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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by 답설재 2018. 6. 23.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4

 

 

 

 

 

 

1

 

2010년, 4기 식도암이 림프샘, 허파까지 전이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입니다.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악명 높은 단계 이론,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단계를 거쳐 결국은 '수용' 단계에 이르러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에서 '부정'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 이 기록의 대부분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지만 몸이 아프다는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좌절' 혹은 '아픔'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부터 놀라워서 이 인물은 평범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멍청한 질문에 우주는 아주 귀찮다는 듯 간신히 대답해준다. "안 될 것도 없잖아?"(25)

 

타협의 내용이란 이렇다. '당신이 조금 더 여기 머무르게 해줄 테니, 대신 당신도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를 내놓으시오.' 환자가 내놓아야 하는 것 중에는 미각, 집중력, 소화능력, 머리카락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것은 확실히 합리적인 거래처럼 보인다.(25)

 

지금까지 무엇보다 실망스럽고 무서운 것은 목소리가 갑자기 아이처럼 (……) (73) 나는 그런 순간들을 위해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화에 끼고 싶으면 (……) (75) 내가 되찾고 싶은 것은? 우리 언어에서 가장 간단한 두 개를 가장 아름답게 늘어놓은 것, 말의 자유freedom of speech다.(84)

 

 

3

 

책을 읽을 때마다 밑줄 그은 문장이 많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 누가 보면 '무슨 밑줄을 이렇게나 그어놓았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두껍지도 않은 이 책에 밑줄을 많이 그었습니다.

더 많이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읽었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는 공감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아픔에 관한 나의 경험이 아직 아주 미흡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아픈 것 같은 느낌으로 읽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때 중환자실을 드나들긴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만큼 아파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언젠가 나도 이렇게 아플 수 있으므로 그때를 생각하며 읽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미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Ⅷ)의 단편적인 그 기록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4

 

앰버로즈 비어스가 《악마의 사전Devil's Dictionary》에서 내놓은 '기도'의 정의와 정신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지극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도: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

여기에 들어 있는 유머를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신이 모든 것을 잘못 배치했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자신이 그 잘못을 바로잡는 법을 신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순 속에는 주도권을 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아니 도덕적 권위를 지닌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불편한 생각이 반쯤 묻혀 있다. (……) (43~44)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까지 불편하게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또다른 세속적인 문제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병을 이겨낸 뒤에 신앙인들 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네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것도 왠지 짜증스러울 것이다.(40)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의 본래 이름은 "Mortality"(사망, 죽음, 치사., 죽을 운명)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