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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by 답설재 2011. 11. 8.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 인》

김인환 옮김, 민음사, 2011

 

 

 

 

 

 

 

 

 

 이 작가는 1996년 초봄에 사망했는데 그 즈음 『이게 다예요』라는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작가인가 싶어 그 얄팍한 책을 구해 보고 실망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게 다라니! 도대체 무슨 얘기야?' 그러나 그 독후감은 작가를 몰랐던 데서 비롯된 실망이었을 것입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 작품 『연인』(1984)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콩쿠르 상을 받았고, 1986년에는 "영어로 출간된 올해 최고의 소설"이라는 찬사와 함께 리츠파리헤밍웨이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 이른바 '성적 수치심' '에로이즘' 같은 건 해당되지도 않는다 해도 - 그 적나라한 감정 표현 떄문에 중·고등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도차이나(베트남) 현지인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어머니는, 재혼한 남편조차 세상을 떠나자 살림살이와 세 자녀가 중압감을 주어 성격이 사나워집니다. 믿을 사람이라고는 장남밖에 없지만 그 장남은 어머니의 그 편애를 이용하여 난폭하게 굴고, 소녀와 작은오빠는 '피지배 계급'이 되어 버립니다.

 

소녀는 어머니와 큰오빠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합니다. 열다섯 살의 이 소녀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때 부유한 집안의 중국인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 남자를 사랑하거나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아무런 생각이나 설명도 필요 없이 그 만남에 빠져들었고, 어머니의 욕설이나 주위의 따돌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섹스 행각을 벌입니다.

 

그러다가 소녀는 아무런 미련없이 헤어져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고, 어느 날 그 배의 중앙 갑판 응접실에서 울려 퍼지는 쇼팽의 왈츠를 들으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콜랑에 두고온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해 하면서도 이제 그 남자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들리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소설은 흐름은 느리지만 문장의 호흡이 짧아서 세부적인 묘사에 긴장감을 느끼게 되고, 한 문장도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문장이 짧다는 건 다음과 같다는 뜻입니다.

 

마리클로드 카펜터. 그녀는 미국 여자였다. 내 기억으론 보스톤 출신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눈은 매우 맑고 잿빛이 감도는 파란색이었다. 1943년이었다. 마리클로드 카펜터는 금발이었다. 그녀는 젊음이 지나고 이제 막 초로에 접어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예쁘게 느꺼진 것 같다. 그녀의 미소가 금세 피어올랐다 곧 사그라지는 모습은 번개가 치는 것과도 같았다. 문득 그녀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고음이 되면 약간 갈라지는, 낮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벌써 마흔다섯, 먹을 만큼 먹은 나이였다(78).

 

이 부분으로 실감하지 못하겠다면 이 소설의 전형적인 표현을 인용할 수도 있습니다.

 

엘렌 라고넬의 몸은 풍만하고, 여전히 순결하다. 피부는 마치 과일들의 속살 같아서 피부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다. 엘렌 라고넬. 그녀는 죽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두 손으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야릇한 몽상을 하게 한다. 그녀는 밀 꽃처럼 아름다운 자신의 몸매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내고 있다. 손으로 만져 보고 싶고, 입에 넣어 보고 싶게 만드는 그 몸매를 감추지도 않고 내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전혀 알지 못한다. 자기 몸이 가지고 있는 경이로운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매일 저녁 가는 그곳, 신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심오해지는 중국인 도시의 그 방에서 그가 나의 가슴을 먹듯, 나는 엘렌 라고넬의 젖가슴을 먹고 싶다. 그녀의 밀 꽃 같은 젖가슴을 삼켜 버리고 싶다(89).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표현은 지극히 섬세합니다.

 

거리에는 살아 있는 물결처럼 혼잡함이 모든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중국인 무리는 쫓겨나 방황하는 개들처럼 지저분하고 거지들처럼 맹목적이다. 이제는 풍요로운 그들의 모습 속에서도 나는 당시의 이미지를 문득 다시 보곤 한다. 결코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한데 섞여 걷고 있던 그들. 아무런 행복도, 슬픔도, 호기심도 없이 혼잡한 무리 속에서 각자 홀로 있는 것 같은 표정들. 어딘가 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갈 계획도 없어 보이면서 다만 어슬렁거리기 위해 걷고 있는 것 같은 그들. 혼자인 동시에 무리에 끼여 있고, 항상 모여 있으면서 절대로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그러면서도 늘 무리 속에서 고립된 존재들로 있는 그들(59).

 

롤랑의 그 연인은 사춘기의 이 백인 소녀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몰두했다. 매일 밤 그녀와 함께 추구하는 희열이 그의 모든 시간을, 그의 인생을 구속했다. 이제 그가 그녀에게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그 자신도 아직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는 그 사랑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는 그들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눈 말이라고는 밤마다 침실에서…(후략)…(117).

 

 

 

 

이 소설은 물론 '연인'에 대해 썼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원초적 '슬픔'에 관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지만 이런 부분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난파선 같은, 비탄의 장소이다. 그는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만약에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자신을 억제하려 애쓰는 것을 본다. 이윽고 그는 어머니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걸 수치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는 결혼을 하게 될 경우 그런 선입관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를 본다. 그도 나를 본다. 그는 담담하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중국인이야." 우리는 마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에게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냐고 묻는다. 그는 우리가 한참 더운 대낮에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또, 항상 끝나고 나면 비참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그가 말한다. "서로 사랑을 하든 사랑을 하지 않든, 항상 비참해. 이제 곧 밤이 될 텐데, 밤이 오면 그런 감정은 사라질 거야." 나는 그에게 그 슬픔이 꼭 낮 동안의 정사 때문만이 아니라고,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준다. 나는 지금 내가 줄곧 기다려 왔고 또한 오직 나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그런 슬픔 속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슾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나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어머니가 얘기하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방이 바로 내가 기다리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한다. 어머니는 마치 신의 사자(使者)나 되는 것처럼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악을 쓰며 말한다고. 어머니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그 어떤 신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고함을 친다는 걸 그에게 말해 준다(56~57).

 

 

지금까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세 작품 『모데라토 칸타빌레』 『내 사랑 히로시마』 『연인』을 읽었습니다. 세 작품의 성격이 서로 달랐고, 특히 『내 사랑 히로시마』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교육적인 관점이 필요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