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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지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by 답설재 2011. 10. 17.

조지 버나드 쇼 희곡 《피그말리온》

김소임 옮김, 열린책들 2011

 

 

 

 

 

 

이 희곡의 모티브는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는 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 이야기입니다.

 

 

 

* 쟝레온 제롬(JeanLeonGerome. French, 1824-1904),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키프로스 여성들은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나그네에게 몸을 팔게 되고,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여성에 대한 혐오로 결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대신 피그말리온은 지상의 「헤파이스토스」1라 불리는 솜씨로 상아를 이용해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고 '갈라테이아'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어떤 여인보다도 아름다운 이 조각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가 만든 조각상을 따듯한 눈길로 쳐다보며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포옹하고 입맞추며 다녀왔다고 인사하는 정경을 그려 보십시오. 그러던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의 축일에 여신에게 빕니다. 제발 이 조각상 같은 여인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을 살아 있는 여성이 되게 하고, 둘은 결혼합니다.

 

 

 

신화에서 저 아름다운 여인상이 진짜 여인으로 변신하듯 이 희곡에서는 미천한 신분의 꽃파는 아가씨가 음성학 교수의 교육으로 일약 왕족과 같은 교양과 외모를 갖춘 숙녀로 변신하게 됩니다. 다음의 대사 내용이 그야말로 '신화처럼' 실현되는 것입니다.

 

히긴스 (갑자기 최대한 웅변조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저음을 쓰면서) 정말이지, 일라이자. 내가 너와의 작업을 끝내기도 전에 길거리에 너 때문에 자살한 남자의 시체가 널려 있게 될 거다.

 

그러나 좀 희한하다고 해야 할 것은, 이 희곡에서는 남자 주인공(히긴스)과 여자 주인공(일라이자)이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라이자는 두고두고 히긴스를 들볶아 대며 못살게 하고, 히긴스는 그런 일라이자에게 실내화를 찾아오라는둥 익숙하게 심부름을 시키며 살아가면서도 걸핏하면 꾸짖거나 놀리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이가 됩니다. 갈라테이아(일라이자)가 자신을 가르쳐 아름답고 정숙한 숙녀로 변신시켜준 피그말리온(히긴스)과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버나드 버나드 쇼(1856~1948, 영국)가 이 희곡을 쓴 의도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가 사랑의 결실을 맺는 멋진 멜로드라마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인형의 집』)의 영향을 받아 신분, 언어, 교육, 빈곤, 여성 등 사회 문제를 극화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극은 신분과 돈에 굴복하는 당시의 영국 사회가 심지어 신분도 미천하고 돈 한 푼 없는 꽃 팔던 소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통해서 신분 사회의 숭고함이 허울뿐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라는 조지 버나드 쇼는, 60여 편의 희곡을 남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자주 공연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랍니다. 연극으로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뒤이어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는데, 때로는 버나드 쇼가 쓴 희곡과 다른 스토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왜 그러한 변형이 이루어졌는가 하면, 배우와 연출가, 심지어 관중들은 남녀 주인공이 결혼을 하는 해피엔딩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의 간청은 그 당시에도 통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원작자 쇼가 이런 변형을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런던 초연 때는 남자 주인공 히긴스를 연기한 배우가 작가의 지시를 거부하고, 극이 끝나기 직전 여자 주인공 일라이자에게 꽃을 던짐으로써 사랑의 성공을 암시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쇼는 1916년, 아예 일라이자가 왜 히긴스와 결혼할 수 없는지 밝히는 긴 <후일담>을 작품에 추가했습니다.

 

그 <후일담>이라는 걸 읽어봤더니 히긴스(남)가 일라이자(여)과 결혼하는 것이 불합리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그 일라이자는 다른 어떤 남성(몰락한 귀족 프레디)과 결혼했다는 것을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일라이자는 자신을 가르친 히긴스에게 대단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녀는 그를 모든 구속과 고려해야 할 어느 누구도 없는 무인도에 홀로 데리고 가서, 그가 서 있는 받침대에서 끌어내려 보통 사람처럼 섹스를 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비밀스럽고 짖궂은 생각"도 했지만. 결코 그와 맺어질 수는 없다는 조로 그 <후일담>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 갈라테이아는 결코 피그말리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의 관계는 너무 신성해서 전적으로 좋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희한한 일은 또 있습니다. 작가 버나드 쇼는 극중 인물들이 맺어지는 것을 그렇게 반대해 놓고, 정작 자신은 한 명의 '일라이자'와 사랑에 빠졌답니다.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의 관심을 끌었던 여배우는 패트릭 캠벨이었습니다. 쇼는 캠벨의 발음이 흡사 희곡 속의 일라이자처럼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이 작품을 그녀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제시했는데 당시(1914년) 캠벨은 이미 49세였습니다. 하지만 쇼(당시 58세)는 10대 소녀역에 곧 50대가 되는 그녀를 캐스팅할 것을 고집했고, 결국 쇼와 캠벨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하기야 이미 15년 전(1899년)에 공연된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도 여배우 패트릭 캠벨을 위해 집필했다니까 그때 이미 이 여배우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희곡의 스토리는 그렇지 않은데도 실제 공연에서는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짓으로 마무리한 배우나 연출가를 보면 작가 버나드 쇼가 화가 날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남녀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긴 <후일담>을 붙였다고 했지만, 이 희곡의 앞부분에도 10쪽이나 되는 <서문 : 음성학 교수>가 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서문>도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그 부분만 참고 읽으면 제1막부터 마지막 제5막까지 언제 다 읽었나 싶게 잘 넘어갔습니다. 재미있고 쉬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교육은 이와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도, 오늘날 교육(교육자들)은 스스로 그 힘을 과소평가하고 굴절시켜 버려서 오히려 온갖 손가락질을 받고, 심지어 홀대를 받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음성학 교수 히긴스는 미천한 소녀 일라이자를 왕족처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피커링 대령의 협력을 받습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교육을 했는지는 일라이자의 대화 한 마디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리자 그런데 제게 진정한 교육을 시작한 게 뭔지 아세요?

피커링 뭔데?

리자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제가 윔플 거리에 처음 온 날 저를 둘리틀 양이라고 불러 주신 거요. 그게 제게는 자기 존중의 시작이었어요. (바느질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대령님에게는 자연스러운 거라서 알아차리지도 못할 자잘한 행동들이 몇 백 개나 있었어요. 일어나신다 든지, 문을 열어 주신다든지……

피커링 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리자 아니에요. 그런 행동들은 대령님이 저를 그릇 닦는 하녀보다 나은 존재로 생각하시고 느낀다는 걸 보여 주었어요. 물론 대령님은 그릇 닦는 하녀가 거실에 들어왔더라도 똑같이 행동하셨을 걸 알아요. 대령님은 제가 있을 때면 식당에서 부츠를 벗으신 적이 없잖아요.

피커링 마음 쓰지 말라. 히긴스는 어디서든 부츠를 벗으니까.

리자 알아요. 저는 그분을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분의 방식이죠. 그렇죠? 하지만 대령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던 게 저한테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었어요.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것 말고(옷을 멋지게 입는다거나 제대로 말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정말로, 진실로 숙녀와 꽃 파는 소녀의 차이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접을 받느냐에 달렸죠. 저는 히긴스 교수님께는 언제나 꽃 파는 소녀일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은 저를 언제나 꽃 파는 소녀로 대하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대령님께는 숙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대령님은 저를 언제나 숙녀로 대해 주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거니까요.

                                                                                                                                                                       

                                                                                                                                                                     (180~182)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저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건 아닐까요? 그 애들은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할 단계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의 날개에 소개된 조지 버나드 쇼의 프로필

 

 

 

 

그리스의 이 전설(신화)을 교육적으로 증명해 보이기 위한 실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R.Rosenthal)과 제이콥슨(L.F.Jacobson)입니다.

 

그들은 1968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 650명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검사의 실제 점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뽑아 그 명단을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전달하면서 "지적 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객관적으로 판명된 학생들"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말이었습니다. 즉 무작위로 뽑은 20%의 학생들이니까 특별히 선발된 학생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자연집단의 학생들일 뿐이었습니다.

 

8개월 후에 이들은 다시 전체 학생들의 지능검사를 실시하여 처음 검사결과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놀라운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20%의 명단에 들어간 학생들은 다른(일반) 학생들보다 평균점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성적도 크게 향상된 것입니다. 그것은, 명단을 받은 교사들이 이 아이들이 지적 발달과 학업성적이 향상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성껏 돌보고 칭찬한 결과였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니까 공부하는 태도도 변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결국 그들의 능력까지 변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해도 마음으로 믿고 상대해줌으로써 그 상대를 자신의 기대대로 변하게 만드는 신기한 능력이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믿음, 기대, 예측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교육학자들은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합니다. 자기 충족적 예언,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나 기대가 행위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해주는 효과를 말하는 것이지요. 칭찬, 격려, 신뢰, 인정, 애정, 사랑, 긍정, 확신,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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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는 소아시아와 인근 섬들(특히 렘노스)의 신으로 리키아 지방의 올림포스 산에 중요한 예배소가 있었다. 절름발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에 혐오를 느낀 어머니 헤라가 하늘에서 내던졌으며 아버지 제우스가 집안 싸움을 한 뒤 다시 내던졌다. 어울리지 않는 배필을 만났는데 아프로디테 또는 우아함의 화신 카리스였다. 불의 신으로서 헤파이스토스는 신들의 대장장이이자 장인(匠人)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일찍부터 그와 연관되었던 자연 화산이나 기체 상태의 불은 종종 그의 일터로 여겨졌다. 헤파이스토스 숭배는 비록 그리스 본토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BC 600년경에 아테네로 전해졌고, 오래지 않아 캄파니아에도 전해졌다. 미술 작품에서는 대개 중년의 나이에 턱수염이 난 남자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따금씩 더 젊고 수염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개 짧고 소매가 없는 겉옷을 입었고 헝클어진 머리 위에 둥글고 꼭 맞는 모자를 썼다. 로마에서 그에 해당하는 신은 불카누스이다.(브리테니크 사전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