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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오츠 슈이치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

by 답설재 2011. 12. 5.

C일보(2011.11.5)의 책 소개에서 「마지막 길 가려는 이에게 "가지 말라"고 할까, "편히 가라"고 할까」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것인 줄은 당장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사회의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음의 초보자로 만들었다.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죽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108)는 내용을 딴 「당신은 TV에서 본 것처럼 죽지 않는다」는 소제목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가족도 피가 마른다」 「고독사는 나쁘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같은 소제목도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그 신문은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듯, 웬만큼은 궁금증을 풀 수 있도록 책의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의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졌습니다. 이게 요즘 저의 관심사 중 한가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저는 웬만한 실용 서적은 혐오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저의 이런 생각을 혐오할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싫은 건 싫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죽기 전에 어떻고"식의 제목이라든지, "무슨무슨 몇 가지"라면 목차조차 확인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제가 지고 만 것입니다.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완화의료 클리닉에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1000명 이상의 임종을 바라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쓴 책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죽음을 배우려면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그 경우에 처하는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의 극한 상태에 떨어지면 누구나 그 상태에 관해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현대인이 생사의 극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유사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죽음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으므로 참고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죽어가는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어떤 갈등을 겪는지 자세히 묘사한 작품은 많지 않다. 늘 살아남아 슬픔에 잠기는 주인공만이 부각된다. 죽음의 현장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 아름답거나 멋진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아수라장이다. 환자와 그 가족이 서로 사랑으로 보살피며 아름답게 맞이하는 임종은 그리 흔하지 않다."(105~106)

 

이런 내용이라면 제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음은 언제라도 이 책을 펴볼 수 있도록 나름대로 핵심이 되는 문장(key setense)을 가려 놓은 것입니다.

 

 

 

 

 

 

오츠 슈이치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

박영선 옮김, 21세기북스 2011

 

 

 

■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죽어 가는가?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일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다음과 같이 5단계로 묘사했는데 이 과정은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찾아온다고 한다.

① 부정과 고립

② 분노

③ 타협

④ 절망

⑤ 수용

 

수용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본인에게 달렸지만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위안도 큰 힘이 된다. 주위 사람들은 환자의 생각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속이거나 하면 환자는 오히려 고독과 불신에 빠질 뿐이다.

수용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끝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생을 열심히 살아가자'며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제 끝이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또 수용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 인간은 자신이 죽을 때를 아는가?

 

환자는 특히 자신의 분노나 희망, 죄책감, 고독과 같은 감정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의사나 가족이 그런 감정을 부인하기를 바라면 털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자는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들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과 죽어감》

 

유언도 전처럼 주변의 일을 자세하게 기재하지 않고 재산 관계만 간략하게 정리하게 되면서 죽음의 주도권이 본인이 아니라 가족에게로 옮겨갔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종말을 뜻하는 불행한 현상이 되었으며 기피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죽음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지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없으며 말하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다. 죽음이 금지된 것이다.

 

죽음은 가족들에게 격렬한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므로 환자는 병원으로 격리되었고 그 죽음은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정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본래 자신의 죽음을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병원치료나 대체의료가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끼어든 탓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쓰게 되었을 뿐이다. 자신의 몸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죽음을 터부시한 탓에 죽어가는 사람은 거짓 정보를 전달 받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을 믿고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건강에 신경을 쓰면 죽기 어려운가?

 

건강을 지키려고 애써도 사람의 목숨은 때가 되면 반드시 끝이 찾아온다.

 

■ 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죽음이 가까운 순간, 가족 간의 갈등까지 겪게 되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사람들은 억울해한다. 하지만 모두 겪는 일이다. 막연히 생각하는 아름다운 최후는 인간의 순수함만을 추출해낸 맑은 용액이다. 진실은 가라앉은 찌꺼기 속에 있다.

 

긴 여행이 반드시 감동적인 건 아니다. 짧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훨씬 더 감동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가?

 

신을 믿으면, 즉 종교가 있으면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까? 나의 경험상 독실한 신앙인이라면 다르겠지만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해도 죽음을 앞에 둔 태도는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종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육체의 고통이다.

 

■ 고독사는 불행한가?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고독이 더 슬프다. 유행가 가사 같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 받지 못할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아무도 몰라준다며 고독감에 휩싸인다.

 

가족의 경우 너무 가까워서 어려운 점도 있다. 환자를 보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반면 애써 이야기를 꺼내도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고 자기들 생각만 강요하면 환자는 오히려 입을 닫게 된다. 함께 있어서 더 고독하게 느끼지 않으려면 '진정한 예의'가 필요하다.

 

적당히 힘을 빼고 여유 있는 태도로 간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간병하는 가족이 긴장하지 않으므로 환자도 오랜 시간 평온하게 지내다가 떠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균형 잡힌 태도로 간병하기는 쉽지 않다. 가족들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환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육체적·정신적 피로 때문에 지치기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는 가족과 관계가 나쁜 상태에서 재택치료를 받는 환자다.

 

■ 영원한 삶은 행복한가?

 

죽음의 공포를 견디는 방법은 억지로 죽음에서 눈을 떼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작은 죽음의 이별을 되풀이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이다.

기시모토 히데오,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

 

사소한 행복을 더 크게 기뻐할 수 있고, 불행은 그렇게 느껴질 뿐 실제로는 심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카너먼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의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한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의 가치함수 그래프).

 

■ 죽음의 기적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때때로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 당장이라도 숨을 멈출 것 같은 환자가 멀리 떨어진 아들이 달려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잠깐의 만남 뒤에 세상을 떠난다. 남편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인을 염려하는 듯, 반 년도 살 수 없는 환자가 1년도 넘게 버틴다. 그리고 겨우 아내가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자 서로 감사의 말을 나누며 마지막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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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저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세상에 알렸다. 그녀는 30만 명 이상이 살해 당한 나치의 강제수용소 마이다네크를 방문했을 때 벽 가득히 손톱과 돌조각으로 새겨진 나비 그림을 보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