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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西澤潤一 『암기편중교육에 대한 直言!』

by 답설재 2010. 3. 17.

 

 

 

 

西澤潤一 『암기편중교육에 대한 直言!』

창조 1994

 

 

 

신문에서 경제에 관한 칼럼을 읽다가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을 발견했습니다.1 '니시자와(西澤潤一)'입니다.

그 칼럼에서 눈길이 간 부분입니다.

 

…(전략)… 손대는 일마다 술술 풀려 세상이 다 내 것처럼 여겨질 때 겸손해지기란 정말 어렵다. 개인만이 아니라 나라도 마찬가지다. 80년대는 일본 안 경제에서 이기는 상품이 곧바로 세계 시장을 거머쥐던 시대였다. 반도체·조선·가전가구·자동차·기계설비에서부터 골프채·피아노까지 모두가 그랬다. 미국에선 MIT 교수들이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라는 제목으로 일본 앞에 무릎을 꿇은 미국 제조업의 반성문을 쓰고, 유럽에선 '21세기의 승자(勝者), 일본이냐 독일이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던 시절이었다. 들리는 것을 다 듣지 못한 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이는 것을 다 보지 못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바로 오만이다. …(중략)… 일본 전체가 황홀경(恍惚境)을 헤매던 이 시절에도 광야(曠野)에서 홀로 외치던 선지자(先知者)의 소리는 있었다. 니시자와(西澤潤一)는 수백 개의 반도체 특허를 갖고 있어 '미스터 반도체'로 불리던 학자다. 너무나 시대를 앞질러 가 그의 특허는 대부분 미국에서 먼저 제품화됐다. 삼성의 이병철(李秉喆) 선대 회장이 여러 차례 반도체에 관한 자문을 그에게 구했다는 게 더 기억에 남을 듯하다. "반도체란 첨단 제품이긴 하지만 수백·수천 가지 기술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의 집약체는 아니다. 몇몇 또는 몇십 가지 기본 기술만 확보하면 그 다음은 거대 자본을 적기(適期)에 동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 주도국의 자리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왔고 앞으론 한국을 거쳐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 그때 일본에서 니시자와는 너무 많이 알아 너무 많이 보이는 탓에, 미래를 어둡게만 보는 선지자 취급을 받았다. …(후략)…

 

 

칼럼의 결론은, 지금 우리도 니시자와의 말 가운데 '한국을 거쳐'라는 대목만 귀에 박히고,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라는 대목은 그냥 놓쳐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으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돈 안 들이고 해주는 입에 발린 칭찬이 겸손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마저 오만하게 만들었고, 오만 다음엔 끝없는 추락이 이어졌음을 상기시키고 있었습니다.

잘 나갈 때, 돈 좀 생긴다고 미쳐 나가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하겠지요.

 

'니시자와(西澤潤一)가 누군가? 도대체 어디서 본 이름인가?' 하다가 책 한 권을 기억해냈습니다. 『암기편중교육에 대한 直言!』2

뒷표지에 그의 사진과 이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동북대학 교수, 동북대학 전기통신연구소 소장, 현(1994년 당시) 동북대학 총장, 저서 :『獨創技術에 관하여』 『獨創開發論』 『技術大國 日本의 未來를 읽는다』 『나의 낭만과 과학』 『獨創敎育이 日本을 救한다』 등.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습니다.

 

"敎育·大學·硏究者·官邊·産學協同·21세기 未來 등에 관한 그의 直言은, 日本의 문제인가? 韓國의 문제인가? 同病相憐인가?"

"科學技術과 經濟大國을 이룬 日本임에도 울리는 이 警鐘이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韓國的이고 現場感 있는 충고로 울려온다."

 

인터넷에서 교보문고에 가봤더니 품절입니다. 번역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창조'라는 이름도 출판사가 아니라 인쇄소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번에 제가 비매품으로 몇백 권만 인쇄한 『슬픈 교육』보다 서너 배 정도 나은 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 말고 또 누가 갖고 있을까 싶은 책이지만, 암기편중교육에 대한 지적, 시험성적에 대한 해석 등 우리 교육의 고질병이 새삼스러워 몇 군데 옮겨봅니다.

공감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 부분만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3

 

明治는 교육으로 흥했지만, 平成은 교육으로 멸망했다고 하지 않도록, 지금 일본은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일본은 독창력으로 세계에 공헌해야 할 때인데 지금의 교육은 독창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여러 가지 변혁이 있었으나 효과 판정도 없고, 시험지옥을 만들었으며, 이것을 입시방법만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문제는 실력평가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험성적이 좋은 사람은 평균적으로는 좋다. 그러나 탁월한 사람은 시험성적이 좋지 않은 수가 많다고 하면서도, 시험성적만으로 일을 결정한다. 이것은 확실히 모순이다. 지금 일본은 교육방법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천부적 재질을 발굴하고 신장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수한 교육자는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것을 기억시키는 것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지, 특징이 적은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서 그것을 필요할 때 꺼내도록 하는 소위 최저 수준향상의 교육으로 오늘날의 교육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참으로 천부적 재질을 기르는 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느냐에 대해서는 대단히 의문이다.(14~15)

 

입학에서는 偏差値4, 졸업에서는 단위, 이들의 평면적인 지식량이 현재 일본교육의 만능척도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사실이 지금의 일본교육을 극단적으로 나쁘게 하고 있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지식편중은 교육의 저변을 올리는 데는 공헌했지만 창조적인 인간을 억압해버린다. 창조적인 소질을 가진 인간은 주입식 교육에 순종하지 않는다. 반발하고, 얼마 안 가서 낙오하며, 열등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것이 지금의 일본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인 것이다. 도대체 시험성적이 훗날의 능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는 없는지를 의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하다.(22)

 

국제화와 정보화는 특히 젊은 세대에 요구된다. 즉 과학기술과 문화 양면에서의 큰 흐름인 것이다. 지금 이 조류는 가정교육, 초중등교육의 형태에서도 일대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종래의 지식량 편중교육으로는 이 큰 조류를 타고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지식과 기초를 확실히 구부하여 가정교육부터 초중등교육에 대해서 기초중심의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소량의 지식을 기초로 하여 이들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여 학문의 근간을 형성한다든가, 고도의 결정을 하는가를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61)

 

나는 크게 말해서 천재는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말하는 천재라는 것은 아무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천재이다.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마음의 받침이기도 하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내재하는 재능이 꽃피워지고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126) …(중략)… 내가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천재란 선천적인 요인보다는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천적인 요인이란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며 파묻히는 것이다. 아마 집중력 이것이야말로 천재의 정체가 아니겠는가. 교육이란 학생들에게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다. 마음에 불을 붙이고 타오르는 것 같은 집중력을 꺼집어내는 것이다.(128~129)

 

그러나 니시자와와 대담을 할 수 있다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부분도 많습니다. 이미 책을 구하기가 어려워 공론화하기도 난처하니까 한군데만 보여드립니다.

 

단순히 규제완화를 해서 사설학원을 함부로 늘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립학원이 인기가 있다고 해서 무질서하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당면한 학교제도의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현재의 6·3·3제에 대해서도 그 문제점을 원점부터 재고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6·3·3제는 본래는 미국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歐美人과 日本人과는 명백히 발육과정, 성장과정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을 위시한 동양인은 구미인과 같이 최후에 가서 돌진적으로 쭉 뻗는 소질은 없다고 한다. 그냥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형이다. 이것은 학교교육을 생각할 때에 극히 큰 차이이다. 실제로 미국의 고등학교 학생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히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대학에 들어간 순간에 굉장한 다양성이 나타난다. 미국인은 고교에서 대학에 가는 단계에서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일본인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미국의 제도를 일본이 그런 형태로 도입해도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다. 이런 것을 다시 한번 재고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48~49)

 

"천만에! 일본인을 위시한 동양인은 구미인과 같이 최후에 가서 돌진적으로 쭉 뻗는 소질은 없다고 한다? 누가 그랬는데!"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일본인을 -'일본인을 위시한 동양인'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치켜세우고 싶은 마음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돌진적으로 쭉 뻗는 소질'이 미국인보다 적다면, 그래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형'이라면, 그건 모두 교육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며, 지금도 우리는 그 따위 교육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 한탄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 쭉 뻗을 수 있는 교육을 해봤습니까? 오늘도 교실에서는 한 가지라도 더 설명해주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 아닙니까?

 

  1. 조선일보, 2010.3.13,A26, 강천석 칼럼,「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지만…」 [본문으로]
  2. 저자의 후기와 번역자의 머리말을 보면 1991년에『獨創敎育이 日本을 구한다-日本式 暗記偏重敎育에 대한 直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입니다. [본문으로]
  3. 원문은 한자 투성이로 되어 있으나 읽기에 불편할 것 같아 가능한 한 한글로 두겠습니다. [본문으로]
  4. 편차치 : 시험 등에서의 개인성적이 평균득점에 대해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를 나타낸 것. 이 통계용어 편차치를 입시분야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1955~60년, 또한 편차치가 대학의 우수척도로서 보급된 것은 1979년의 공통 1차시험이 시작된 이후부터이다(편집자 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