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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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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 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 천지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7 소년 아서 제라체가 지중해 나폴리 군도 프로치다 섬에서 어른이 되어가며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섬세하고 상징적입니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아버지 빌헬름 제라체를 마치 신(神)만큼 존경하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냉담합니다. 그가 어른이 되게 한 사람은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눈치아타입니다. 열여섯 살 눈치아타가 아버지를 차지한 것입니다. 열다섯 살인 아서는, 처음에는 그녀를 질투하고 증오하다가 어느 순간 그 증오와 질투가 이성적 사랑으로 변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괴로움에 싸이게 됩니다. 가슴속에 성장통의 그늘이 남아 있다면 이 소설이 더욱 읽을 만할 것입니다. 제1장 '왕과 별'에서는 프로치다 .. 2009. 8. 5.
샌디에이고에서 온 편지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보낸 사람이 짐작될 만한 부분은 잘라냈습니다. 샌디에이고, 그곳은 미국 서부의 최남단입니다. 캐나다 서부 남단인 밴쿠버에도 아는 사람이 가 있습니다. 서부 최남단이면 태평양이 보이는 곳이어서 바다 건너면 바로 거기지만 그야말로 멀고 먼 곳입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살면서도 다 해결된다면 혹은 걱정이 없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안병영 전 장관은 신문도 방송도 들어갈 수 없는 고성 골짜기로 들어갔구나 싶었습니다. 늙기 전에 달빛도 있고 별빛도 있는 들꽃도 있고 생각을 날아다주는 바람도 부는 그런 곳에 가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삭막하게 지내야 더 편리한, 날카롭게 생각해야 .. 2009. 7. 31.
최문자 「VERTIGO비행감각」 VERTIGO비행감각 최문자 (1943~ ) 계기판보다 단 한 번의 느낌을 믿었다가 바다에 빠져 죽은 조종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런 착시현상이 내게도 있었다. 바다를 하늘로 알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수평비행으로 알았다가 뒤집히는 비행기처럼 등대 불빛을 하늘의 별빛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승하는 것으로 알았다가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은 일이었다. 궤를 벗어나 한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었다. 까무룩하게 거꾸로 거꾸로 날아갈 때 바다와 별빛과 올라붙는 느낌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이었다. 『현대문학』, 2007. 3월호 미안합니다. 헤아릴 수 없.. 2009. 7. 28.
공개채용 면접 체험기 공개채용 면접 체험기 주제넘은 일이지만 공개채용 면접을 맡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건지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어떤 자세로 일하겠는가? * 그곳의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 참여의식은 어떻게 고.. 2009. 7. 26.
아름다운 대표들 어제 한 신문 1면 사진 설명입니다. “국회 최악의 난투극 :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미디어법안이 차례차례 통과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둘러싸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뛰어들며 항의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장 안팎에서 고함과 욕설을 주고받으며 최악의 .. 2009. 7. 24.
빛이 보이는 입학사정관제 (2009년 7월 23일)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개척능력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에 중점을 두고, ∘심신이 건강한 조화로운 인격을 형성하고 성숙한 자아의식을 가진다. ∘학문과 생활에 필요한 논리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과 태도를 익힌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능을 익혀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을 기른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 속에서 발전시키려는 태도를 가진다. ∘국가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과 태도를 가진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고등학교 교육목표다. 수능준비로 새벽에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고교생이나 그 부모에게 이 목표를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대입준비를 지도․안내하는 교사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한가하고 꿈같은 .. 2009. 7. 23.
학교는 망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도 망할 수 있습니다. 내 표현은 ‘망할 수 있다’는 정도지만, 나보다는 ‘한참’ 더 똑똑한 게 분명한 예일대학의 데이비드 갤런터David Gelernter는 아예 이런 생각입니다. “세계 대학의 95퍼센트는 50년 내에 사라질 것이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회가 오랫동안 ‘그래? 그러면 낡은 쓰레기라도 가르치는 게 낫겠군’ 하고 반응할 리는 없을 것이다. 사회는 ‘그래? 그러면 더 이상 영문학과는 필요 없겠군’이라고 반응할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도 사라질 것이다.” 어제 방학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다음 선생님들은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전통대로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내가 내려갔을 때는 의례적인 전달사항은 이미 다 전달된 뒤였으므로 이제 ‘교장선생님 말.. 2009. 7. 19.
이영광 「사랑의 미안」 사랑의 미안 이영광 (1967~ ) 울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이 들어가서 태우는 몸 네 사랑이 너를 탈출하지 못하는 첨단의 눈시울이 돌연 젖는다, 나는 벽처럼 어두워져 아, 불은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한다 사랑 앞에서 죄인을 면할 길이 있으랴만 얼굴을 감싸쥔 몸은 기실 순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성채 울어야 할 때 울고 타야 할 때 타는 떳떳한 파산 그 불 속으로 나는 걸어들어갈 수 없다 사랑이 아니므로, 나는 함께 벌 받을 자격이 없다 원인이기는 하되 해결을 모르는 불구로서 그 진흙 몸의 과열 껴안지 못했던 것 네 울음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는 소용돌이치는 불길에 손 적실 의향이 있지만 그것은 모독이리라, 모독이 아니라 해도, 이 어지러움으론 어느 울음도 진화鎭火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나.. 2009. 7. 17.
'일촌맺기'와 학교교육과정 3월초, 1학년이 입학하는 걸 직접 축하해준 아이들은 4학년입니다. 올해 입학한 그 애들이 3학년을 마치면 언니, 형들이 졸업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해나가면 우리 학교 모든 아이들이 다 의형제, 의자매, 의남매로 맺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당장 일러바쳐 보호를 받을 수도 있고, 뭐 .. 2009. 7. 16.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한국교육신문 2009.7.13)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그려보는 우리 교육의 미래 “교육과정은 미래 세대를 위한 미국의 희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 미국인들이 우리의 가치관을 실현하려는 시도(試圖)는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 미국 교육의 어떤 영역에서도 학교 교육과정처럼 어렵고 복합적이고 드라마틱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없다.” 매사추세츠 주 교육과정 서문에 등장한 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조직에서부터 교육과정정책 관련 행정에 대한 비중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교육과정은 이처럼 학교교육의 핵심․본질․기준이 되는 것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에 소홀한 나라를 찾을 수가 없다. 지난 1월에 설치된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교육과정특별위원회가 마련 중인 ‘미래형 교육과정’의 내용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2009. 7. 13.
교과서 대여제의 가능성 (2009년 7월 9일) 한때 우리나라도 교과서를 회수하여 상태가 좋은 책은 이듬해 학생들에게 다시 배부했었다. 자원절약이나 교육적 측면에서 바람직한 조치였다. 그러나 해마다 책의 내용이 수정되기도 하고, “내 아이가 왜 헌책으로 공부해야 하느냐?”며 당장 새 책을 구입해주는 학부모가 대부분이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교과서는 의무교육의 적용에 따라 공급 형태가 유상과 무상으로 결정된다. 또 의무교육이 적용되는 초․중학교라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한해만 쓰고 폐기하는 일회용 교과서를 ‘무상지급’하지만, 미국은 여러 해 사용하는 교과서를 ‘무상대여’하고 있다. 교과서에 사용자 기록표를 붙여 책임을 지도록 하고, 학년말에 교과서를 반납 받을 때 그 상태를 보고 ‘New, Good, Fair, Poor, Bad’로 나누어 훼손이 심하거나.. 2009. 7. 9.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6 (얘들 눈길 좀 보세요) <메모> 지난해 가을 도서바자회 때의 사진입니다. 가까이 가지 마시고, 멀리서 조용히 아이들 눈이나 좀 보세요. 우리 국민의 독서량이 형편없더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해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열에 셋이라고 한탄했습니다. 한 권도 읽지 않는 그런 사람은 왜 그렇게 살까요. 아무 이유.. 2009.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