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크 올미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LA PLUIE NE CHANGE RIEN AU DESIR
최정수 옮김 Human & Books 2006
1
5년 전에 헤어진 부부가 비 내리는 오후, 생 쉴피스 광장에서 다시 만나 뤽상부르 공원에서 키스를 나누고 뤽상부르 호텔에 들어가 집요하고 쓸쓸한 정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2
여자는 극심하게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먼저 전화를 했고 여자가 만나자고 했고 남자가 수락했습니다. 여자는 "울지 않겠다고, 그녀 안에서 굴종하려 하는 모든 것에, 세상을 포기하고 혼란에 몰아넣으려 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그것들을 제지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남자가 모르고 그녀에게 안겨다 준 놀라움과 분노 때문에 이 남자 앞에서 울부짖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112) 여자의 가슴속에는 "정신이상과 증오, 독으로 인한 상처" 같은 단어들이 들어 있고,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로 인한 침묵"이 그녀의 삶을 침해하고 있습니다.(141~142) 그녀의 아이들은 18일 전 '보호자 없는 아이들'이라고 적힌 표찰을 달고 비행기를 탔습니다.(145)
3
어떻게 사람은 그 큰 쾌락을 즐긴 후에 그렇게 난폭하게 분리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여자와 결혼하고는 그 여자를 증오할 수 있을까. 죽어 있는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을까.(133)
그녀가 그에게 목이 마르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녀가 말한 것 이상으로 그녀가 목말라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의 목이 바싹 말라 있는 것을, 그녀의 입의 진실을 느꼈다. 나 목이 말라요. 나 배가 고파요. 나 졸려요. 나 무서워요.(137)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 역시 어느 날 자신이 했던 약속을 깨뜨려버렸다. 그녀 역시 그 수많은 밤을 통해 그녀를 알아온 남자에게 말했었다. 그녀를 선택했던, 그녀를 필요로 했던, 그녀와 결혼했던 남자. 그리고 여자들 중에서 그녀를 엄마로 만들어준 남자. 그 남자에게 결정적인 말을, 불행의 말을, 사랑이 아닌 말을 했다. 그에게 말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157~158)
그녀는 여름날의 우연한 약속으로부터 자신의 옷가지와 구두를 챙겨 들었고,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에 그것들을 다시 입었다. 그녀는 무한한 조심성을 발휘하여 호수가 잊혀진 호텔 방 문을 열었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살 것이다.
이 순간을 살 것이다.
용서의 시간을.(160)
4
광고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에로티시즘 문학!"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육체의 슬픔, 헤어진 사람들의 슬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의 마음의 흐름을 담담하고 섬세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흐름에서 현장감을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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