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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기형도 《기형도 전집》

by 답설재 2018. 6. 27.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슬픔의 이 「빈집」을 읽다가 의무처럼 이 책을 생각했습니다.

전집? 몇 권짜리? 이 전집은 단 한 권이었습니다.

그 한 권을 나는 버렸습니다.

 

2005년엔가, 가진 것들이 힘겨워서 반으로 줄이기로 하고 근무하는 학교 도서실에 한 차례, 어느 단체에 두 차례 실어다 주었고, 나머지는 폐품으로 버렸습니다.

이 책은 그 학교 도서실로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그렇게 버려놓고 두고두고 가슴 아파한 책이 이 한 권이었습니다. '내가 정신을 놓았었지…….'

 

2000년 겨울 어느 날, 이 책을 가지고 경부선 열차를 탔었습니다.

간간이 눈발이 날렸고 이 책의 어디쯤에서 눈을 들어 그 눈발을 바라보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서였습니다.

그런 책을 버린 것입니다.

 

"그 책만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어려우면 새 책을 사다 드릴게요."

몇 번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