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기의 즐거움752 "책에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우르간다가 「재치있는 시골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책에게 책이여, 그대가 신중한 태도로 훌륭한 사람들 곁에 다가간다면 세상 물정 모르면서 우쭐대는 사람은 그대의 생각을 알지 못해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어가 매우 조급하게 다루어진다면 비록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짐짓 꾸밀지라도 그대는 이내 알게 될 것이오. 그가 정곡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18) 이롭지 못한 책을 많이 읽고 미쳐버린 라만차의 귀족에 대한 모험담을 그대여 들려주오.(19) 어리석은 책을 내면 끊임없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니.(20)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11, 초판 26쇄). '세상 물정 모르면서'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 2018. 9. 25.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아주 아주 무서운 살인자가 자기가 누구인지,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모르게 되는, 잊어버리게 되는 이야기다. 대단한 소설이구나 싶었다. 읽지 않고 혹은 잘못 읽고 이야기하는 건 건방지거나 유치한 경우가 될 것이다. 1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7) 첫 장면이다. TV에서 "수의사로 일하다 은퇴한 이후로는 평소 주민들과 접.. 2018. 9. 14.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행복만을 보았다》 《행복만을 보았다》 On ne voyait que le bonheur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문학테라피 2015 1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아내는 함께 일하는 사내와 바람을 피고, 아버지는 병들었고 짐스럽고, 괜히 잘하는 척하다가 직장(보험회사)에서 쫓겨나고…… 총을 구해 딸부터 쏘았는데 얼굴 반쪽이 날아갔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멀리 멕시코 해안에서 어느 외로운 모자(母子)를 만나 행복해지는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극복한 딸이 그를 찾아옵니다. 2 제목만 보고는 무슨 생활철학 얘긴 줄 알았습니다. 첫 부분입니다. 인생이란 결국 별 수 없다는 건지……. 한 사람 목숨의 가치는 대개 3만에서 4만 유로 사이를 오간다. 나는 그 가치를 매기는 일을 했다. 한 사람 인.. 2018. 8. 30. 윤혁 《기억과 몽상》 윤혁 장편소설 《기억과 몽상》 청어 2018 1 묘한 소설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특별한 줄거리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거나 기상천외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빗대어 설명한 것 같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나의 그 일들을 과장하고 보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사람이 많을 것 같고, 그래서 한때 유행하다시피 한 이름 '박철수'라는 가명을 쓴 것 같았습니다. 지긋지긋해서 애써 잊어버렸거나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일화들이 마치 내 경험, 혹은 내 친구,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폭력(暴力) 이야기입니다. 일화를 엮은 '폭력 보고서'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박철수 씨는 19.. 2018. 8. 15. 릴리아 《파랑오리》 릴리아《파랑오리》 킨더랜드 2018 1 우리 동네 도서관 유아실 옆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파랑 오리의 기억들이 조금씩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나도, 더러 내 기억이 도망가기 시작한 것 같고, 나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내 짝의 기억들도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기억은 수십 년 전부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어제 일들처럼 생생해서 들을 때마다 내 피부를 바늘로 콕 콕 찌르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저 사람이 오늘은 왜 저러지?' 싶었고, 그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고, 정신 차려 들어보니까 아무래도 두서가 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수십 년 전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언제나 못마땅했습니다. 피부를 바늘로 콕 콕 찌르듯 하는 걸.. 2018. 8. 10.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1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니체) 인간이란, 삶이란, 그 어떤 극한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까지 살아봐야 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체험과 그 고통, 시련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 분석으로 이야기해줍니다. '삶이란 무의미하다'는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한 의미치료법(로고테라피 Logotherapy)을 체험수기, 치료 방법, 학회 발표문으로 구성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말로써 요약하면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 2018. 8. 4.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난다' 2013 1 며칠 전,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 삼거리 한복판에 난데없이 돌덩이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전면에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장 하나가 큰 글자로 새겨져 있고, 아래쪽으로 더 작게 새겨진 글자는 그 거친 돌덩이가 무슨 바르게 살기 운동 협의회의 주관으로 세워진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도 여기저기 고속도로의 나들목에서 이런 비슷한 문구가 새겨진 돌덩이들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말은 그 비석 앞을 지나가며 그것을 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부도덕자로 취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 2018. 7. 26. 이문열 《아가雅歌》 이문열 《아가雅歌》 민음사 2012 '당편이'라는 인물의 일대기입니다. 그녀의 그런 걸음걸이는 온전치 못한 그녀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마 어렸을 적 가벼운 소아마비를 앓은 탓이겠지만 그녀는 손발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또 구루병의 증상도 있었던지 목이 짧고 등이 굽어 어깨가 귀 가까이 솟아 있었다. 키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그녀는 성년이 된 뒤에도 초등학교 상급반이었을 때의 우리보다 작았다. 거기다가 유인원(類人猿)을 연상시키는 길쭉한 얼굴이 가슴께까지 묻혀 있어 어깨가 귀 위로 솟은 듯할뿐더러 어떤 때는 얼굴 길이가 그녀 키의 삼분의 일은 되는 듯 느껴졌다.(16) 이 작가의 책은 적어도 다섯 권 중 네 권은 읽었을 것입니다.1 나오는 대로 다 읽다가 나중에는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그런 책.. 2018. 7. 16. 존 보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존 보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정희성 옮김, 비룡소 2007 1 나치스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사령관'의 아들 브루노는 낯설고 황량한 곳에서 베를린과 그곳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수용소 철조망 안을 기웃거리다가 아홉 살 동갑내기 쉬뮈엘을 만나 철조망 이쪽과 저쪽에서 남몰래 얘기를 나누며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쉬뮈엘은 종적을 감춘 아버지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졸라 아버지만 두고 베를린으로 돌아가게 된 바로 전 날, 브루노는 쉬뮈엘에게 함께 아버지를 찾아보기고 하고 철조망 안으로 들어갑니다. 쉬뮈엘이 구해준 줄무늬 파자마와 헝겊 모자로 변장했으므로 아무도 그 아이가 사령관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 2018. 7. 14. 필리프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중심Centre》 2018 《중심Centre》. 읽고 싶은 책, 아직은 읽을 수 없는 책. 2018. 7. 10.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 박종서 옮김|김영사|1989 사월 어느 날, 열매가 달리는 걸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다가 가르쳐주었습니다. "블루베리예요." "아, 예."('아하! 이게 바로 블루베리구나!') 아침에 자주 먹는 그 블루베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뜰에서였습니다. 그때 나는 뜻있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거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내 신조는 이렇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이.. 2018. 7. 8. 조원희 글·그림 《혼자 가야 해》 조원희 글·그림 《혼자 가야 해》 느림보 2011 동네 도서관(유아실)에서 빌렸습니다. 2006년쯤에 놀라운 시 「너 혼자」(박상순)를 봤고, 이 책이 나와서 신문에 소개되었을 때 그 시가 생각났습니다. 시 「너 혼자」 때문에 몇 년 간 기억하고 있었던 책을 빌리면서 비로소 유아용인 걸 알았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세 번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감습니다. 그럼 길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아지의 영혼을 맞이하려고 깊은 숲 속 검은 개가 꽃을 가꿉니다. 작은 배도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힙니다. 강아지는, 그러니까 강아지의 영혼은 친구와 놀던 공원을 이제 혼자 걸어갑니다. 기차도 혼자 탑니다. 검은 개가 손님을 맞이할 숲 속으로 어린 강아지, 떠돌이 강아지, 아픈 강아지, .. 2018. 7. 3.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