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To The LightHouse》

by 답설재 2018. 1. 16.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등대로 To The LightHouse》

최호 옮김, 홍신문화사 1995

 

 

 

 

 

 

 

1. 제1부 창(窓)

 

아름답고 애정 어린 램지 부인이 등장합니다.

 

언젠가 뱅크스 씨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얘기 내용은 어떤 기차에 관한 사실에 불과하였지만 깊은 감명을 받고서 "부인과 같은 사람을 빚어낸 점토(사람은 신이 진흙으로 빚어서 구워 냈다는 얘기가 있으니까)가 이 세상엔 아주 드물지요."라고 말했었다. 희랍 여신과 같은 미모, 푸른 눈, 곧은 콧날, 그런 얼굴로 저쪽에서 전화를 하고 있을 부인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그런 여인과 전화로 얘기한다는 사실이 퍽이나 기이하게 느껴졌었다. 미(美)의 여신들이 아스포델 백합이 피어난 초원에 모여 손을 맞잡으면 그런 얼굴이 될 것도 같았다. "네, 유스턴 역에서 열 시 반 기차를 타지요."라고 그는 대답했었다.(46~47)

 

램지 씨의 별장에 철학 교수 램지, 여덟 명의 자녀, 친지 몇 명이 모여 지내는 모습이 주로 램지 부인의 의식을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등대 방문이 날씨 때문에 좌절되는 동안 램지 씨의 독선, 지배욕, 강요 행위가 가족을 슬프게 하지만 램지 부인의 숙고와 양보, 노력으로 복구되곤 합니다.

 

 

2. 제2부 시간이 흐른다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간 램지 부인과 두 자녀가 죽었습니다. 램지 부인이 사라진 무대가 서글픔을 느끼게 하는데도 소설의 매력은 그대로였습니다.

램지 부인이 창(窓) 너머로 간간히 등대를 내다보던 제1부에서도 그랬지만 제2부의 문장들은 시와 같아서 사라져 간 사람들에 대한 조사 같았습니다.

 

응접실이나 식당이나 층계는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폭풍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샛바람이, 녹슬은 경첩이나 습기에 젖은 목재 틈 사이로 스며들어(워낙 엉성한 집이었으니까) 집 안 구석구석으로 밀고 들어올 뿐이다. 그 샛바람이 응접실로 들어와서 풀이 떨어져 너풀거리는 벽지를 더듬으며, 누가 이기는지 내기라도 하자는 듯이 위협하는 것 같았다. 이어 그 샛바람은 벽을 슬그머니 더듬고 지나, 벽지에 그려져 있는 붉고 노란 장미꽃 무늬가 퇴색할 것인가를 묻고, 휴지통 속의 찢어진 편지, 꽃, 책들을 향해서, 저것들이 우군(友軍)일까? 적군일까? 얼마나 오래 견디어 낼 것인가 따위의 질문을(부드럽게, 왜냐하면 시간적인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던지며 생각에 잠긴 채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얼굴을 드러낸 외딴 별이나, 정처 없이 방황하는 배, 또 심지어는 등대 불빛의 인도를 받은 샛바람은, 그 희미한 발자취를 계단이나 매트 위에 떨어뜨리며 층계를 올라가 침실의 문 앞에서 냄새 맡듯 서성거린다. (…) 그러면 그들은 피로에 지친 듯이, 유령과도 같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손가락을 느슨하게 깍지 끼고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바라본 뒤 피곤한 듯 옷깃을 여미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냄새를 맡듯 몸을 비벼대며 계단에 있는 유리창으로 가보기도 하고 하녀들의 침실과 다락방에 있는 궤짝들을 살펴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사과를 퇴색시키고, 장미꽃 이파리를 더듬고, 화가(畵架)에 걸려 있는 그림을 훑어보고, 바닥에 깔려 있는 매트를 스치고 지나 마룻바닥 위에서 모랫가루를 흩날리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드디어 단념하고 모든 동작을 중단하고 한 곳에 모여 한숨짓는다. 그들은 합세하여 목적 없는 슬픔의 거센 바람을 내몰아 쉰다.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주방의 문짝 하나가 활짝 열렸다가 꽝 하고 닫힌다.(185~186)

 

 

3. 제3부 등대

 

황폐해진 별장에 그때의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램지 씨가 그 독선, 지배욕으로 두 명의 자녀를 데리고 등대로 가는 모습을 화가 릴리가 지켜보았습니다. 릴리는 옛날에 있었던 일들과 램지 부인을 회상합니다.

 

마치 기선의 연기를 고이 간직하는 고운 공기처럼, 부인의 생각과 상상력과 욕망을 보물 다루듯 소중히 간직하는 그런 감각이, 저 산울타리가 부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었고, 이 정원이 부인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파도가 부서지는 것은 부인에게 무엇을 의미했던가?(282)

 

사라져 간 사람이 추억으로 되살아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램지 부인의 영혼은 램지 씨와 두 자녀의 마음을 따라 등대로 갔을 것입니다.

 

 

4.

 

램지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었을까요?

'봐, 나는 죽어서도 지켜볼 거야. 정말이야. 다들 나를 그리워하겠지? 그때 가면 나를 좀 알게 되겠지? 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비로소 짐작하겠지?'

 

램지 부인으로 표상된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흔히 램지 부인 입장일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여성의 그런 입장을 옹호해주는 척하면서도 내면으로는 여성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 아닌가? 앞으로도 이건 변함없겠지?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5

 

중고본 서점에 갔을 때, 버지니아 울프의 것이어서 구입해 놓았던 책입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박인환, 〈목마와 숙녀〉, 1955)

 

 

인터넷에는 저 고본의 표지 사진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고본(古本)이 된 버전으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