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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황인숙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by 답설재 2018. 1. 5.

 황인숙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사 2016

 

 

 

 

 

 

그림자에 깃들어

 

 

이방인들을 보면

왠지 슬프다

한 아낙이 오뎅꼬치를 문 금발 어린애들을 앞세워 지나가고

키 작은 서양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회색 양복 서남아 청년이 지나간다

먼먼 땅에 와서 산다는 것

노인과 어린애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와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

 

 

 

황인숙의 시가 눈에 띈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적 접근 방법을 의도적으로 시도하거나 독특한 시를 만들려고 애쓰는 태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좋은 시는 스스로 시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시인이라는, 혹은 시를 쓰고 있다는 의식이 적으면 적을수록 사물을 보는 눈은 더 순수하고 명석하고 자유로와진다'는 김수영의 말을 황인숙의 시는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시 아닌 것들, 일상의 잡스러운 것들이 혼재된 곳에 촉수가 닿아 있는 황인숙의 시는 시라고 하기엔 너무나 일상적이고 일상이라고 하기엔 시라는 관습과 명칭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을 어떤 떨림과 울림을 자신도 모르게 감지하게 한다. 그것은 몸에 체득되어 굳이 시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제가 나와야 할 순간을 알고 있는 말일 것이다.

 

― 김기택 「시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시가 되는 말」(제63회 현대문학상 심사평; 시부문 본심, 『현대문학』 2017.12월호. 152~153) 중에서.

 

 

 

아주 추웠던 지난 연말 어느 날, 국민학교 동기생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전철역 입구에 서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먼저 가서 추위에 벌벌 떨고 서 있기도 어려워서 동네를 통털어 하나뿐인 그 서점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손님이 전혀 없는 그 서점 주인에게 미안하게 된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시인의 말

 

매사 내가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줄 모르며

살아왔나 보다. 언제부턴가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됐다.

인생 총량의 법칙?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은 거지!

 

2016년 가을

황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