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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

by 답설재 2010. 3. 14.

「델프트의 풍경」, 1660~1661년경. 캔버스에 유채, 98.5×117.5, 해이그, 마우리츠하위스.

이 그림을 더 잘 볼 수 있는 블로그 http://blog.daum.net/nh_kim12/17201642

 

 

 

하이, 코코.

어떻게 지내요? 학교 생활이나 기숙사 생활이나 여전히 즐거워요? 코코가 있는 곳은 언제나 즐거운 곳일 것 같아요.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들의 삶 아니겠어요?

빨리빨리 세월이 가서 코코가 그림을 가르치는 모습을 봤으면…….

초조해서는 안 되겠지요? 재촉한다고 빨리 배우는 건 아니니까요.

 

『현대문학』연재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을 찾았어요.*

 

그러나 오데트가 돌아가고 나면, 스완은 다음에 또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자면 또 얼마나 지루할까요, 하던 그녀의 말을 생각하면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한번은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진 말아 달라고 간청했는데 그는 그때의 그 불안해하고 수줍어하던 모습과 그 순간 걱정스러운 듯 애원의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던 눈길, 동그랗고 하얀 밀짚모자 앞쪽에 검은 비로드 리본으로 매어놓은 인조 팬지꽃 아래에서 한순간 애처로운 빛을 띠던 그 눈길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런데 참, 당신도." 하고 그녀가 말했다. "한 번쯤 저의 집에 오셔서 차라도 함께 들지 않겠어요?" 스완은 지금 하고 있는 일, 베르메르 드 델프트에 관한 연구 ――사실은 몇 년 전부터 내팽개쳐두고 있는 ――를 핑계로 내세웠다. "알겠어요. 저 같은 변변치 못한 여자는 당신네 같은 대학자님 곁에선 아무것도 할 만한 게 없겠지요." 하고 그녀가 대꾸했다. "저 같은 건 대가분들 앞에 나서면 개구리나 다름없는 존재예요. 하지만 저는 정말이지 공부를 해서 자식을 넓히고 깨우침을 받고 싶어요. 고서들을 찾아다닌다든가 옛날 기록을 들여다보며 몰두하는 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하고 그녀가 덧붙였는데, 거기에는 우아한 부인이 마치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요리를 할 때처럼,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사소하고 불결한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즐거움이라고 잘라 말할 때의 자기만족이 나타나 있었다.

 

 

'베르메르 드 델프트의 연구'라는 부분에는 길다란 주(註)가 붙어 있었어요. 이 주(註)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어요.**

 

베르메르 드 델프트(1632~1675). 프루스트는 1921년 5월 12일, 이제 막 이 네덜란드 화가에 대한 글을 발표한 미술비평가 장루이 보두아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헤이그에 있는 미술관에서 「델프트 풍경」을 본 이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스완의 집 쪽으로〉에서 스완으로 하여금 베르메르에 대하여 연구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이 전대미문의 거장을 그토록 정당하게 평가해 주시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글을 읽고, 제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아직 나는 베르메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15년 전에 내가 뷔야르에게 편지를 보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베르메르의 복제그림을 가서 보고 오라고 부탁한 기억이 납니다." 그 후 프루스트는 편지에서 한 번 더 이 화가에 대한 찬사를 되풀이한다. "아시다시피 베르메르는 스무 살 이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베르메르에 대한 명성은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베르메르에 대한 중요한 연구로 데오필 토레의 「베르메르 드 델프트」가 나온 것은 1866년이었다. 프루스트가 헤이그의 미술관을 처음으로 찾아가 이 그림을 본 것은 1902년 10월이었고 1921년 5월 말 파리의 '죄 드 폼'에서 열린 '네덜란드 거장'전에서 그는 장루이 보두아예와 함께 「델프트 풍경」을 보다가 실신했다. 「갇힌 여인」에서 장차 베르고트는 바로 그 그림, 「델프트 풍경」앞에서 쓰러져 죽게 된다.

 

 

코코.

가슴이 먹먹해진 이유를 알겠죠? 1921년 5월 말, 파리의 '네덜란드 거장'전(展)에서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 당시 베르메르에 대한 글을 발표한 미술비평가 장루이 보두아예와 함께 「델프트 풍경」을 보다가 실신했다, 그 충격이 어떠했기에 '실신'을 했겠어요.

난 이렇게 생각해요. '아름다운, 멋진,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그만큼, 그 그림을 볼 줄 아는 눈도 중요하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갇힌 여인」이라는 부분에서 베르고트가 저 그림 「델프트의 풍경」앞에서 쓰러져 죽는 것으로 쓴다는데, 그건 자신이 그 그림을 보다가 실신까지 한 경험을 살려서 쓴 거겠죠. '나처럼 그렇게 감상하면 충분히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코코.

유감스러운 것이 있어요. 그건 『현대문학』의 이 연재를 13회까지(2010년 1월호, 심장이 고장 나서 두 달분이 밀렸지요) 읽었는데, 이 소설은, 사실은 아직도 첫 부분 「스완의 집쪽으로」에 머물러 있어요. 소설이 그만큼 길어서 보통 책의 열 배도 넘는다니…… 10년 이상 연재될 텐데 내가 이 연재를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어요. 그것도 만약 내 심장이 심술을 부린다면……. 젊었을 때 어느 출판사에서 이 소설의 주요 부분만 발췌하여 낸 책을 읽으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그 번역은 도무지 무슨 얘긴지 잘 읽히지 않아서 그만둔 적이 있었고, 이번에 『현대문학』에 연재되는 걸 확인하고 '잘 됐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이 소설이 그렇게 긴 줄은 미처 몰랐던 거지요.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연재되는 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혹은 재미있게 읽으며―며칠 전 어느 신문의 기사를 봤더니 '의식의 흐름'으로 유명한 이 소설을 읽으면 잠이 올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마지막 기회니까 한 달 한 달 책이 나올 때를 기다리며 한 회 한 회 읽어갈 수밖에요.

 

코코.

내가 어떻게 베르메르를 알게 되었는가 하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에요. 곧 그 소설 이야기를 해줄게요. 화가 이야기니까 이미 읽었을까요? 그렇다면 그냥 감상문이나 쓰면 되겠지요.

저 기다란 주(註)를 읽다가 베르메르라는 화가의 이름이 보여서 그 소설이 생각났고, 얼른 그 소설 18~19쪽에서 위의 저 그림을 찾았어요.

우선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이 그림에 관한 부분만 옮겨 볼게요.***

 

"몇 년 전 시청에서 보았던 그림을 기억하니? 반 라위번 씨가 그 그림을 사들인 후 전시했지. 로테르담 수문과 스히담 수문 쪽으로 바라본 델프트의 풍경 말이다. 하늘이 그림의 엄청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몇몇 건물들 위로는 햇빛이 쏟아져내리고 있었지."

"물감에 모래를 섞어 벽돌과 지붕이 거칠어 보이게 처리했죠. 그리고 강물에는 긴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고, 그림 아래쪽 물가엔 사람들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구요."

"그래, 바로 그 그림이야." 여전히 눈이 그 자리에 있어서 그림을 다시 보고 있는 것처럼 움푹 팬 아버지의 눈자위가 커졌다.

그 그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위치에 가 서 있었던 적도 많았지만, 이 화가가 그린 식으로 델프트를 바라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화가가 반 라위번 씨예요?"

"그 후원자?"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냐, 아냐, 얘야. 그 사람이 아니다. 화가는 베르메르 씨야. 아까 집에 온 손님들이 요하네스 베르메르 씨와 그분의 아내란다. 넌 그분의 화실을 청소하게 될 거다."

 

 

코코.

코코는 그림을 공부하니까 언젠가 저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게 되거든―소설가 프루스트처럼 실신은 하지 말고―그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내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기다릴게요.

그리운 코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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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프루스트, 김화영 옮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연재 13회「스완의 집 쪽으로」제2부 '스완의 사랑' 중에서 옮김(『현대문학』2010년 1월호, 322~323쪽).

** 『현대문학』 2010년 1월호, 342~343쪽.

*** 트레이시 슈발리에 장편소설, 양선아 옮김,『진주 귀고리 소녀』(강, 2004, 1판 13쇄), 17, 19쪽에서.~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