 책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긴 하지만, 읽으며 "처세서" "자기계발서"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만사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필자 소개에서,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키우는 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장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를 즐기는,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공부" 하면 학력(學歷)을 중시하는 이 나라에서는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 혹은 대학입학시험이 떠오르는데 그런 공부, "당장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를 즐기는 공부,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그 조건만으로도 행복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건 아닙니까? 그런 공부, 대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부나 하고 있는 신세라면, 이미 볼장 다 본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생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공부라고 해두겠습니다. 아무리 무책임한 얘기라 하더라도 일단 좀 현실적이어야 한다면 이번에는 "노인들에게 해당하는 공부"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해서 별로 더 써먹을 일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이걸 배워라", "이건 꼭 알아두어야 한다"고 다그치고 억누르는 사람도 없는 노인들의 공부…….

 

"노인들의 공부"라고 하니까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키운다"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하라"는 말이 걸립니다. 노인에게 무슨 위기이고 깊어져야 할 삶의 호흡이란 말인가, 싶은 것입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방법은 오직 공부뿐이다"

프롤로그의 내용입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날, 마치 손이 저절로 글을 쓰듯 막힘없이 새로운 논문을 완성하던 날, 존경해 마지않는 선생의 강연을 듣던 날"이 '오늘 하루는 정말 후회 없이 충실하게 보냈다'고 느꼈던 때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큰 병을 앓으면 이 정도의 생각이나 다짐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어처구니없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나 했습니다. '자꾸 이렇게 실려오다가 어느 날 정리도 못하고 영영 끝나는 것 아닐까?'

 

 

 

 

 

 

"오직 공부뿐"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누누히 설명합니다.

 

가령, 바쁘게 살다 보면 일상의 리듬에 취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큰 병을 앓거나 죽음 앞에 설 때처럼 일상을 낯설게 볼 필요가 있으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묻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이 바로 '공부'라고 설명합니다.(53~54)

 

또, 자기계발에 뛰어든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면서도 무언가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느끼는 현상이 있는데, 이 악순환을 벗어나려면 지금까지 해 왔던 공부와 다른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해야 하며, 문학, 철학, 사학, 물리학, 수학, 음악, 미술 등 순수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바로 이런 공부라고 했습니다.(61~62)

 

글쎄요, 당장 눈앞의 일보다는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부터 하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내용인가 하면 뒷표지에 잘 요약되어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재수생으로 외롭게 살아갈 때 자존감을 다시 세워 준 것도 공부였고, 미래가 막막하기만 했던 대학원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것도 공부였다. 또 큰 병을 앓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할 때 후회 없이 인생을 사는 방법으로 찾아낸 것 역시 공부였다. 똑같은 실패를 겪어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의 미래는 완전히 다르다. 책에 담긴 지혜와 지식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생각하는 법을 길러 주며, 어떤 위기와 혼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이 되어 방황하지 않고 인생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공부를 멈추지 마라. 하루 온종일 책을 읽고 공부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늘 하루는 이걸 배웠지' 하는 정도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지혜를 얻었다는 기쁨을 만끽하자. 이렇게 공부가 인생의 축이 된다면 그 인생은 죽는 마지막 날까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 내용을 친절하게, 누누히 설명하려고, 필자의 온갖 경험과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은, 극히 상식적인, 그래서 좀 식상하게 된 사례들을 들어 공부 혹은 독서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가령 유대인은 전 세계 60억 인구의 0.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30퍼센트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민족이라는 평을 듣는다는 것, 그런 유대인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오늘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니?"라는 것(153~154)……

 

한 가지만 더 예를 들면, 졸업을 앞두고 취직을 하기 위해 무려 50군데나 원서를 낸 제자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혜를 알려 주는 책이 단 한 권이라도 있었다면 그가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하고(73), 그처럼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만한 고전으로, 다이쇼, 쇼와 시대를 살면서 일본의 근대 자본주의의 기반을 닦은 기업인 시부사와 에이치가 항상 곁에 두고 인생의 답을 찾고자 했다는 『논어』를 예시했습니다.

 

『논어』…… 좋은 책이죠. 책을 본 적도 없는 사람도 좋은 책이라는 건 알고 있는…….

 

 

 

 

 

 

'세상에 쓸모없는 공부란 없다' '공부하는 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이야기하고, 공자와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울 것들을 설명해 줍니다.

'하필이면 공자와 소크라테스인가.' 했는데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먼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공부의 원칙을 통해 우리는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할지,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123~138)

 

1. 스스로 공부하라.

2.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라.

3.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또 『향연』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토론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148~162)

 

1. 토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평등한 활동이다.

2.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3. 토론은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 아니다.

 

 

 

 

 

 

호흡이 긴 공부.

그게 진짜 공부라면, 그럼 초·중·고등학교 12년을 다니며 하는 공부는 어떤 공부인지, '호흡이 긴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기에 무슨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인지, 필자의 견해를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필자와 생각이 달라서 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설명할는지, 가령 "그건 기초·기본에 관한 공부니까, 그것 역시 중요하다"고 얼버무리고 말는지, 아니면 예상 외의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는 의미입니다.

 

필자가 보면 혹 섭섭할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83)라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배우는 기쁨을 알면 혼자 남는 고독한 시간도 견딜 수 있게 된다. 현대인은 유난히 고독을 두려워한다. …(중략)… 공부하는 삶을 살게 되면 나만의 공부에 빠져들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반갑게 느껴진다.(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