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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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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 샤틀렌느」에 관한 추억 (Ⅱ) -나체체험학습

by 답설재 2010. 3. 19.

☞「어린 소녀 샤틀렌느」에 관한 추억 (Ⅰ)에서 계속

 

 

그러다가 나는 한 작품 앞에서 딱 멈춰 서게 되었다. 그것은 소녀의 상반신상이었다.1 화보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까미유가 임신하여 피신해 있는 동안 아즐레뜨 城의 여주인의 손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이 명랑한 소녀를 소재로 까미유는 홍기 띤 아이의 얼굴,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크게 뜬 두 눈, 모난 턱, 숨쉬는 입, 수척한 관자놀이 등을 표현한다. 이 세상에 대한 신비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는, 불타는, 무엇을 묻는 듯한 두 눈이 가장 큰 초점을 모은다. 특별한 덧붙임 없이, 문학적이거나 신화적인 장식 없이, 위대한 고전 예술의 간결성 속에 까미유는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조각에 부여한다.

 

 

 

「어린소녀 샤틀렌느」(1893)

재료 : 청동, 크기 : 높이 33, 가로 28, 세로 22cm, 서명 : "C. Claudel"

- 까미유 끄로델 서거 50주년 기념전 도록 P. 44~45 -

 

 

소녀는, 새벽의 산골짜기 차가운 개울물에 막 세수를 하고 여명을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 그 눈빛에서 아름답게 살아 있는 한 영혼이 빛살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처럼 초롱초롱한, 그처럼 아름다운 눈빛을, 나는 실제의 인물로도 그림,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었다.

소녀는 선정적이지도 않았다. 그에 비하면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는 정말로 아름답고 선정적이었다. “연인들의 뼈와 살과 근육이 떨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율이 흐르는 조각은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제자 까미유 클로델과 오랫동안 불륜에 빠졌던 로댕의 생생한 체험을 담고 있다.”고 묘사되는 ‘키스’.2

 

둘이서 서로를 감싸고 서로에게 안겨 꿈결처럼 돌아가는 남녀의 모습을 나타낸 ‘왈츠’는 또한 얼마나 선정적이고 아름다운가.3 화보에는 ‘왈츠’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왈츠」(1895)

재료 : 청동, 크기 : 높이 43.2, 가로 23, 세로 34.2cm, 서명 : 받침면 "C. Claudel"

- 까미유 끄로델 서거 50주년 기념전 도록 P. 50~51 -

 

 

까미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면서 가장 에로틱한 작품이다. 로댕과 행복했던 시절의 말기에 제작되었는데 1차본은 나체의 모습으로서 이미 없어졌고, 2차본은 천이 춤추는 커플을 넉넉하게 감싸주고 있다. 오른팔의 유연한 몸짓, 여자 손이 남자의 손바닥을 살포시 마주잡고, 왼팔은 단절됨 없이 연이은 모습으로 아라베스크 양식을 보여준다. 이들의 팔은 평행으로 조금씩 높이가 다르게 놓여져 있다. 이 작품은 어느 한 면에 치우침 없이 모든 각도에서 주시된 작품이며,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관객 자신이 움직이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왈츠를 추는 모습이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고 충분히 선정적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4

 

왈츠를 추느라 조금 등이 구부러진 사내는 멋진 연미복 차림에,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매우 가벼운 몸놀림을 뽐내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민첩함은 춤을 추고 있는 몇 명의 그루지야 인들이 놀랄 정도였다. 그 남자의 파트너인 키 큰 여자는 무도회식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높게 올리고 있었고, 하얀 드레스 차림에 날씬하게 빠진 금색 구두를 신고 눈을 내리뜬 채 남자의 어깨에 백조의 목을 닮은 흰 장갑을 낀 손을 올려놓고 화려한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한순간, 그녀의 검은 속눈썹이나를 똑바로 향한 채 나를 바라보며 흔들렸고,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때 그녀의 파트너는 민첩한 동작으로 손을 움직여 그녀를 돌려놓았다. 그녀의 입술은 회전하며 호흡을 내뱉느라 조금 벌어졌고, 드레스 자락이 은빛으로 번득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일직선으로 되돌아갔다.

 

‘이 정도야’ 한다면 더 짙은 장면도 있다.5

 

그녀는 왈츠를 추며 빙빙 돌 때 그녀의 파트너에게 아주 밀착된 채로 몸을 내버려둘 줄도 알았고 그와 은밀한 사인을 주고받아 남들이 눈치채지 않게 은근히 애무할 줄도 알았다. 그녀는 1896년 12월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는다. “아, 이 젊은 날들이여, 아름다운 젊은 날들이여!!! 가슴과 어깨를 드러낸 찬란한 드레스(…), 오케스트라의 명쾌한 선율들, …….”

 

이처럼 왈츠를 추는 장면을 멋지게 묘사한 소설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나는 어느 작품을 보아도 까미유 끌로델의 그 ‘왈츠’ 만큼 아름답고 선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싶다. ‘왈츠’를 보는 순간, 위의 인용에서 보는 바와 같은 바로 그 이유로 우리 사회의 남녀간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대하여, 혹은 춤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느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그 작품 ‘왈츠’만으로 보면 ‘춤’이라는 것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또한 장담하고싶다.

 

‘애원’은 또한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인가.6 그 여체의 부분 부분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생동감을 주는가.

 

 

「애원(大)」(1899)

재료 : 청동, 크기 : 높이 62, 가로 65, 세로 37cm,

서명 : 밑받침 "C. Claudel", 주조 : 1905년, 위젠느 블로

- 까미유 끄로델 서거 50주년 기념전 도록 P. 34~35 -

 

 

그런데도 ‘샤틀렌느’, 나는 그 소녀의 눈빛만으로 누추한 내 영혼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 육신이 부끄러워 몸을 숨기고 싶었다. 여인에 대하여, 소녀에 대하여 나는 한 번도 그러한 눈빛을 상상한 적이 없었고 그러한 상상을 꿈꾸지도 않았었다. 아, 그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인간의 손으로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일까. 조각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저 열정적인 예술가나 학생들은, 이제 평생을 바쳐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영혼까지 팔아먹은 파우스트처럼 언젠가 딱 한번 그러한 작품 하나쯤은 남길 수 있는 것일까.

 

시험삼아, 지금의 이 완벽한 칼 루이스의 몸에다 석고를 발라 마른 석고 본에 동을 부어 보면 알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칼 루이스의 육체와 한치도 다름없는 브론즈 상이 될 것이다. 한치의 틀림도 없는 덩어리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래서는 그의 육체가 말해 주는 미와 힘의 엘레강스를 재현할 수는 없다.

뛰어난 예술작품이라면 절대로 내포하지 않으면 안 될 ‘그라치아’까지는 내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라치아’란 말은 모습, 태도, 움직임의 품위, 우아함, 아름다움, 세련됨에 덧붙여 신의 은총이라는 의미도 있다.7

 

시오노 나나미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조각으로 나타낸다고 하여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님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헤르만 헤세도 작품 속의 골트문트로 하여금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하였다.8

 

하지만 체험과 관찰과 사랑에서의 잉태에서 얻을 뿐만 아니라 세밀한 데까지 완전한 솜씨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그런 아름다운 것을 언젠가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유를 희생하고 큰 체험을 희생하면서까지 일생을 예술에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의문이었다.

 

나는 지금, '샤틀렌느', 그 소녀의 머리칼이나 얼굴의 각 부분, 목, 가슴, 어깨 같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직도 그 눈동자, 그 시선만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시선에 대하여 나는 그냥 “그 날 그 눈빛에서 충격을 받았다”고만 고백해야 한다.

 

그 날 내가 깨달은 것은, 유치하지만, 이 세상에 조각가는 우선적으로 꼭 있어야 하며, 그것도 당연히 우리들의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미술 교육에 대하여 이제는 어쩔 수도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므로 교사가 되려면 여러 가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도 체험으로 알아야 하며, 그리하여 학생들을 체험으로 가르쳐야 하고, 스스로 훌륭한 조각가이면 인간의 심성을 기르는 데에는 제일 좋겠지만 훌륭한 조각품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 아, 어떻게 그 날 내가 깨달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어림으로 여러 가지를 열거한다고 하여 그 속에 연 걸리듯 그 깨달음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포함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이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 정확하고 옳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자주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가능하면 여러 가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

1. 「어린 소녀 샤틀렌느(LA PETITE CHATELAINE)」, 1893, 재료 : 청동, 크기 : 높이 33, 가로 28, 세로 22cm, 서명 : "C. Claudel"
2.  이명옥,『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해냄출판사, 2002), 70쪽.
3. '「왈츠(LA VALSE)」,1895 - 재료 : 청동, 크기 : 높이 43.2, 가로 23, 세로 34.2cm, 서명 : 받침면 "C. Claudel"
4. 이반 부닌․ 류필하 옮김, 소설집『사랑의 문법』(소담출판사, 1996), 98쪽(소설「나딸리」중에서).
5. 파비엔 카스타-로자․ 박규현 옮김,『연애, 그 유혹과 욕망의 사회사 Histoire du flirt』(수수꽃다리, 2003), 49쪽.
6.「애원(L' IMPLORANTE)」,1899-애원(大); 재료: 청동, 크기:높이 62, 가로 65, 세로 37cm, 서명:밑받침 “C. Claudel", 주조.- 화보, 34~35쪽.
7. 시오노 나나미․이현진 옮김,『남자들에게』(한길사, 1995), 257쪽.
8. 헤르만 헤세․구법조 옮김,『지(知)와 사랑』(삼성기획,1988), 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