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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2

기형도 《기형도 전집》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슬픔의 이 「빈집」을 읽다가 의무처럼 이 책을 생각했습니다. 전집? 몇 권짜리? 이 전집은 단 한 권이었습니다. 그 한 권을 나는 버렸습니다. 2005년엔가, 가진 것들이 힘겨워서 반으로 줄이기로 하고 근무하는 학교 도서실에 한 차례, 어느 단체에 두 차례 실어다 주었고, 나머지는 폐품으로 버렸습니다. 이 책은 그 학교 도서실로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그렇게 버려놓고 두고두.. 2018. 6. 27.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4 1 2010년, 4기 식도암이 림프샘, 허파까지 전이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입니다.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악명 높은 단계 이론,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단계를 거쳐 결국은 '수용' 단계에 이르러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에서 '부정'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 이 기록의 대부분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지만 몸이 아프다는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좌절' 혹은 '아픔'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부터 놀라워서 이 인물은 평범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멍청한 질문에 우주는 아주 귀찮다는 듯 간신히 대답해준다. "안 될 것도 없잖아.. 2018. 6. 23.
정민 《스승의 옥편》 정민 《스승의 옥편》 마음산책 2007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댁에 갔을 때, 하도 많이 찾아서 반 이상 말려들어간 민중서관판 한한대자전을 보았다. 12책으로 된 한화대사전도 손때가 절어 너덜너덜했다. 선생님도 찾고 또 찾으셨구나. 둥근 돋보기로도 한 눈을 찡그려가면서 그 깨알 같은 글씨를 찾고 또 찾으시던 모습이 떠올라 참 많이 울었다. 사모님의 분부로 선생님의 손때 묻은 그 책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헐어 바스라지고 끝이 말려들어간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려서 폈다. 접착제로 붙이고 수선해서 책상맡에 곱게 모셔두었다. 지금도 사전에 코를 박으면 선생님의 체취가 또렷이 느껴진다. 내 조그만 성취에도 당신 일처럼 기뻐하시던 어지신 모습도 생전처럼 떠오른다.(15~16) '漢文學者가 쓴 책'이면 해.. 2018. 6. 18.
알렉스 하워드 《책 읽는 고양이》 알렉스 하워드 《책 읽는 고양이》 이나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7 1 우리 생각하는 고양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지식을 위해 살지.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야. 하지만 인간들은 명성과 돈, 섹스와 전쟁 등 개인적인 욕구 아래 지식을 깔고 뭉개지. 그들은 대학에 값을 매기고 그것을 사람 죽이는 기계로 만들며, 지식을 마치 금괴처럼 탐낸다고. 그들은 모두 《실낙원》의 사탄 같아. 언제나 여기저기서 움직이며, 시끄럽게 소란을 일으키니까.(99~100) 책 읽는 고양이 조던의 사촌 비블리오 샤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듣고 조던이 생각합니다. 만족감!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모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고양이들에게는 있고, 인간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재산, 섹.. 2018. 6. 7.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지음|김미성 옮김|김민지 그림 Ⅰ 이것은 나중에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보고 싶을 때 쓸 메모입니다. 정확한 메모라고 장담할 수 없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내가 다시 만든다 해도 새로 작성한 메모가 이 메모와 같을 리도 없습니다. 나중에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보기 위한 메모라고 했지만 심지어 지금까지 만든 이런 메모에 대해 자신을 신뢰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정말로 처음 읽는 것 같아서 '이럴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Ⅱ 이 메모는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약속'입니다.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한번만 더 읽자는 약속……. "어린 왕자"라면 "어린것들이나 읽을 책이 아닌가? 그렇지?.. 2018. 5. 29.
베로니크 올미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베로니크 올미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LA PLUIE NE CHANGE RIEN AU DESIR 최정수 옮김 Human & Books 2006 1 5년 전에 헤어진 부부가 비 내리는 오후, 생 쉴피스 광장에서 다시 만나 뤽상부르 공원에서 키스를 나누고 뤽상부르 호텔에 들어가 집요하고 쓸쓸한 정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2 여자는 극심하게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먼저 전화를 했고 여자가 만나자고 했고 남자가 수락했습니다. 여자는 "울지 않겠다고, 그녀 안에서 굴종하려 하는 모든 것에, 세상을 포기하고 혼란에 몰아넣으려 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그것들을 제지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남자가 모르고 그녀에게 안겨다 준 놀라움과 분노 때문에 이 남자 앞에서 울부짖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112) .. 2018. 5. 27.
안대희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희 《선비답게 산다는 것》 푸른역사 2007 선비는 일찍 일어나서…….' 책을 구해두고 읽지는 않은 채 10여 년 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을 책으로 여겼습니다. 주로 조선의 선비들 얘기였습니다. 이 선비는 이렇고 저 선비는 저렇고, 이런 생각을 했고 저런 일을 했고, 그러므로 어쩌면 '선비는 일찍 일어나서…….'와 같은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 스스로 쓴 선비들의 묘지명 - 13년 동안 써내려간 일기 《흠영》 - 이경전과 김정국 식 여유 - 성호 이익의 절식 철학 - 역사가 심판한 김안로, 역사가 평가한 유목인 …………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1485~1541)은 팔여(八餘)라는 호도 갖고 있었는데 어느 친구가 이 호의 의미를 물었을 때 이렇게 대꾸했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 2018. 5. 15.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지음 김미성 옮김|김민지 그림 여섯 살 적에 나는, 『경험담』이라는 제목의 원시림에 대한 책에서 굉장한 그림 하나를 보았다. 그 그림은 맹수를 삼키고 있는 보아 뱀을 묘사하고 있었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보아 뱀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런 다음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소화가 되는 반년 동안 잠을 잔다." 그때 나는 정글의 모험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었고, 그 결과 색연필로 내 생애 첫 번째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그건 나의 1호 그림이다. 그건 이랬다. 난 나의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 그림이 무서운지 물었다. 어른들은 내게 대답했다. "모자가 왜 무섭겠어?" 내가 그린 그림은 모자가 아니었다. 그건 코.. 2018. 5. 8.
아름다운 한국, 한국의 봄 아름다운 한국, 한국의 봄 서울의 산들은 산등성이 사이 사이에 검은 바위투성이나 뒤틀린 소나무의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줏빛 황혼이 지는 저녁이면 모든 산봉우리들이 마치 반투명의 핑크빛 자수정(紫水晶)처럼 빛난다. 산그늘에는 코발트색이 깃들고 하늘은 초록색이 .. 2018. 5. 1.
《장자》 《장자》 오강남 풀이, 현암사 2014(1999 초판 29쇄) 1 『장자』를 읽어봤습니다. 장자……, 내가 『장자』를 읽다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습니다. 읍내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을 것입니다. 방학 때 친구네 아버지가 우리 집 사랑에 놀러와서 "넌 책 좀 읽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장자'도 읽었겠지? 나하고 얘기 좀 하자" 하며 막무가내로 '덤벼들던' 때가 떠오릅니다. 오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럼 한번 얘기해 보실까요?" 하면 좋겠는데 그분도, 그분의 아들인 내 친구도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었습니다. 2 별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퉁소 소리 2. 자유(子遊)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감히 물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자기(子綦)가 대답했습니다.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2018. 4. 22.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황소연 옮김, 21세기 북스, 2010(1판64쇄) "매사에 너무 많이 걱정하고 늘 마음을 졸였던 것 같아요. 지금 같아서는 세상사를 좀 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젠 늦었지요."(92) 어떤 상대를 만나도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101) "걸어보니 신기하게도 참 재밌네요."(110) 시간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을 때는 음식이나 주사액이 수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식욕이 없는 환자에게 억지로 음식을 떠 넣는다고 해서 그 음식이 체력을 보강해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146) 눈을 감는 순간,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내 곁을 지킨다면 그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2018. 4. 15.
마저리 키넌 롤링스 《비밀의 강 The Secret River》 마저리 키넌 롤링스 글|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비밀의 강 The Secret River》 김영욱 옮김, 사계절 2013 1 플로리다의 숲 속 칼포니아네 마을에도 불경기가 찾아들었습니다. 아빠는 생선을 팔아 생활해왔는데 요즘은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조만간 가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칼포니아는 알버타 아주머니로부터 '비밀의 강'을 찾아가는 길을 알아내어 메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아왔습니다. 아빠는 그 메기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외상으로 내어 주었고, 사람들은 기운을 차려 일거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2 '비밀의 강'을 다시 찾고 싶었던 칼포니아가 알버타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입니다( 43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 부분만 옮김). "알버타 아주머니, 비밀의 강을 못 찼겠어요." "얘야, 이런 말을 해서 안됐다만.. 2018.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