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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by 답설재 2018. 1. 2.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7(1판39쇄)

 

 

 

 

 

 

 

 

 

 

1


30대 한국인 여성의 평균적 삶에 관한 이야기? 그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원이를 재워 놓고 오랜만에 부부가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한 캔을 거의 비웠을 즈음 김지영 씨가 갑자기 남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대현아, 요즘 지영이가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12)


어느 날 아내(지영)가 그렇게 친구 이야기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해오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 사람 끝내 정신이상자가 되었네' 하고 병원에 보낸다? 어쨌든 얼떨떨하고 간단하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겠지요? 그런 증상이 시댁에 갔을 때 또 일어났습니다.


"정 서바앙!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에는 엉덩이 한 번 붙였다 그냥 가고. 이번에는 좀 일찍 와." 그러고는 또 오른눈을 찡긋했다.(17)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결국 정대현 씨가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다.(18)

 


2


이런 얘기 처음 듣는 것도 아니고, 아니 사실은 수없이 듣고 읽고, 심지어 직접 겪는 걸 지켜보며 살아왔지만 조근조근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성의 삶에 대해, 대체로 '그렇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원이는 입가에 투명하고 커다란 침을 흘리며 잠들었고, 오랜만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이 좋았다. 바로 옆 벤치에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모여서 김지영 씨와 같은 카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하고 답답하고 힘든지 알면서도 왠지 부러워 한참 동안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옆 벤치의 남자 하나가 김지영 씨를 흘끔 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163~164)


김지영 씨가 보이면 "그런 녀석 더러 있지만 바로 그 녀석이 벌레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해주고 싶습니다.

 


3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아이를 낳아본 여성은 위대하다'며 모성애를 강조해온 것도,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쑥스럽고 미안한 일이 되었습니다. 깊이 반성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믿겠습니까?
더구나 김지영 씨의 어머니 오미숙 씨의 생애에 대해서는 바로 아내의 생애를 이야기한 듯해서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가 간간히 들추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내가 더러 억울한 말을 듣거나 홀대를 받는다 해도 끝까지 내색도 하지 말고 살아야 마땅합니다. 작품 해설의 어디쯤에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이라는 표현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기에 더해야 할 단어가 더 많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