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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0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Ⅲ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문학성’ 혹은 문학의 ‘자기 지시기능’ - 월간『현대문학』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다음 문장에 밑줄을 그어놓았습니다. 글의 분위기가 생각날 수 있도록 앞뒤의 몇 문장을 덧붙여 옮겼습니다(『현대문학』2009년 8월호, 213, 220). “벌써 세 시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게 흐르는 시간이라니까!” 무엇이 와서 부딪친 것인지, 유리창을 때리는 작은 소리가 한 번, 그 다음에는 이층 창문에서 모래를 뿌리는 듯 다량으로 가볍게 쏟아지는 소리, 그리고 이어 그 쏟아지는 소리가 넓게 퍼지면서 고르게 조절되며 어떤 리듬을 갖추는 듯하더니 음악처럼 낭낭한 소리를 내며 무수하게 불어나 온 세상에 골고루 퍼.. 2009. 8. 11.
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Ⅱ 엘사 모란테 지음 『아서의 섬』 천지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7 소설은 엘사 모란테가 쓴「레모 N.에게 바침」이라는 시(詩)로 시작됩니다. 레모 N.에게 바침 네가 믿는 땅 위의 한 점은 일부가 아니라 곧 전부였다 이 유일한 보석은 잠에 취한 네 질투의 눈길에 결코 빼앗기지 않으리라 네 첫사랑은 결코 훼손되지 않으리라 검은 숄을 두른 집시처럼 비르지니아는 밤에 갇히고 북쪽 하늘에 걸린 별은 영원하리 어떤 계략에도 견뎌낼 것이므로 알렉산드르와 에우리알로스보다 멋진 젊은이들은 소년의 꿈을 간직하므로 아름답다 혹독히 인도되리라 그 작고 푸른 섬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리니 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배운 많은 진리들을 그리고 산산조각난 내 가슴을 림보*를 벗어난다고 해서 천국은 아닐진대 ----------.. 2009. 8. 9.
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 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 천지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7 소년 아서 제라체가 지중해 나폴리 군도 프로치다 섬에서 어른이 되어가며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섬세하고 상징적입니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아버지 빌헬름 제라체를 마치 신(神)만큼 존경하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냉담합니다. 그가 어른이 되게 한 사람은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눈치아타입니다. 열여섯 살 눈치아타가 아버지를 차지한 것입니다. 열다섯 살인 아서는, 처음에는 그녀를 질투하고 증오하다가 어느 순간 그 증오와 질투가 이성적 사랑으로 변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괴로움에 싸이게 됩니다. 가슴속에 성장통의 그늘이 남아 있다면 이 소설이 더욱 읽을 만할 것입니다. 제1장 '왕과 별'에서는 프로치다 .. 2009. 8. 5.
콜린 맥컬로우 『가시나무새』 콜린 맥컬로우 『가시나무새』 李曉星 譯, 을지문화사, 1984 사랑으로 맺어졌거나 운명으로 결합되었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가령, ‘가족’으로 함께 살아간다 해도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마음은 얼마나 황량해지는가.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50년에 걸친 이야기 끝에서 마침내 밝힌다는 듯 또 그것을 강조한다. ‘사랑’이란 그러하므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은 ‘사랑’을 간직한 누구에게나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만큼 얼마나 고달픈가를 보여주면서(제1부~제6부) 그럼에도 그들의 딸은 희망을 설명하려는 듯 또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다(제7부 저스틴의 결혼). 박찬욱 감독이나 콜린 맥컬로우나 어.. 2009. 7. 4.
E. 데 아미치스 『사랑의 학교』 E. 데 아미치스 지음 《사랑의 학교》 이현경 옮김/김환영 그림, 창비아동문고 1998. 평생 마음속에 간직해둔 책을 소개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화일보』 기자가 전화를 해서 「Readers are Leaders」라는 특별기획 코너에 교육자 한 명을 소개하기로 했고, 그 첫 번째 인터뷰가 하필이면 블로그 『파란편지』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고 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기자가 오면 인터뷰를 어디서 어떻게 하고, 그 기자와 식사를 할 식당 같은 건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습니다. 평생에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고 걸신들린 듯 읽어댈 자신도 없지만, 그동안 읽.. 2009. 6. 4.
마이클 티어노 『스토리텔링의 비밀』(발췌) 마이클 티어노* 지음|김윤철 옮김 『스토리텔링의 비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아우라, 2008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그분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들이 '한꺼번에'라고 할 만큼 많이 소개되었다. "민가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를 보며 눈물지은 적이 있다." 그 말씀이 참으로 인상 깊었고, '훌륭한 분이구나' 싶었다. 그때까지는 송구스럽긴 하지만 '사회적 직위가 높은 분'에 지나지 않았다(이 블로그의「기억하고 싶은 기사」2009.2.20. 참조). 주제넘은 얘기 말고도 많다. 무슨 글자가 찍힌 티셔츠, 결코 실용적이지는 않은 고운 양초들, 요즘은 쓰는 이도 없는 열쇠고리들, 포스트잇이 얼마든지 편리한데도 선물 받을 때의 기쁨이 생각나는 책갈피…….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서 의미롭고, 세월이 가도 버려지.. 2009. 5. 30.
사쿙 미팜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지나온 나날을 떠올려보고,더러 누군가를 떠올리며,혹은 누군가와 얽혀서 일어났던 일을 기억해내며 읽다.곧 잊어버리고 말 구절들을 언제 다시 펴볼까 싶어서 밑줄을 그으며 읽다.언젠가 밑줄 그은 부분만 읽어서 그때 그 뜻을 알 수 없다면,지금 비록 밑줄까지 그으며 읽는다 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고 있는 것이므로,그러면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사쿙 미팜 지음/안희경 옮김, 판미동, 2008 1부 ∣ 삶을 다스리는 비밀 •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스스로의 삶을 지배할 줄 아는 당당한 사람이 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하다. 가장 효과적이며 실용적인 방법은 하루에 아주 조금씩만 마음가짐을 바꾸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단 10퍼센트만 말이다.. 2009. 5. 26.
최병권·이정옥 엮음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이정옥 엮음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2003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에 중국에 대해 '쎄게' 나왔다가 중국이 "이것 봐라?" 하니까 눈치 빠르게 얼른 그 중국의 곁에 서려고 한 점도 재미있지만, 나폴레옹이 창설했다는 학술원의 권위가 어마어마하다는 점, 바칼로레아 논술고사도 생각납니다. 예술의 도시 '파리' 같은 걸 얘기하면 하품이 나오겠지만, 루이 16세의 애첩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떻습니까? 지난번에 미국의 Application Essay에 대해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라는 책을 소개한 것처럼 오늘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대한 책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소개합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 2009. 4. 27.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김재혁 옮김, 이레 2005 이 블로그를 찾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아, 우리가 볼 만한 글이 아니구나' 하고 돌아가진 않을 것이므로. 「케이트 윈슬렛, 생애 마지막 전라 누드 공개」 『스포츠조선』(2009.3.12)은 동명의 영화를 이런 제목으로 소개했습니다. 영화가 잘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보지 않았고,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문화일보』 2009.4.1, 오동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로 만든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원작보다 훨씬 더 풍만하고 성숙하며 나름 요염한 작품이다. 그건 전적으로 주인공 한나 역을 맡은 케이트 윈즐릿 때문인데 이 영화.. 2009. 4. 15.
아멜리 노통브 『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아담도 이브도 없는』 이상해 옮김, 문학세계사, 2008. 벨기에인 아멜리와 일본인 린리와의 첫사랑 이야기. 표지에 적힌 대로라면 '애틋하고 발랄하고 섬세한'. 가령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나는 그를 만나면 늘 즐거웠다. 나는 그에게 우정과 애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없어도 그립지는 않았다. 그에 대한 내 감정의 방정식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우리의 이야기가 더없이 멋져 보였다. 내가 답변 혹은 상호성을 요구할 수도 있는 사랑고백을 두려워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영역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 하나의 형벌이었다. 나는 곧 내 두려움의 근거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린리가 나에게 기대하는 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뿐이었다. 그가 옳.. 2009. 4. 13.
막스 피카르트『침묵의 세계』Ⅱ 막스 피카르트/최승자 옮김 『침묵의 세계』 까치, 1999(5쇄) 다시 『침묵의 세계』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내가 읽은 책」이라는 코너에 싣는 책 속에는, 읽었으므로 그 내용을 정리해 두려는 것도 있고, 구입비가 아깝고 읽은 시간이 아까워서 적어두는 것도 있지만, 남에게는 감추려 했다가 '큰맘먹고' 소개하는 책도 있습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그런 책입니다. 우리 학교 교직원 생일 때, 지난해에는 매달 다른 책을 선정해서 사주었는데, 그게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선 "1만원 미만의 책으로 선정해주면 좋겠다"는 행정실장의 통제를 받아야 하니까 그것부터 까다로운 조건이 되었습니다. 교직원들은 잘 모르지만, 교장 혼자서 다 써버리는 줄 아는 '업무추진비' 중에는 교사들이 집행하는 경비, 행.. 2009. 4. 9.
앤서니 웨스턴 『논증의 기술』 앤서니 웨스턴 『논증의 기술』 이보경 옮김, 필맥 2008(2004) 가령, 누가 “비관론자들은 기회를 어려움으로 여기지만 낙관론자들은 어려움을 기회로 여긴다”(윈스톤 처칠)고 하면,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할 사람들도 있다. 또 “외부의 그 어떤 것도 당신 위에 군림할 수 없다”(랄프 왈도 에머슨)는 격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해석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실감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해도 안 되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외칠 리도 없다. 그럴 듯한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그러면 그는 더 빛나며,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의 말을 .. 2009.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