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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Moderato Cantabile』

by 답설재 2011. 10. 21.

마르그리트 뒤라스/정희경 옮김

『모데라토 칸타빌레 Moderato Cantabile』

(문학과지성사, 2009, 1판6쇄)

 

 

 

 

 

 

 

  외간남자는커녕 '외출'이라는 단어조차 몰랐을 것 같은 숙녀가 있습니다. 그녀가 어느 날 '죽음으로써 완결되는 절대적 사랑'을 찾아나선다면, 소설은 포르노처럼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그런 소설을 쓴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실화가 아닌 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안 데바레드는 소도시 공장주의 아내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10년 전 결혼한 이래 남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는 완벽한 처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판에 박은 듯한 삶을 살고 있으며, 모든 일이 그녀의 존재 범위 밖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정원수 한 그루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그렇지만 목련꽃 피는 초봄이면 그 짙은 향기로 몸살을 앓고, 잠못 이루는 밤이면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일에서부터 일탈의 마음이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그녀는 라메르 가의 적막한 그 저택을 벗어나 그녀에게만은 금지된 구역이나 마찬가지인 곳, 하늘이 온통 매연으로 뒤덮인 공장 지대에서 가까운 곳, 늘 시끌벅적한 부둣가가 바라보이는 동네에서 아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합니다. 물론 그녀는 매번 아들을 따라나섭니다.

  곧 그녀는 죽음으로 실현되는 절대적 사랑의 장면으로 여겨지는 살인 사건(사내가 여인의 뜻에 따라 그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여인을 애무하는 광경)을 보게 되고, 억눌러 왔던 본능에 눈을 뜹니다. 사랑의 광기로 관통된 그 죽음은, 그녀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유혹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살인 사건 속의 완전한 사랑, 절대적 사랑을 재현해 보려는 안 데바레드의 내적 모험이 시작됩니다. 상류층 주거지 반대편 공장 지대의 카페를 드나들며 쇼뱅이라는 노동자를 만나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면서 그와 함께 살인 사건의 두 주인공 역할을 재현하려고 한 것입니다.

  안과 쇼뱅은 서로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상상과 허구 속에서 그 살인 사건의 남녀가 느꼈을 사랑의 극치를 되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말하자면 '그 두 남녀는 이렇게 느꼈을 것'이라는 상상과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고 싶은 욕망을 느낀 것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절대적 사랑을 재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쇼뱅)

  "그대로 되었어요."(안)

 

  마침내 그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그러나 안과 쇼뱅의 그 모험은, 철저히 대화(언어의 유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실제로는 겨우 두어 번 그것도 잠깐 스쳐가듯 서로의 차가운 손을 잡은 일, 단 한 번 차가운 입술을 스쳐본 일밖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차디찬 그들의 입술은 조금 전 그들의 손과 같이 죽음의 의식을 따라 서로 포개진 채 떨면서 그렇게 머물렀다."

 

  그러나 그 대화는 참으로 섬세해서 한 마디 한 마디에 내면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가령 쇼뱅은 처음에는 안에게서 느끼는 호기심을 채우고 싶고, 안은 처음부터 그 절대적 사랑의 실체를 찾는데 온 힘을 다합니다.

 

  "전 라메르 가 가장 끝 집에 살아요. 시내 쪽에서 보아 제일 마지막 집이죠. 모래 언덕 못미처."

  "철책 왼편 모퉁이에 있는 목련꽃이 한창 만발했더군요."

  "그래요. 해마다 이맘때면 목련꽃이 정말 대단해요.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죠. 그런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앓아 눕는답니다. 창문을 닫아보기도 하지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부인께서 시집온 집이 바로 그 집이죠? 지금부터 10년 전에 말입니다."

  "거기예요. 제 침실은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2층 왼편에 있답니다. 지난번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가 여자를 살해한 것은 여자가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면 그 여자 뜻을 따른 거라고 말이에요."

  그가 이 말에는 대답을 안 하고 머뭇거리더니 나중에는 여자의 어깨선에 눈길을 주면서 시간을 끌었다.

  "요즘 같은 계절에 창문을 닫으면" 하고 그가 말했다. "더워서 잠을 잘 못 이룰 텐데요."                       (47~48쪽에서)

 

 

 

 

  이처럼 섬세한 대화 때문에 8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이 소설은, 단숨에 읽힙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이런 의문은 남습니다. '죽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절대적 사랑의 실체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을 의식한 듯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처음으로 밝히는 것인데,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나는 비밀스레 겪어낸 개인적 체험을 전달하려 했어요. 하지만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을까 두려워 이 경험 주변에 벽을 쌓고 거울로 둘러놓았지요. ……"

 

  그러니까 이 소설은 더욱 흥미롭게 읽힐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책 날개에는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1914~1996)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법학, 정치학을 공부하였다.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극작가, 영화 감독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활동 속에서 특별한 자기 세계를 쌓아올렸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사이공에서의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중국 청년과의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연인』으로 콩쿠르 상을 받았다. 50여 년에 걸쳐 70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했고, 대표적인 소설 작품으로는 『태평양을 막는 제방』 『작은 공원』 『지브롤터의 선원』 『모데라토 칸타빌레』 『연인』 『롤 V. 슈타인의 황홀』 등이 있다.

 

 

 

 

  그녀의 교육관이 보이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아이는 화가 난 지로 선생이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 몸을 돌려 피아노와 마주했지만 잠자코 손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있을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완벽한 모범생 같은 태도였지만, 연주를 하지는 않았다.  "어쩜 이럴 수가, 이건 너무하는구나."  "애들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한 건 아니죠"하고 엄마는 또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피아노까지 배우라고 성화니,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지로 선생은 어깨를 으쓱할 뿐, 그 여자에게도, 특별히 어느 누구에게도 대꾸하지 않았다. 평정을 되찾은 선생이 혼자말처럼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애들이란 어른들이 결국 화를 내게 하고야 만다니까."  "하지만 저 애도 언젠가는 음계를 알게 될 거예요"──안 데바레드는 용기를 내어 계속했다──"박자만큼이나 완벽하게 알게 될 겁니다. 틀림없이 지긋지긋할 정도로까지 말이에요."  "부인의 가정 교육 방식은 정말 끔찍하군요." 지로 선생이 고함을 쳤다.  그 여자는 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잡아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자기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아이는 눈을 내리깔았다.

                                                                                                                                                                                         (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