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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정민 《스승의 옥편》

by 답설재 2018. 6. 18.

정민 《스승의 옥편》

마음산책 2007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댁에 갔을 때, 하도 많이 찾아서 반 이상 말려들어간 민중서관판 한한대자전을 보았다. 12책으로 된 한화대사전도 손때가 절어 너덜너덜했다. 선생님도 찾고 또 찾으셨구나. 둥근 돋보기로도 한 눈을 찡그려가면서 그 깨알 같은 글씨를 찾고 또 찾으시던 모습이 떠올라 참 많이 울었다.

사모님의 분부로 선생님의 손때 묻은 그 책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헐어 바스라지고 끝이 말려들어간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려서 폈다. 접착제로 붙이고 수선해서 책상맡에 곱게 모셔두었다. 지금도 사전에 코를 박으면 선생님의 체취가 또렷이 느껴진다. 내 조그만 성취에도 당신 일처럼 기뻐하시던 어지신 모습도 생전처럼 떠오른다.(15~16)

 

'漢文學者가 쓴 책'이면 해묵은 얘기들이고 자주 난해한 부분도 나오겠지 싶어서 책장 안에 넣어놓고 읽진 않은 책이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상큼한 일화들이었습니다.

잘난 척한 부분이 없는 글들이었고, 짧은 글들이어서 읽기도 편했습니다.

 

4학년짜리 누나가 덧셈 뺄셈을 못하는 일곱 살배기 제 동생이 못내 한심했던지 제가 가르치겠다고 먼저 나섰다.

"7 빼기 5는 뭐야?" "7 빼기 5?" "그래! 7에서 5를 빼면 뭐냐구?" "7!" "뭐? 어째서 7이야! 7에서 5를 뺐는데?" 누나의 말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답답하다는 듯 동생이 말한다. "자! 여기 7이 있지?" "그래." "그리구 여기 5가 있지?" "그래." 동생은 손가락으로 5를 가린다. "7에서 이렇게 5를 빼고 나면 7만 남잖아? 그러니까 7이지." 할 말 잃은 누나가 쪼르록 달려와 말한다. "아빠! 얘 좀 봐. 7에서 5를 빼면 7이래요."

나는 에디슨이 생각나서 기특해서 혼자 막 웃었다.(144, 「에디슨이 생각나서」)

 

한 번 더 말하면 '옥편' 같은 얘기들인가 싶었는데 이런 글들이 더 많았습니다.

필자의 설명에 따르면 '옛글을 읽다 만난 잊지 못할 풍경들' '논설적 성격의 글' '생활 속의 단상' '선인들의 독서와 작문에 관한 글모음'으로 구성된 책으로, '이런 얘기는 잊히지 않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