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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어린 소녀 샤틀렌느」에 관한 추억 (Ⅰ)

by 답설재 2010. 3. 18.

2005년 봄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아침나라)는 책을 냈습니다.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 책이지만, 제목을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출판사 사장의 주장이 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붙이고 말았습니다. 이래저래 팔리지 않을 책이었다면 책 이름이라도 제 마음대로 붙여볼 걸 싶기도 합니다.

그 책에 실린 글입니다. 좀 긴 듯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싣겠습니다. 블로그에 들어와 오랫동안 글만 읽는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하긴 그게 제 블로그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17세의 까미유 끌로델 (파스텔화 : 기타 퇴리에 작) - 까미유 끌로델 서거 50주년 기념전 도록 P. 20 -

 

 

「어린 소녀 샤틀렌느」에 관한 추억 (Ⅰ)

 

 

요즘 누드 열풍이 한창이다. …(중략)…. 여자들의 몸매의 서양화와 용감성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여자들의 몸매가 서양화해 서양 여자들의 벗은 사진에 익숙한 남성들의 기호를 맞추게 되었고, 여기다 그 용감성은 서양 여자보다 더 하다. 서양의 유명 배우가 예술이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었다는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후략)….1

 

우리나라 유명 여배우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옷을 잘 벗는 것으로 인식되기 십상인 표현이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이라고 하여 “벗으면 돈을 엄청나게 많이 줄게”라고만 했을 때 본성을 드러내고, 그처럼 용감하게 벗어버릴 수 있는 탤런트나 배우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것은 나르시즘과 관음증의 숙원에 의한 반가운 ‘만남’으로 하여 드디어 벗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 것이며, 돈은 ‘금상첨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 푼도 주지 않고 “예술을 하려고 한다, 예술!”이라고만 해도 그것을 핑계로 벗을 수 있는 여성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2 그것은, 누드가 되는 ‘우상’들은 대체로 “한번 보세요, 결코 추하거나 야하지 않을 테니까.” 혹은 “두렵지만 작품을 위해서라면…….”과 같은 발표를 하기 마련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한 발표에 대해서는 누드 소식이 실린 일간 스포츠 신문이나 주간 신문을 보면 잘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여자들이 순결을 지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부도덕한 행위와 결점 때문에 오히려 찬사를 받는다’고 한탄한 작가도 있다.3 그러나 미셸 투르니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창조에 수반되는 감정은 기쁨이다. 그것은 창조적 행동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면모이다. 창조적인 일이 가져다주는 다른 보상--돈․명예--은 비본질적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기쁨만이 창조의 고유한 속성이다.”4 창조적인 일로써 추하거나 야하지 않다고 선전해야 하거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느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1993년 9월,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展’을 구경한 적이 있다.5 화보를 보면,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으로는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에로틱하다는 ‘왈츠’와 함께 ‘애원’, ‘어린 소녀 샤틀렌느’ 등,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도 저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 ‘청동시대’ 등 여러 작품이 전시되었다.6

 

그 전시회에는 대학 1학년인 딸아이가 한 번 보고 싶어하여 할 수 없이 따라갔었다. 입장권을 사면서 한 장은 괜히 산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시장 입구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아빠는 여기서 쉬고 있을 테니까 마음껏 보고 나와.” 그러나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들어간 딸애가 곧 돌아 나와서 말했다. “아빠, 들어가세요. 봐요, 아무도 입구에 서 있지 않잖아요.” 그렇게 하여 따라 들어간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왜 나만 졸졸 따라오느냐?”면서 각자 실컷 감상하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애를 따라다닌 것은 작품을 감상한다며 서로를 잊은 것처럼 떨어져 다니는 것이 멋쩍어서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그 애는 그런 내 태도를 터무니없이 경직된 것으로 본 것이었다. 나는 또 할 수 없어 그 애 말대로 혼자 실컷 감상해 보기로 하였다.

 

하긴 나도 영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로댕과 끌로델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기도 했고 애절한 사연의 이성 사이이기도 했다는 것을 이미 소설을 읽어 잘 알고 있었다.7 화보에도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8

 

시인 폴 끌로델의 누나로, 미모와 넘치는 재기를 지녔던 까미유, 스승인 로댕과의 열렬한 연애, 그리고 이별, 이어서 찾아온 광기의 세계. 까미유의 비극적인 생애에 관한 연구서, 평전(評傳)들이 근년 들어 계속 출판되고 있다. 또「헤럴드 트리뷴」지는 로댕이 까미유로부터 도작(盜作)을 했노라는 뉘앙스로 이 ‘잊혀진 조각가의 숨겨진 생애’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두 사람의 작품에서는 강한 유사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개중에는 어느 쪽이 더 먼저 만들어졌는지 판단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까미유는 모델로서 로댕에게 영감을 주었고 조수로서「지옥의 문」등의 작품 제작을 도왔으나, 헤어진 다음부터는 로댕에게 미행 당하지나 않을까, 독살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정신 병원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까미유는 로댕에게 도둑맞고 버림받은 뮤즈(여신)였던 것일까.

 

 

 

모델로서의 까미유 끌로델 - 까미유 끄로델 서거 50주년 기념전 도록 P. 24 -

 

 

그들 사이가 그런 사이였다는 것만 해도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지만 그것보다 더 내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은 작품들 대부분이 나체였고, 그것도 너무나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여체들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는 어떤 작품은 등허리, 엉덩이 등 뒷부분까지 자세히 살펴보았고, 여체의 은밀한 아랫부분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딸애는 그러한 내 태도를 영 부끄러워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 「어린 소녀 샤틀렌느」에 관한 추억 (Ⅱ)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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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일보, 2003.7.1.7면(오후여담), 윤구(논설주간),『누드 열풍』에서 인용.

2. 예를 들어『am SEVEN』, 2004년 6월 29일(화), 10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 ○○○ 누드를 제작한 (주)애니엠 커뮤니케이션은 그동안 누드를 찍고 싶다는 일반인들의 요청이 잇따랐고 깨끗하고 순수한 ○○○의 이미지와 부합된다는 점을 고려, ○○○이 일반인 모델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 ○○○의 누드비치’ 행사를 추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박민 기자 minp@

3. 작자 미상․곽영미 옮김,『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절망했다』(도서출판 이레, 2004), 253쪽.
4. 미셸 투르니에․김정란 옮김,『생각의 거울』(북라인,2003,2판),109~110쪽.
5. 까미유 끌로델 서거 50주기 기념전으로, 1993년 9월 7일부터 10월 24일까지는 서울 동아갤러리에서, 그 해 10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부평 동아갤러리에서 열렸다. 화보에는, ‘숙명적인 만남,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 ‘까미유 끌로델의 일생’, ‘조각가로서의 까미유 끌로델’, ‘로댕은 까미유를 훔쳤는가?’와 같은 해설도 실려 있다.

6.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으로는 '왈츠’'애원’, ‘화롯가에서의 꿈’, ‘아마드리아드를 위한 習作’, ‘파도’, ‘밀단을 진 소녀’, ‘어린 소녀 샤틀렌느’, ‘나이든 엘렌느’, ‘어린아이의 머리’, ‘쪽진 머리의 소녀’, ‘소외된 사람들’, ‘운명’, ‘페르세우스와 고르고니’, ‘비상하는 神’, ‘대머리 끌로또의 토루소’, ‘레옹 레르미트’, ‘풀룻을 부는 여인’, ‘16세의 내 동생’, ‘영국 친구의 초상화’등이 전시되었고,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으로는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청동시대’, ‘머리 없이 걷는 남자’, ‘성 세례 요한’, ‘대성당’, ‘여인 상주’, ‘토루소 습작’, ‘알사스의 고아 소녀’, ‘무용수의 율동’, ‘미노타우로스’, ‘나진스키’, ‘신의 사자 아이리스’가 전시되었다.
7. 안느 델베․강명호 옮김,『까미유 끌로델』(정음사, 1989, 12판).
8. 동아갤러리(1993),「까미유 끌로델과 로댕展 화보」,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