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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황인숙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황인숙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사 2016 그림자에 깃들어 이방인들을 보면 왠지 슬프다 한 아낙이 오뎅꼬치를 문 금발 어린애들을 앞세워 지나가고 키 작은 서양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회색 양복 서남아 청년이 지나간다 먼먼 땅에 와서 산다는 것 노인과 어린애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와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 황인숙의 시가 눈에 띈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적 접근 방법을 의도적으로 시도하거나 독특한 시를 만들려고 애쓰는 태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2018. 1. 5.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7(1판39쇄) 1 30대 한국인 여성의 평균적 삶에 관한 이야기? 그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원이를 재워 놓고 오랜만에 부부가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한 캔을 거의 비웠을 즈음 김지영 씨가 갑자기 남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대현아, 요즘 지영이가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12) 어느 날 아내(지영)가 그렇게 친구 이야기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해오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 사람 끝내 정신이상자가 되었네' 하고 병원에 보낸다? 어쨌든 얼떨떨하고 간단하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겠지요? 그런 증상이 시댁에 갔을 때 또 일어났습.. 2018. 1. 2.
세르반테스 《질투심 많은 늙은이》 세르반테스 《질투심 많은 늙은이》 오늘의책 1997 신대륙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온 까리살레스(68세)는 소녀 레오노라(14세)를 신부로 맞아들입니다. 그렇게 하고는 질투심 때문에 아무도 그 신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집을 요새처럼 꾸밉니다. 일은 그렇게 해서 정리되는 게 아니겠지요. 호기심을 느낀 청년 로아이사가 그 집 하녀들을 유혹해서 내실로 숨어 들어가 레오노라를 만납니다. 노인 까리살레스는 병을 얻어 죽고 레오노라는 수녀원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에게 자유로워지려는 의지가 있을 때에는, 열쇠와 굳건한 벽, 그리고 담(담장)들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질투심 많은 늙은이』『피의 힘』『유리석사』 등 세 편의 '모범소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2017. 12. 28.
이언 매큐언 《속죄》 이언 매큐언 Ian McEwan 장편소설 《속죄 Atonement》 한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5 1 "담배 다 젖겠다. 꽃이나 뽑아서 들고 있어." 로비는 갑자기 남자의 힘과 권위를 자랑하고 싶어진 듯 사뭇 명령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세실리아로 하여금 꽃병을 쥐고 있는 두 손에 더 힘들 주게 만들 뿐이었다. 그녀는 꽃을 꽂은 채로 꽃병을 물에 담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자연스러운 꽃꽂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설명할 시간도 없었고, 또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몸을 비틀어 로비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꽃병 주둥이의 한 부분이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듯 툭 하는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두 개의 삼각형으로 쪼개져 물.. 2017. 12. 21.
장영희 《생일》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생일》 비채 2006 내 생일인데 저희들끼리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섭섭한 건 다만 그 생일이 또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내년에도 또 맞이할 수 있겠지요. 가만두어도 저희들끼리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하는 그 '축하'. 한 해에 딱 한 번인 그 축하가 미안합니다. A Birthday Christina Rossetti My heart is like a singing bird Whose nest is in a watered shoot; My heart is like an apple tree Whose boughs are bent with thickset fruit; My heart is like a rainbow shell That paddles in a halcyon.. 2017. 12. 17.
하인리히 슐리만 《고대에 대한 열정》 하인리히 슐리만 Heinrich Schliemann 《고대에 대한 열정(슐리만 자서전)》 일빛 1997 1 전설의 도시 트로이를 실존의 도시로 바꾼 학자의 자서전입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은 돈을 모은 후 사업을 정리하고 고고학자로 변신합니다.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사람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죠.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탐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여덟 살 때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책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의 내용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에 트로이가 사라질 때 아이네아스가 불타는 트로이를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견고한 성벽이 흙먼지 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믿고 언젠가 발굴해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외국.. 2017. 12. 12.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1997 "인간이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졌을 때 최선을 다하는 동물이다. 사람을 부리는 쪽에서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진 인간을 다루기가 가장 쉽다." "유지‧보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거기에 필요한 자금력을 갖고 있느냐 여부가 그 민족의 활력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로마인 이야기』 6권에서 본 문장입니다. 이런 문장을 발견하려고 부지런히 읽은 작가가 시오노 나나미였습니다. 역사에 대해서는, 그녀의 작품이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팔렸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작가의 『일본인에게-리더(leader) 편(篇)』이라는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을 구하고 한 뒤에는 그녀의 책을 더 읽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한·중·일 과거사 문제를 재판에 비유하여 해법을 .. 2017. 12. 5.
크리스티앙 보뱅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크리스티앙 보뱅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허정아 옮김, 술 1997 "그대의 뒷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뒤돌아보면 그대는 소나기 속에서 활짝 웃는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지방이라는 것은 우리들 마음 속에서는 너무 모호한 것이다. 나의 고장은 넓이 21㎝, 길이 29㎝인 하얀 종이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거처이다." 동맥 파열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연인에 대한 순결한 사랑과 그 상실감을 표현해낸 프랑스 소설. 1997년 12월 5일에 나는 세 문장을 메모해 두었다. 다른이들은 '별로'라고 생각하는가 싶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한 기자가 "숭고한 입맞춤… 점막 사이에서 터지는 살아있음의 실감"이라는 제목으로 쓴 서평이 보였다. 국민일보, 2006. 2.. 2017. 11. 28.
와다나베 준이치 《실락원》 와다나베 준이치 《失樂園》 창해 1997 "자 그럼, 이건 가지고 갈게." 구키는 가을 옷이 든 종이 봉투를 들고 현관에 서서 아내와 딸을 돌아본다. "그럼……." 그 말을 뒤로 '그간 여러 가지로 속을 썩여 정말 미안했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지만, 막상 말하려고 하니 그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그저 두 사람의 얼굴만 바라본다. "건강하게들 지내……." '이럴 수가 있을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 사진은 번역본 《失樂園 1》《失樂園 2》의 표지가 된 영화 포스터 2017. 11. 28.
독서 메모(1996) 1월 A. 토플러 『자메리카(JAMERICA)』 한국경제신문사 1995 맥스 슐만 『사탕 접시(The Many Loves of Dobie Gillis)』 미래로 1995 이부카 마사루 『천재 기술자 - 나의 벗 혼다 소이치로』 삶과꿈 1993 다니엘 벨 『사라진 제국, 다가올 제국』 조선일보사 1995 김관수(편) 『세계화 좀 차분히 하자구요』 넥서스 1995 2월 이문열 『여우 사냥』 살림 1995 유희근 『세계로 가는 길, 국경은 없다』 고려원, 1995 산드라 브라운 『타이랜드의 노을』 빛샘 1995. 니콜러스 에번스 『속삭이는 사람』시공사 1996 구연무 『이렇게도 산다』(비매품 수필집) 1995 3월 ☆ '이런 책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생각한 때 베르나르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 2017. 11. 24.
독서 메모(1995) 2017.10.31.    케임브리지에서 콧대 세우는 법만 배워온 세실리아는 화학을 전공한 그 남자를 뭔가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애는 집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나 읽으면서 케임브리지에서 삼 년을 허송세월을 하고 돌아왔다. 오스틴이니 디킨스, 콘래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서재에, 그것도 전집으로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읽는 책들을 전공으로 읽어놓고도 어떻게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언 맥큐언 장편소설 『속죄』에서 옮겼습니다(한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5, 2003 1판 26쇄, 219)."집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라는 말이 제 독서를 비웃는 걸 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착각을 일시에 확인해주었습.. 2017. 11. 14.
휘트니 체드윅 外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휘트니 체드윅 外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최순희 옮김, 푸른숲 1997 여자가 도달할 수 있는 사회적 정점이란 젊음의 아름다움이 유지되는 동안만 지속되는 법이다. 반면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한층 더 매력 있어지는 것 같다. 「창조의 신화 : 까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앤 이고네) 이야기에서 본 문장. 정말이라면 좋겠지만(남자가 보기에는) 유감스럽게도(남자가 보기에는) 앤 이고네가 보기에 까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의 경우가 분명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까미유 클로델의 입장이라면 이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2017.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