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by 답설재 2018. 7. 26.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난다' 2013

 

 

 

 

 

 

 

 

 

1

 

며칠 전,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 삼거리 한복판에 난데없이 돌덩이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전면에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장 하나가 큰 글자로 새겨져 있고, 아래쪽으로 더 작게 새겨진 글자는 그 거친 돌덩이가 무슨 바르게 살기 운동 협의회의 주관으로 세워진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도 여기저기 고속도로의 나들목에서 이런 비슷한 문구가 새겨진 돌덩이들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말은 그 비석 앞을 지나가며 그것을 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부도덕자로 취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불행을 그 사람의 도덕성에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바르게 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야말로 도덕을 빙자하여 그 불행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횡포가 아닐 것인가.(232)

 

'왜 하필 이 부분을?' 하겠지만 언제라도 이 책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

 

단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호하다? …… 그간 긴가민가했던 것들에 대해 작가는 망설일 것 있느냐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수없이 듣고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결연히 유보적인 입장이어서 '삶의 태도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별 생각도 없이 살아온 자신이 쑥스러웠고, 그렇게 해주는 글들이 무서웠습니다.

 

80편 수필들이 살아 있어서 새삼스레 내가 이 수필을 읽게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매번 글의 전개, 관점이 궁금해지면서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쓰지 않아서 간결하거나 비장하거나 화려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글이구나!' 싶었습니다.

그의 이성과 정서가 지나가는 사람 또 있을까 싶은 영하 15도 쯤의 한겨울, 얼음을 뒤집어 쓴 개울가 버들가지에 비치는 햇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3

 

이해하지 못하고 넘긴 부분도 있었습니다. 다시 읽으면 파악할 수 있을까, 망설이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내가 아직 생생하다면 여러 번 다시 읽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는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뿐이다.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도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장 주네는 "자신이 배반자라고 여겨질 때 마지막 남아 있는 수단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도 아마 이와 관련될 것이다.(275)

 

이런 부분에서도 이 작가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몇 번 더 읽어야 했던 부분을 망설이지 않고 넘겨버렸거나, 아마도 더 중요한 이유는 내 삶과 그 경험의 깊이가 보잘것없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