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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윤혁 《기억과 몽상》

by 답설재 2018. 8. 15.

윤혁 장편소설 《기억과 몽상》

청어 2018

 

 

 

 

 

 

 

 1

 

 

묘한 소설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특별한 줄거리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거나 기상천외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빗대어 설명한 것 같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나의 그 일들을 과장하고 보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사람이 많을 것 같고, 그래서 한때 유행하다시피 한 이름 '박철수'라는 가명을 쓴 것 같았습니다.

 

지긋지긋해서 애써 잊어버렸거나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일화들이 마치 내 경험, 혹은 내 친구,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폭력(暴力) 이야기입니다.

일화를 엮은 '폭력 보고서'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박철수 씨는 1961년, 어느 항구도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외가는 남로당 부역 전력이 있고 아버지는 6.25 전쟁 상이군인이었습니다.

박철수 씨는 갖가지 폭력을 겪으며 성장합니다. 학교에서도 성당에서도 폭력을 경험했고, 대학생 때는 강제징집을 당했고, 어렵게 들어간 재벌기업에서는 노사갈등, 소비자와 기업이 직원들에게 가하는 폭력 때문에 번민에 휩싸이다가 40대 중반에 퇴직했고, 이후에도 삶의 고달픔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렇게 절규하고 회의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폭력 가운데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내용은 분노하지 않고 당하는 폭력이었다.

(……)

삶이란 내 의지와 관계없이,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미리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내가 노력하면 바뀌는 걸까? 지금 꾸는 이 희한한 꿈이 현실인가. 아니면 깨어나서 맞이할 서글픈 현실이 꿈인가. 그렇다면 언덕 위 행복의 나라는 어디인가?(283)

 

 

3

 

 

194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도 그런 경험은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걸핏하면 "쥐를 잡자" "나무를 심자" "불조심 강조기간" 온갖 흉패를 달고 다녔고, 어떻게 선생이 되었을까 싶은 4학년 담임은 그 까닭도 말해주지 않는 폭력을 휘둘러댔는데 아마도 교사도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건방진 아이가 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일일이 열거하면 또 한 편의 "기억과 몽상"이 되겠지만,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은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어 넣은 아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노인이 되어버린 지금도 떳떳하지 못한 취미활동 때문에 가능하면 숨어서 책을 읽고 싶어 하고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상생활이어야 한다!"던 그 담임의 지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비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왜 대체로 더 돋보이는지 기가 막혀 합니다.

 

몇 가지 일화를 덧붙인 것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폭력, 내 속에 들어박혀 때때로 나를 억압하고 비굴하게 하던 그 폭력, 나에게 열등감을 갖게 하고 힘겹게 일어서는 자존감을 무너뜨리기도 하던 그 폭력의 성격을 이 소설 "기억과 몽상"이 설명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4

 

 

"언덕 위 행복의 나라는 어디인가?"

그럼에도 그는 또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도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박철수 씨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삶이란,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얼마나 신기하고 신비한 것입니까? 시련이 아니면 무엇으로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박철수 씨! 힘내세요! 시련이 깊고 길수록 까짓 거, 갈 데까지 가보는 거죠!"

 

그건 사실은 유사한 폭력을 경험한 나 자신을 위한 위로와 격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