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피슈테르 Jean Jacques Fiechter
『표절』
최경란 옮김, 책세상 1994
1
복수 혹은 완전범죄 얘기입니다.
인기작가 니콜라 파브리가 마침내 콩쿠르상까지 받게 되자 그를 추앙하고 그의 작품을 출판하며 살아온 그의 친구 에드워드 램은 속이 상했습니다. 니콜라 파브리가 온갖 명예를 다 누리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모조리 그의 팔에 매달려 까무러치는데 비해 자신은 늘 그의 그늘에서 노예처럼 지내며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심한 열등의식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증오와 절망감으로 허덕이던 에드워드는 니콜라가 콩쿠르상을 받게 된 소설 "ㅅ랑해야 한다"를 읽고 자신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소녀 야스미나조차 그에게 빼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로부터 잔인하고 냉혹한 복수극이 진행됩니다.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프랑스어로 된 그 소설을 번역(영역)하여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무명 작가가 이미 써놓은 소설 "사랑은 의무"를 니콜라가 표절한 것으로 꾸며 세상을 뒤집어놓았습니다. 그 진상은? 끝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한순간에 표절작가로 추락하여 절망에 빠진 니콜라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는 의지를 불태우지만 결국 목숨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우리로서는, 친구를 좌절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피도 눈물도 없는 에드워드도 함께 망하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니콜라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고 오히려 자신의 '악마'를 제거함으로써 다시 찾은 실락원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작품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였습니다.
상처를 받은 자나 상처를 주는 자, 복수를 하는 자와 복수를 당하는 자 쌍방은 결국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 둘은 모두 이해와 동정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236)
버지니아 울프(《파도》)의 다음과 같은 글도 표지 안쪽에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증오라는 감정은 사랑의 감정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9)
3 (蛇足)
세상 사람들은 인기작가 니콜라 파브리의 소설 "사랑해야 한다"는 무명작가의 소설 "사랑은 의무"를 표절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소설 《표절》을 읽은 사람들은 사실은 그 작가의 친구 에드워드 램이 무명작가의 이름으로 "사랑해야 한다"를 그대로 번역하여 "사랑은 의무"를 출판함으로써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친구를 살해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다음은 에드워드가 니콜라의 그 소설을 읽는 장면입니다.
세번째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나는 공포의 감정에 휩싸였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폭풍우와 같이 휘몰아치는 질투심이었다. 왜냐하면 그 소설 속의 여주인공인 야성적인 아랍 소녀 파리다는 다름 아닌 야스미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기서 그녀의 눈과 그녀의 몸, 그녀의 문신 그리고 특히 그녀의 웃음 소리와 목에서 흘러내려 언제나 어깨를 드러내던 누더기옷 등을 생생하게 보는 듯했다. 소설을 읽어내려감에 따라 나는 조금씩 야수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아름답게 묘사된 광적인 포옹의 장면들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는 가슴에 일격을 맞는 것 같았다. 거기에 묘사된 연애수업은 가장 혹독한 퇴폐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사범은 니콜라였다. 그가 그 이야기를 단순히 지어내지 않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었다. 야스미나가 모든 잡일을 다 맡아 하는 하녀로 고용되었던 집은 바로 니콜라의 집이었고 그녀를 임신시킨 것도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 또한 바로 그였다. 니콜라가 아니고서는 그럴 사람이 없었다 …….
그런데 나, 나 자신은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야스미나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조금씩 썩어들어가고 있었으니 …….나는 삶의 즐거움도, 남성으로서의 욕망도, 사랑의 감정도, 다시 말해 인생 전체를 잃어버렸다. 사울의 광적인 노여움을 그대로 겪는 듯했다. 어떤 간악한 술책에 희생되어 그의 몫이었던 은총,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은혜를 잃어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그가 느끼던 실성에 가까운 증오와 무력감을 그대로 느끼는 것 같았다.(126~127)
워낙 사실적이어서 집중취재를 한 신문기사 같았습니다.
이십여 년 전에 읽고 이번에 이 글을 쓰려고 또 읽는데도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읽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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