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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by 답설재 2010. 2. 1.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것이 인간인가』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9

 

 

 

 

 

 

 

몹시 굶주려본 사람이 돈을 '왕창' 벌게 되면 그 쓰라린 기억을 되살리며 주변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게 될까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인간입니다.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한 1966년 한 해에 집에서 쫓겨나 서울과 충남 보령 등지에서 '밑바닥 인생'처럼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었습니다. 특히 정릉 유원지에서는 '최하층'으로 살아봤는데, 그 경험으로 하다못해 식당 종업원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건 자본주의(돈)의 진가를 모르기 때문이고 마음이 약하기 때문일 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돈은 권력이며 권력은 막강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얼마든지 잔인할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돈의 힘으로써 얼마든지 잔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가령, 절대로 그럴 일은 없지만, 쇠파이프로 실컷 두들겨팬 악마 같은 사람이 있고 그가 버젓이 사회 지도층으로 군림하는 걸 바라보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눈에 이 사회는 어떻게 비치겠습니까?

 

 

 

 

독일인이 주로 유대인을 학대하고 학살하던 '아우슈비츠', 그 '아우슈비츠'는 이제 영원히 인간의 역사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현실에서는 영원히 사라진 것일까요?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까요? 법치국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책의 대답으로 읽혔습니다. 겨우 60여 년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 60여 년에 모든 게 다 변했고, 드디어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독일인이 그렇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인만 잘 감시하면 될 테니까요. 그게 아니고 '인간'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대단한 유대인입니다. 그의 출생(1919)부터 사망(1987, 이탈리아 트리노 자택에서 자살)까지가 대단한 역정이어서 그의 연보에 나타난 하나하나의 일에 모두 밑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연보처럼 그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에도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인간은 비참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책장을 넘기기가 아깝고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상보다 오래 읽었습니다.

가령 이렇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 보십시오.

 

수족관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마치 꿈속의 어떤 장면들처럼 모든 것이 고요했다. 우리는 훨씬 더 묵시록적인1 분위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경찰관 같았다.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긴장이 풀렸다. 어떤 사람은 대담하게 짐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들은 "짐은 나중에"라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아내와 헤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나중에 다시 모일 것이오"라고 했다. 엄마들은 대부분 자식들과 헤어지지 싫어했다. 그들은 "좋아, 좋아, 아이와 함께 있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늘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아주 차분하고 단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렌초가 약혼녀인 프란체스카와 작별인사를 하느라 시간을 끌자 그들은 얼굴에 한 방을 날려 렌초를 쓰러뜨렸다. 그것이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였다.

10분도 채 안 돼서 튼튼한 남자들이 한데 모이게 되었다. 다른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당시에도 그 후에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밤은 아주 깔끔하고 간단하게 그들을 삼켜버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그 신속하고 간략한 선택의 과정 속에서 우리 각자가 제3제국에 유용한 일꾼인지 아닌지 판단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해서 남자 96명과 여자 29명이 모노비츠(부나)와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다른 사람들, 즉 5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 중 이틀 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또 있다. 이렇듯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보잘것없는 원칙마저도 늘 준수된 것은 아니고, 나중에는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채 객차의 문을 둘 다 여는 더 간편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객차의 이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수용소로 들어갔고 다른 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가스실로 향했다.(23)

 

 

 

우리는 주머니나 가방 속에 지니고 다니는 잡다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인간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해받기가 어려울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오히려 당연하다. 하지만 일상적인 사소한 습관 속에, 손수건, 낡은 편지, 소중한 사람의 사진 등 가장 가난한 거지조차 간직하고 있을 법한 우리의 수백 가지 소지품들 속에 각각 어떤 가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것들은 우리의 일부분이었고 우리의 팔다리나 다름없다. 우리의 세상에서는 이런 것들을 빼앗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거기서는 늘 낡은 것을 대신할 새것, 우리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다가 상기시켜줄 다른 것들을 즉시 다시 구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사랑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집, 자신의 습관, 옷, 다시 말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린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는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엄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 건 쉬운 일이니까. 그리하여 그의 삶과 죽음은 인간적인 친밀감 따위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아주 가볍게 결정될 것이다.(34~35)

 

그런 곳에서는 음악이 이런 구실을 한답니다.

 

음악의 곡조는 열두 개 정도밖에 되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똑같다. 행진곡이나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민요다. 그 곡조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아마 수용소의 기억 중 우리가 가장 나중까지 잊지 못할 것일 게다. 그것은 수용소의 목소리이고 그 기하학적 광기를 지각 가능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먼저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말살시킨 다음 나중에서야 서서히 우리를 죽여버리려는 그들의 결단을 예리하게 표현한다.(73)

 

 

 

그런데도 어떻게 목숨을 이어가는가.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비가 오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다. 혹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하지만 오늘 저녁 내가 추가로 죽을 배급받을 차례라는 것을 안다. 혹은 상황이 더 안 좋아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보통 때와 다름없이 배가 고프다. 그러면 정말로 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을 때마다 종종 그렇듯 정말로 마음속에 고통과 지루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좋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건드리거나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러면 비는 끝이 날 것이다.(201)

 

 

 

앞에서, 이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며, 어쩌면 더 악랄하게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의 정신과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지난 달포를 간추려 보겠습니다. 지난해 12월 21일까지는 간헐적으로 가슴을 앓았지만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피우고 싶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대로 피우고, 가고 싶은 곳을 내 의지대로 다녀오는 아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21일 밤, 응급실에 들어갔고 이어진 1주일간 온갖 검사를 다 받은 다음, 그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게 되었지만 가슴앓이는 더 심해서 다른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다른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게 되자 가슴앓이는 가라앉았지만 약속한 날의 정밀검사 중에 관상동맥이 다 막혀버린 게 발견되어 그걸 뚫는 시술을 '해버렸고', 갑작스런 그 시술로 출혈이 심해 중환자실에도 유별나게 오래 있었고, 퇴원한지 이미 열흘이 넘었지만 아직도 100미터도 제대로 걸어가지 못하는 환자? 아닐까요? 그렇다면 의사(擬似) 환자가 되어 있습니다.

 

검사받는 것, 약 먹는 것, 수술대 위에 눕는 것, 아파서 중환자실에서 끙끙대는 것 따위는 주변에 미안해서 그렇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일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책임지고 다 해결해 줍니다. 일일이 체크야 하겠지만 환자 보고 돈부터 내라는 소리도 하지 않습니다.

뭐가 힘드는 줄 아십니까? 입원만 하면, 우리는 일단 자존감을 지키기 어려운 생활, 관점에 따라서는 아주 이상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어떤 병원에서는 그것이 더욱 심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아프지 말아야 하지만……. 병원에서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그 기간에 저는 하필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인가』를 따져봐야 하는 생활은 늘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밑줄 그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만큼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만은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싶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면 어떻겠습니까? 영원한 주제 '사랑'처럼(사랑이란 무엇인가), 오묘한 '인간', 철학자들까지 다 동원한 깊디깊은 사고의 분석과 연구가 필요한 '인간', 그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프리모 레비에게는, 그보다 간단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겨우 이것이 그 잘난 인간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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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묵시록=요한계시록 ←Johannes啓示錄 [기독교] 신약 성경의 마지막 권. 신자들의 박해와 환난을 위로·격려하고 예수의 재림과 천국의 도래 및 로마의 멸망 따위를 상징적으로 예언하였다(DAUM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