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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공개채용 면접 체험기

by 답설재 2009. 7. 26.



 



공개채용 면접 체험기



  주제넘은 일이지만 공개채용 면접을 맡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건지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어떤 자세로 일하겠는가?

* 그곳의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 참여의식은 어떻게 고취할 수 있는가?

* 수업의 수준은 어떻게 향상시키겠는가?

* 본인이 수립한 계획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다양한 욕구는 어떻게 충족시키겠는가?

* 우리가 공유하는 지표를 구현하는 방안은 어떤 것인가?

* 어떤 비전을 제시할 예정인가?

* 예산집행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것들이 준비되어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면접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짐작할 만한 것들입니다. 다음은 면접 대상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답변을 짚은 몇 가지입니다.


우선 강의(講義)하듯 답변하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지금 나를 가르치려드는가?' 싶었습니다.

한 가지 Q에 대해 백화점식으로 늘어놓는 답변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면접관을 재미있게 해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핵심이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수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교사의 자부심은 교육과정(혹은 수업)'이라는 대답은 확실할 것입니다. 나아가 수업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인성' '창의성'을 내세우는 것도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그 '창의성 교육'에 대해 수학과 과학에 국한하는 구체적 설명을 들으며 '우리 교육이 이처럼 병들었구나' 싶어서 서글픈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창의성 교육은 교과와 재량․특별활동 외에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이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을 보고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과는 강의를 통하여 잘 간추려진 지식을 암기시키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런 관점에서 수업기술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소개했는데, "수업은 집중력이 관건이다. 그래서 나는 5분마다 질문을 한다"고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학생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업, 우리의 교육과정 운영이 아직 이런 지경에 있습니다. 어디, 40~50분 수업을 하는 동안 자신은 몇 마디 하지 않는, 대부분 학생들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그런 교사가 없을까요?


마지막으로 예산집행에 대해서입니다. 백발백중 "나는 깨끗한 사람이다. 투명하게 하겠다"는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사람이 바로 지도자라면 지도자로서의 조건이 별 것 아니겠지요. 깨끗하다고 자부할 사람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도둑놈'이 분명한데도 깨끗한 척하는 '놈'도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런 답을 하게 되었을까요? 전에는 크고 작은 예산집행권을 가진 이들이 엉망진창으로 했다는 뜻입니다. 작정하고 '한 건' 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거의 표가 나지 않게 야금야금 이른바 '뒷주머니'를 챙긴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투명'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떼어먹지만 않으면 잘 하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예산은 세금에 의해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은 그 예산이 효율적으로 요긴하게 쓰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떼어먹지는 않겠다"고 대답하면 누가 "그 참 잘하네." 하겠습니까.


쓸데없는 얘기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면접관을 시킨 측에는 제가 심사를 공정하게, 발전적으로 하라는 뜻도 있었겠지만 이로써 우리 교육의 발전에 기여하라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 마치려는 제가 오히려 무성의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문제는 짚어볼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두겠습니다. 지금 생각나지 않는 건, 그 대답의 유형이 마음에 새겨둘 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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