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김예실 『행복한 샘』

by 답설재 2010. 4. 26.

의사는 제게 등산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계단을 올라가면 부담스럽고, 오르막을 걸으면 곧 피곤해집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가령 도시철도 4호선이나 7호선을 타려고 지하로 내려가면 곧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고, 어지름증과 두통이 몰려옵니다.

 

어제는 '아침고요수목원'에 가서 계곡의 '선녀탕'에 내려가 보려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기 시작해서 주저앉았더니 아내가 놀라며 할말을 잊더니 그러지 말고 장애인 등록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주 부담스러울 때나 지하주차장 같은 곳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럴까? 그렇게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나을까?' 싶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부산에 내려갔었습니다.

비행기는 탈 수 없게 되었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표지에 「KORAIL과 함께하는 5월의 추천도서」라고 찍힌 『행복한 샘』(어린이용)이라는 책이 여러 권 놓여 있는 걸 봤습니다. 매우 작은 책이어서 금방 읽고, 3학년인 제 외손자에게 주려고 가방에 넣었습니다.

 

남양주양지초등학교 조근실 선생님이 이 글을 읽으면 ㅎㅎ거리고 웃으며 그러시겠지요.

"외손자를 귀여워하느니 방앗고를 귀여워하세요! ㅎㅎㅎ……."

그럴 때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생각해 두었는데, 저는 이제 그 선생님을 만날 일이 없어졌습니다.

 

  

 

 

 

 

                 행복한 샘

 

                            

글 김예실·그림 브라이언 카라스

 

 

우리 오빠 샘이에요.

나는 일곱 살, 오빠는 열두 살.

오빠는 나보다 다섯 살이 더 많지만,

생각하는 나이는 나와 똑같아요.

오빠의 지능은 일곱 살밖에 안 된대요.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요.

내가 아는 게 있다면,

오빠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에요.

 

겨울방학 동안, 오빠는 마을의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일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려 보거라.

언젠가 네가 어른이 되어 네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 큰 도움이 될 거다."

아빠가 말씀하셨죠.

그 말뜻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빠는 펄쩍 뛰며 소리쳤어요.

"야호!"

 

매일 아침

오빠는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해요.

라디오 진행자가 '굿모닝 캐나다!'를

외칠 때쯤이면 오빠는 이미

유니폼을 다 입은 뒤에요.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행복한 하루, 준비되셨습니까?"

"네!" 

 

매일 아침, 오빠는 똑같은 길을 걸어가요.

길모퉁이를 돌면 엠마 아주머니의 야채 가게가 나오죠.

"샘, 장난치지 말고 부지런히 가렴! 일 열심히 하고!"

엠마 아주머니는 요즘 오빠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시대요.

오빠는 노숙자 딕 아저씨에게 반갑게 손을 흔든 뒤,

신호등 옆 가판대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신문을 읽는 척해요.

"어, 어젯밤, 오, 온타리오 주에 크크, 큰 눈!"

오빠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가판대 주인 벤자민 형만 아는 비밀이랍니다.

 

"왔구나, 샘!"

동료들의 인사에 오빠의 입이 귀에 걸려요.

모두가 오빠를 동료로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요?

"처,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행복한 하루,

주, 준비되셨습니까?"

오빠의 인사에 모두가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지만, 그러면 또 어때요?

어쨌든 우리 오빠는 웃을 거예요.

그것도 아주 활짝.

 

가게에서 오빠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예요.

햄버거 재료의 손질을 돕기도 하고,

야채 위에 케첩을 뿌리기도 하고,

햄버거를 손님들에게 나르기도 하지요.

온통 실수투성이이기는 하지만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드디어 오빠의 첫 주급 날이에요.

주인 아저씨가 오빠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표 한 장을 건네요.

오빠는 아마 어리둥절했을 거예요.

오빠는 아직 100까지 셀 줄 몰라요.

그 수표가 1달러 몇 개만큼인 줄도 몰라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몰라요.

 

오빠가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저 숫자가 적힌 종이가 아닌,

좀 더 특별한 것!

 

 

 

 

 

  

오빠는 주급 대신 받은 햄버거를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오빠를 받아 주어서, 오빠를 도와주어서,

반갑게 인사해 주고 웃어 주어서

고맙다는 뜻이었을 거예요.

 

엠마 아주머니는 햅버거를 받아 들고 어리둥절해 하셨어요.

오빠는 가판대의 벤자민 형에게도 햄버거를 나누어 주었어요.

노숙자 딕 아저씨는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며 기뻐하셨지요.

그게 오빠이 주급이라고는 상상도 못하시겠지요?

 

나는 그렇게 많은 햄버거를 본 건 처음이었어요.

"우아! 이게 다 오빠가 일해서 번 햄버거라고?

진짜 많다!"

"오, 샘! 엄마 아빠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구나! 이웃들도 초대해야겠어.

햄버거 파티를 하자꾸나."

그래요, 오빠의 특별한 주급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고……

 

누구보다 오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었어요!

아, 한 사람 더 있네요.

"굿모닝 캐나다! 청취자 여러분,

저는 어제 아주 특별한 햄버거를 먹었답니다.

샘이라는 아이가 제게 보내왔지 뭐예요.

샘, 고맙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준비되었니?"

"네!"

 

이게 이야기의 전부인데, 속표지에 <탄탄 세계어린이 경제마을>은 전 5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안내가 보이고, '급여' '돈을 벌고 쓰는 일'에 대한 설명도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요즘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교육자라는 자부심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장애를 고치는 일에 관심을 가졌지만, 고백하면, 결과적으로는 아주 가까운 주변 사람조차 저 때문에 오히려 정신적 장애를 갖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샘은 장애를 가진 아이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달력을 보니까, 지난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행복한 샘』을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작가가 주인공을 캐나다의 샘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