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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by 답설재 2018. 9. 14.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아주 아주 무서운 살인자가 자기가 누구인지,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모르게 되는, 잊어버리게 되는 이야기다.

대단한 소설이구나 싶었다.

읽지 않고 혹은 잘못 읽고 이야기하는 건 건방지거나 유치한 경우가 될 것이다.

 

 

1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7)

 

첫 장면이다.

TV에서 "수의사로 일하다 은퇴한 이후로는 평소 주민들과 접촉이 거의 없는 은둔형 외톨이었으며 찾아오는 가족도 전혀 없었다"고 한 연쇄살인범 김병수(70)가 30년간 수십 명을 살해하고 '은퇴'한 지 25년째 되는 해에 또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알츠하이머가 점점 심해지는 상태에서 자신을 돌보는 재가(在家) 요양보호사 김은희를 자신이 입양한 딸로 오인하고 있었고, 새로 등장한 연쇄 살인범 박주태와의 대결에서 자신의 살인 기량을 회복하고 김은희를 지켜내려는 의지를 불태우다가 마침내 하필이면 박주태를 사랑하는 딸 김은희를 살해하여 세상에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만다.

 

 

2

 

 

왜 그런 인간이 되었는가.

알 수 없다.

 

열여섯 살에 시작해서 마흔다섯까지 계속했다. 4·19와 5·16을 겪었다. 박정희가 시월유신을 선포하고 종신독재를 꿈꿨다. 육영수가 총에 맞아 죽었다. 지미 카터가 와서 박정희더러 독재 좀 그만하라고 하고는 팬티만 입고 조깅을 했다. 박정희도 암살당했다. 김대중이 일본에서 납치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김영삼은 국회에서 제명됐다. 계엄군이 광주를 포위하고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나 나는 오직 살인만 생각했다. 이 세상과 혼자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죽이고, 달아나서, 숨었다. 다시 죽이고, 달아나서, 숨었다. 그때는 DNA 검사도, 폐쇄회로 TV도 없던 시절이었다. 연쇄살인이라는 용어조차 생경했다. 수십 명의 거동수상자와 정신병자가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몇몇은 허위 자백까지 했다. 경찰들끼리는 서로 협조를 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경찰 수천 명이 작대기를 들고 애먼 야산만 쑤시고 다녔다. 그게 수사였다.

 

좋은 시절이었다.(32~33)

 

'그러나 나는 오직 살인만 생각했다.'?

'그러나'?

 

 

3

 

 

망각과의 싸움을 치른 오디세우스 이야기, 위험한 몰입(『몰입의 즐거움』) 이야기, 무지→망각→파멸로 진행된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나오고 니체도 등장한다.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31~32)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친구여,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것 따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신보다 더 빨리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마치 나 들으라고 써놓은 듯한 니체의 글.(57)

 

책을 읽는데 갈피에서 메모지가 툭 떨어진다. 오래전에 베껴 적은 것인지 종이가 누렇게 바랬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_니체"(62)

 

 

4

 

 

몽테뉴 『수상록』도 이야기한다.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14)

 

이런 구절 때문인지 소설도 그렇게 읽혔다. 사실들을 날카롭고 냉엄한 분석, 사색적인 시각으로 에세이처럼 전개하였다. 그런 느낌을 주는 문장들의 사례.

 

나는 악마인가, 아니면 초인인가, 혹은 그 둘 다인가.(33)

 

두렵다. 솔직히 좀 두렵다.

경을 읽자.(47)

 

"박주태는 어떻게 만났니?"

아침을 먹다 은희에게 물었다.

"우연히요. 정말 우연히요."

은희가 말했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우연히'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63)

 

살인이 가장 산뜻한 해결책일 때가 있다. 언제나는 아니다.(63)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을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143)

 

나도 죽으면 좀비가 될까. 아니, 이미 돼 있는 건가.(144)

 

"무서운 건 악마가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145)

 

 

5

 

 

살인, 알츠하이머가 어떻게 이렇게 느껴질 수가 있나? 살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에게도 이미 상당히 가까이 와 있을지 모를 그 알츠하이머 이야기가 상습적인 내 졸음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몰아내고 있었다.

 

단어들이 점점 사라진다. 내 머리는 해삼처럼 변해간다. 구멍이 뚫린다. 미끌거린다.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 아침이면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다 읽고 나면 읽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읽는다. 문장을 읽을 때마다 필수적인 부품이 몇 개 부족한 기계를 억지로 조립하는 기분이다.(22~23)

 

인간이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98)

 

(…) 아무래도 놈은 내 손에 죽은 게 분명한 것 같다. (…) (124)

 

그는 현재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어떤 곳, '적절치 못한 곳'에서 헤맨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가 점증해가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126)

 

사람들이 은희와 관련된 내 기억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아무도 내 편이 없다.(141)

 

두려워진다. 나에게도 알츠하이머가 다가오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냥 기다려야 하나?

 

 

6

 

 

살인자, 알츠하이머의 세상은 극한 상황일까?

어떤 극한 상황?

두 가지 단서가 있다.

 

나는 징벌방에 대한 환상도 갖고 있었다. 관을 연상시키는 좁은 방에 갇혀 뒷수갑이 채워진 채 혀로 식기를 핥아먹는 장면을 거듭 떠올리곤 했다. 나는 처절하게 짓밟힌 채 탈진하여 내가 떠나온 세계, 흙의 세계를 극도로 갈망하여 발버둥을 치게 될 것이다. 그 상상은 꽤 짜릿한 쾌감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삶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악마적 자아의 자율성을 제대로 수렴시키는 세계, 내게는 그곳이 감옥이고 징벌방이었다. 내가 아무나 죽여 파묻을 수 없는 곳, 감히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할 곳, 내 육체와 정신이 철저하게 파괴될 곳, 내 자아를 영원히 상실하게 될 곳.(87)

 

무심코 외우던 반야심경의 구절이 이제 와 닿는다. 침대 위에서 내내 읊조린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11,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