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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691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Ⅳ - 만남, 그리움 『현대문학』에 연재되고 있는 이 소설의 한 부분입니다. 질베르트의 출현과 산사꽃 …(전략)… 생울타리 틈으로 정원 안의 오솔길이 하나 보였는데 그 길가에 피어난 재스민, 팬지, 마편초 사이로 꽃무들이 열어 보이고 있는 신선한 주머니는 옛 코르도바산 가죽으로 지은 향긋하고 빛바랜 장밋빛인데, 한편 자갈 위에는 초록색의 물 호스가 풀어져서 길게 뻗어 있고 그 뚫어진 구멍들에서 꽃잎들 머리 위에 다채로운 작은 물방울들이 뿜어나와 프리즘 같은 수직의 부채를 만들어 세우며 꽃향기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만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치 어떤 환영이 나타나서 단지 우리의 시선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지각을 요구하고 우리의 존재를 송두리째 다 손아귀에 넣어버렸.. 2009. 12. 23.
아티크 라히미 『인내의 돌』Ⅱ 아티크 라히미Atiq Rahimi․ 『인내의 돌Syngue Sabour: Pierre de Patience』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2009. ♧ 처음 한 부분 이 사진 맞은편, 벽 아래쪽에 같은 남자가, 사진보다 나이 든 모습으로 바닥에 놓인 메트리스 위에 길게 누워 있다. 턱수염을 길렀다. 수염이 희끗희끗하다. 사진보다 말랐다. 너무 말랐다. 가죽밖에 안 남았다. 창백하다. 주름투성이다. 코는 사진보다 더 독수리 부리를 닮았다. 여전히 웃지 않는다. 계속 비웃는 듯 야릇한 표정이다. 입은 조금 벌어져 있다. 사진보다 한층 더 작아진 두 눈은 눈구멍 속으로 움푹 들어가 있다. 시선은 한사코 천장에만, 뚜렷하게 드러난 꺼멓게 변하고 썩어가는 대들보 사이에만 고정되어 있다. 두 팔을 몸에 붙인 채 힘없이.. 2009. 12. 19.
아티크 라히미 『인내의 돌』Ⅰ 아티크 라히미Atiq Rahimi․ 『인내의 돌Syngue Sabour: Pierre de Patience』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2009. 이런 헌사가 적혀 있습니다. "남편의 손에 야만적으로 살해된 아프가니스탄 시인 N.A.를 추모하면서 쓴 이 이야기를 M.D.에게 바친다." 『현대문학』2009년 10월호에는 이 모티브를 포함하여 자세한 내용들이 소개되었습니다.1 나는 이 구석에 갇혀 있다. 우울하고 슬픔으로 가득하여 나는 날개가 접혀 날 수도 없다. 나는 아프칸 여자다, 목 놓아 울어야 하는. 위의 시는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여성 시인 나디아 안주만Nadia Anjouman의 가잘(서정시)인데, 여기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한다. 이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아주 평범한.. 2009. 12. 18.
놀라운 백남준 놀라운 백남준 ‘복합매체’에 대한 백남준의 글이 있어 옮깁니다. 그는 박식해서 특유의 논리를 전개했지만, 저로서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머리말만 옮기게 되었습니다. 노버트 위너와 마샬 맥루한 1.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취미인 .. 2009. 12. 16.
E. 슈프랑거 『천부적인 교사』 『천부적인 교사』 E. 슈프랑거·金在萬 譯, 『천부적인 교사』(배영사, 1983 重版) E. 슈프랑거는1 "천부적인 장군과 마찬가지로 천부적인 교사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미 서론에서 충분히 설명됩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14)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 치고 정열 없이 성취된 것은 없다」고 한 헤겔의 말 가운데서 정열이란, 말하자면 전체적인 정신활동으로부터 개인에게 분여(分與)된 정신의 부분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하찮은 개인의 생활이 세계정신의 큰 업무에 참가할 때는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자기의 행복에의 추구가 어느 정도까지 달성된다. 이것이 곧 「이성이란 이름의 술책(狡智, 策略)」인 것이다. 이 술책이 정열을 움직여서 그의 세계정.. 2009. 12. 14.
『오래된 미래』Ⅱ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김종철․김태언 역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녹색평론사, 1996 인용한 부분들에서 이미 이 책의 메시지 전체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의 관점들에서 다음과 내용들은 특별히 눈길을 끄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서구의 교육은 1970년대에 라다크의 마을들에 들어왔다. 오늘날 약 200개의 학교가 있다. 기본적인 교과과정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가르치는 것을 어설프게 흉내낸 것이고, 그것은 또 영국 교육의 어설픈 모방이다. 거기에는 라다크의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한번은 레에서 어느 교실에 가보았을 때 교과서에 런던이나 뉴욕의 것임직한 아이의 침실 그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림에는 깔끔하게 접혀진 손수건 무더기가 기둥 달린 침대 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2009. 12. 10.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Ⅰ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김종철·김태언 역, 녹색평론사, 1996 지난 11월, 베이징에 갔을 때 우리를 안내한 인민교육출판사 직원은, 중국의 여러 관광지 이야기를 하면서 열차로 48시간이면 티베트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득『닥터 지바고』가 생각났습니다. 몇 날 며칠이고 끝없이 달린다는 러시아의 그 대륙 간 횡단열차……. 베이징에서 48시간이면 티베트까지도 갈 수 있다는 중국의 그 칭짱열차에 대한 책도 나왔습니다. 신문에 소개된 글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시작됩니다.* ‘길이 열린다면, 정말 친한 벗 혹은 최악의 적들이 우리의 방문자가 되리라.’(티베트 격언) 2006년 7월 1일, 티베트 고원 지대에 칭짱(靑藏) 철도가 개통됐다. 칭하이(靑海)성 거얼무(格木).. 2009. 12. 10.
『앞으로 50년』Ⅱ 존 브록만 엮음 / 이한음 옮김 『앞으로 50년 The Next 50 Years』 생각의나무, 2002 『앞으로 50년』을 소개할 때 인용한 신문기사의 뒷부분도 옮깁니다(오창규 논설위원 「매직미러」 『문화일보』 2009. 11. 25). 잘 정리된 그 글의 뒷부분을 그냥 감추고 가기가 어려워서입니다. 또 신문기사라면 '정말이구나, 현실이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을 한번 확인해보는 것은 『앞으로 50년』을 음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는 '매직미러'가 교실에 본격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교실의 벽은 콘텐츠를 담은 매직미러로 돼 있어 평상시에는 거울로 활용하다가 사람이 다가서거나 손으로 건드리면 적외선 센서가 이를 확인하고 시간표나 수업 과제물 등 다양한.. 2009. 12. 1.
존 브록만 엮음 『앞으로 50년』 존 브록만 엮음『앞으로 50년 The Next 50 Years』 이한음 옮김, 생각의나무, 2002 우리가 아직 교사와 교실과 교과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50년 뒤에는 거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가 교육 개념을 바꾸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왜 수능 성적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왜 답을 암기하는 것이 지능의 증거라고 생각했는지 물을 것이다.1(301) 이 글을 여러 번 인용하면서, 사실은 게름직하기도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분 중에는 앞으로 50년 정도 더 살아있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그렇게 떠들더니……." 그러면 죽어서라도 제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거든요?2 미래의 교실에는 연.. 2009. 11. 29.
존 테일러 개토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개토 씀․ 김기협 옮김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Dumbing Us Down 바보 만들기』 민들레, 2005 책을 들자마자 밑줄부터 긋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말', '펴낸이의 말', '한국어판 펴낸이의 말'에서 이미 몇 군데나 그었고, '들어가는 말'에서는 더 많이 그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옳게 읽고 있는가?' 싶어서 그때까지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말하자면 어쭙잖은 책에 이렇게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스스로 좀 부끄러울 일 아닌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부터 옮겨보겠습니다. 토마스 무어가 2001년에 쓴 머리말에서 벌써 세 군데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존 개토가 통쾌하게 비판하는 완고한 관료주의의 앞에서 좌절감을 겪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동.. 2009. 11. 18.
『社會科敎育 핸드북』 H.D.Mehlinger․鄭世九 外 共著(譯),『유네스코 社會科敎育 핸드북』(교육과학사, 1984) 6학년 경주 수학여행을 취소하고 교실에서 가상여행을 하기로 하는 과정에서 6학년 조근실 부장선생님과 대담하며 생각난 책입니다. 저는 비교적 늦게 사회과교육을 ‘조금’(석사과정뿐이므로 정말로 .. 2009. 10. 23.
『국화와 칼』Ⅱ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94(초판 16쇄) 어쭙잖은 책을 쓰며 루스 베네딕트를 이렇게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정을 얻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이 글의 '일본인'에 '한국인'을 대입해보면, "이건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관찰력, 사고력, 창의력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과 같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는 딱 한 번만 써서 수정 없이 .. 2009.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