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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문열 《아가雅歌》

by 답설재 2018. 7. 16.

이문열 《아가雅歌》

민음사 2012

 

 

 

 

 

 

 

'당편이'라는 인물의 일대기입니다.

 

그녀의 그런 걸음걸이는 온전치 못한 그녀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마 어렸을 적 가벼운 소아마비를 앓은 탓이겠지만 그녀는 손발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또 구루병의 증상도 있었던지 목이 짧고 등이 굽어 어깨가 귀 가까이 솟아 있었다. 키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그녀는 성년이 된 뒤에도 초등학교 상급반이었을 때의 우리보다 작았다. 거기다가 유인원(類人猿)을 연상시키는 길쭉한 얼굴이 가슴께까지 묻혀 있어 어깨가 귀 위로 솟은 듯할뿐더러 어떤 때는 얼굴 길이가 그녀 키의 삼분의 일은 되는 듯 느껴졌다.(16)

 

이 작가의 책은 적어도 다섯 권 중 네 권은 읽었을 것입니다.1 나오는 대로 다 읽다가 나중에는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그런 책들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내가 변했는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걸 정말 읽어야 하나?' 싶었고,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책처럼 속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도 조금은, 혹은 부분적인 당편이가 아닐까?' 싶어지자 돌연 지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편이를 소재로 한 '고향(故鄕)' 이야기였습니다.

온갖 에피소드를 생산하며 고생고생 살아가던 당편이가 마침내 제발로 "재활원"이라는 이름의 장애자 수용시설로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고향'은 이제 아는 사람 없는 곳, 아는 사람 없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었습니다.

 

"모도 지 살기 바쁜 세상이 됐고, 온갖 요란한 게 다 사람 혼을 빼놓는 세상이 됐으니 누가 당편이를 딜따 보고 앉아 싱거운 얘기를 맹글어내고 있겠노?"(293)

사람의 존재를 존재답게 해주는 소속과 관계는 소통에 바탕한다. 타자(他者)와 소통이 없이는 소속도 관계도 없다.(295)

오늘날 중심의 형태로만 남아 있는 부락공동체의 본질은 갈수록 양파의 속을 닮아간다. 위장된 온전함으로 덩이져 있지만 그 실질은 능력으로 구분되고 이기로 쪼개진 동심원들의 집합일 뿐이다. 한 겹 한 겹 벗겨가면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243)

 

처음부터 작가의 세세한 설명을 듣기 시작하여 그 설명이 끝까지 따라다니는 소설이었습니다. 처음 부분입니다.

이제는 부르는 쪽도 불리우는 쪽도 꺼려하는 환유(換喩)들이 있다. 앉은뱅이 절름발이 곰배팔이 귀머거리 벙어리 청맹과니 용천뱅이 곱사등이 언청이 외팔이 땅딸이 난쟁이 키다리같이 신체적인 흠결(欠缺)이나 질병의 후유증으로 그 사람 전체를 이름하는 말들이 그러하고, 미치광이 반편이 비렁뱅이 바람둥이 덜렁뱅이 허풍선이 억보 떼쟁이 악바리 맹추 숙맥이 오입쟁이같이 정신적인 장애 혹은 불균형을 들어 비유의 대상을 갈음하는 말들이 그러하다.

그 환유들의 임자도 요즘 세상에서는 만나보기 쉽지 않다. 예전에 그들은 우리 곁에 있었고 우리와 함께 세상을 이루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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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제를 위하여, 오디세이아 서울, 호모 엑세쿠탄스, 삼국지(10권), 수호지(10권), 초한지(10권), 불멸(2권), 시인, 선택, 리투아니아 여인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