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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교장․장학관, 누가 더 높은가

by 답설재 200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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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교장과 장학관은 어느 쪽이 더 높은가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능력에 한계를 느낍니다. 글을 쓴 목적은 글의 첫머리에 밝혀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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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가까워지면서 더러 서운한 일이 생긴다. 그러므로 푸념 같은 기록이며, 서글픈 회상 거리가 될 기록이다. 실명(實名) 등 밝히기가 곤란한 부분은 감추었다. 객쩍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꼭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지난해 봄, 어떤 사업의 연구위원 위촉을 승낙해 달라는 요청이 왔었다.

"……. 싫습니다. 이래저래 좀 시들해졌고, 학교 위치가 한 가지 일로 여러 차례 회의에 참석하기가 어렵습니다. 15km 때로는 50분 걸려 출퇴근하니까요.1 돈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돈을 왕창 줄 테니까 교과서 집필진 대표를 맡아달라고 했지만 그런 요청도 다 거절했습니다. 다만, ‘오라 가라’ 하지는 말고 한번 찾아오시면 아이들을 위해 아는 대로 다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도착한 공문의 연구위원 명단에는 '기어이' 내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있나!' 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단 거드름을 피워본 것쯤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자문(諮問)에는 응하겠다는 대답을 ○×로 나타내면 결국 ○가 되므로 '승낙'으로 구분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교육기관 직원이 실제로는 교장보다 힘이 세므로 ‘하라면 할 것이지 대답이 복잡하다’고 치부한 것일까? 또 아니라면, 내가 좀 어두워져서 짐작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교육청 장학관 ○○○(△△과장)

□□□연구원 연구관 ○○○(△△담당)

□□□□교육청 장학관 ○○○(△△담당)

□□□□대학교 교 수 ○○○(△△교육과)

□□□□초등학교 교 장 ○○○(전 교육부 편수관)

□□□□초등학교 교 장 ○○○(……)

□□□□초등학교 교 장 ○○○(……)

□□□□교육청 장학사 ○○○(△△담당)

□□□□연구원 연구사 ○○○(△△담당)

 

 

이 명단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내 입장에서는 이른바 '개념이 없는 상대'가 되겠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난처한 관점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구나 "왜 그러지?" 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명단은 어떤 관점에 따라 직위․직급이 높은 순서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중에 보았더니 그 담당자에게 결국 '비정상'으로 분류된 것이 분명한 전화를 했다.

 

"이런 식이면 우리나라 교육행정은 멀었습니다, 행정가들을 현장교원 위에 놓는 한 아직은 틀렸기 때문입니다, 당신네들은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감독하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명단입니다, 교수는 또 어떻게 내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나는 교육부 장학관, 교육과정정책과장으로 수많은 교수들의 연구와 작업을 엮어 국가 교육과정을 만들고 초․중․고 교과서 전체를 책임지던 사람입니다, 그건 무시한다 해도 과연 교수가 교사보다 대어놓고 높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합니까, ……."

 

주제넘지만 마음먹고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그 전화 끝에서도 불가능 및 거절의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으므로 그 회의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위촉장을 무슨 선물쯤으로 여긴 것일까? 어느 날 담당자가 찾아와 인사가 끝나자마자 "우선 이걸 받아두십시오." 했다. "나는 이런 걸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거니와 이미 분명히 거절했었다"며 그 봉투는 즉석에서 돌려주었고, 자문에는 성실히 응해주었다. 역시 주제넘지만, 그깟 자문 정도는 꿈에도 그런 일만 생각하던 내게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명단이 그런 식이라면 아무래도 내게는 우세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부디 앞으로는 내 이름을 넣지 말라고 다시 부탁했다.

 

그리고는 잊으려 하고 참으며 해를 넘겼는데, 담당자가 바뀌었다며 올봄에 또 연락이 왔다. 지난해 담당자로부터 아주 조금만 전해 들었거나 내 이야기를 '불평' 정도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비정상'으로 분류되었을까. 명단이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교육청 장학관 ○○○(△△과장)

□□□연구원 연구관 ○○○(△△담당)

□□□□교육청 장학관 ○○○(△△담당)

□□□□초 교 장 ○○○(전 교육부 편수관)

□□□□대학교 교 수 ○○○(△△교육과)

□□초등학교 교 장 ○○○(생략)

□□초등학교 교 장 ○○○(생략)

□□□□교육청 장학사 ○○○(△△담당)

□□초등학교 교 감 ○○○(생략)

□□□□연구원 연구사 ○○○(△△담당)

 

 

교수와 나의 위치가 바뀌어 이번에는 내가 교수 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특이한 교장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그 교수에게 양해를 구한 것일까? 그런 조치가 더욱 못마땅했다. 과장 보직을 받은 실세 장학관이 제일 높고, 그러나 곧 교육장으로 나갈지도 모르는 연구관보다는 격이 낮은 장학관도 있고, 아주 특이하게 별 걸 다 문제 삼는 교장이니까 어처구니없지만 ○○○ 교장만 교수 위에 놓고, 교수 다음에는 특이하지 않은 '일반교장'의 차례이고, 그 일반교장 밑에는 장학사, 장학사 밑에는 교감, 교감 밑에는 연구사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 이름 다음의 '전 교육부 편수관'이라는 소개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편수관'이란 공식적인 직함도 아니거니와 왜 '전 교육부 장학관' 혹은 '전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장'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표시하면 현재의 장학관들에 대한 표시와 충돌하는 단어가 되어 어색하다고 본 것일까? 전문성이나 능력은 '50보, 100보'라는 말을 노래처럼 해대고 다니면서 -그 전문성이나 능력을 따지지 않았다면, 장학관, 연구관이 하면 될 일이지 왜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명단에 넣어야 할까- 서열만큼은 철저히 따져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이 배열!

 

더 어색해진 명단이 되었지만, 그러나 이 명단을 만든다고 얼마나 고심했을까. 단순히 그 담당자의 착오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권력이 웅크리고 바라보는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꺼운가 생각하며 허탈한 가슴을 달랬다. 이런 걸 두고 시쳇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는 것일까. 내가 나서서 차근차근 그 담당자의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그처럼 ‘높은 사람들’의 결재를 받으며 살아야 할 그가 앞으로 쉽사리 내 생각을 따를지도 의문일 뿐만 아니라, 그 한 명의 생각을 바꾸어서는 별 소용도 없을 것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라면 멀었다. 철저한 관료주의에 가슴까지 젖어 현장을 우습게보면서도 겉으로는 현장 위주의 행정을 하고 있다며 현장의 우리보다 더 기세 좋게 나서는 행정가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계이다. '학교자율화'라는 명분은 거창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는, 그들의 지시를 받지 않고는, 하다못해 현수막의 내용, 그 현수막의 위치 하나도 정할 줄 모르는 무지렁이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 간에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학교자율화', '학교선진화', '21세기 인재양성', '창의성교육', '명품교육'……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고 있다.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요즘은 공문 제목들도 '협조요청' '안내' '알림' 식으로 붙고 있다. 그러나 제목만 그렇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변했다! 다만 학교가 변할 줄을 모른다!"는 그들의 주장도 수용해줄 수 없다.

 

다행히 내년 2월까지만 견디면 정년이다. 40여 년, '변한 것이 있나?' 싶은 교육계를 두고 떠나야 하는 무능이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고, 곧 이처럼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후련하기도 하다. 이 꼴 저 꼴 안 보면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기억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학생들을 '지원(支援)'하기 위해 교사가 있고,2 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교장이 있고, 교사와 교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청, 교육연구기관이 있다. 그러면 주인공은 학생이고, 교사이고, 교장이다. 어떤 경우에도 교육행정기관 직원은 조연(助演)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학생과 교사, 학교는 교육행정기관을 위해, 교육행정기관이 빛나게 해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망각한 행정을 하는 이들, ‘우리가 권력을 막강하게 행사해야 교육이 잘 이루어진다’는 집요한 의식을 가진 이들 때문에, 실현될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교육청을 '교육지원센터'(?)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자꾸 나오는 것이다. "아니다, 국민, 시민들을 위해 교육행정기관이 있다.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보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가관(可觀)이다. 직접 학교로 찾아오는 국민, 시민들도 잘 챙겨주지 못하면서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얼른 '지원(支援)'이라는 단어의 뜻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전문직 공개채용시험이 실시되었다. 다른 문제를 낼 필요가 없었다. 위의 명단을 주고 학교에 보낼 문서에 실을 명단을 작성해보라고 하면 '자격'을 갖춘 교사는 몇 명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럴까? 누구 때문일까? 앞으로 50년 안에 거의 모든 학교가 사라질 것이라는데도, 유독 우리나라만 사교육이 자꾸 늘어나는데도, 창의력․사고력은 말뿐이고 학교는 여전히 지식주입에 매몰되어 있는데도, 어떻게 하면 행정력을 강화할까, 거기에 몰두하면서 관료의식을 주입시켜온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단을 만든다면 위의 저 명단보다 한참 더 위에 놓일 '아주 높은 사람들'이 그들인가? 사실은 어쭙잖은 직위․직급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 더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직도 이런 식인데, 시․도별 참석자 명단을 교장, 교감, 교사, 장학관, 장학사 순으로 새로 보내라고 한, 10여 년 전, 교육부에 근무할 때의 내 요청을 그때의 시․도 교육청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게 받아들였을까?

 

올해 초봄까지 일어난 일이다. 기대를 가지고 살아온 것이 40여 년이다. 교육계는 이 모양 이꼴이다.

나는 곧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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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진건읍에서 오남읍 쪽으로 도로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0년에 완성될 공사를, 도지사가 ‘너무 막히는 곳이니까 연말까지 완료하라’고 했다는데, 그래봤자 나에게는 곧 이 학교에 올 일이 없어진다. 요전에는 몇 번 장현읍 쪽으로 다녀봤는데 그쪽은 차라리 이쪽보다 더 막혀서 다시는 그쪽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


2.오래된 자료를 꺼내볼 필요도 없다. 조선일보가 지난 5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한 ‘2009 노벨포럼’에 참석한 조지 스무트 교수(UC 버클리 물리학과, 2006 노벨상 수상)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한국에 필요한 1등급 교육은 단지 사실 주입식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는 것이다. 수백만 가지 사실을 학습했다고 제대로 교육됐다고 말 못한다.” 존 듀이는 교사가 지식을 하나하나 주입하는 교육을 ‘퍼 먹여서 가르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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