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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샌디에이고에서 온 편지

by 답설재 2009. 7. 31.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보낸 사람이 짐작될 만한 부분은 잘라냈습니다. 샌디에이고, 그곳은 미국 서부의 최남단입니다. 캐나다 서부 남단인 밴쿠버에도 아는 사람이 가 있습니다. 서부 최남단이면 태평양이 보이는 곳이어서 바다 건너면 바로 거기지만 그야말로 멀고 먼 곳입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살면서도 다 해결된다면 혹은 걱정이 없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안병영 전 장관은 신문도 방송도 들어갈 수 없는 고성 골짜기로 들어갔구나 싶었습니다. 늙기 전에 달빛도 있고 별빛도 있는 들꽃도 있고 생각을 날아다주는 바람도 부는 그런 곳에 가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삭막하게 지내야 더 편리한, 날카롭게 생각해야 핍박받지 않는, 지혜롭게 살아야 무시당하지 않는, 때로는 속이고 으스대고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그런 일들은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면 그들은 ‘얼씨구나!’ 하겠지요.

 

 

저는 멀리 와 있습니다

 

이 곳 샌디에이고는 햇볕은 뜨겁지만 바닷가 옆이라 그런지 바람이 제법 붑니다. 저녁에는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휴직을 했습니다. 남편을 졸라 이곳까지 오기는 왔는데, 겁이 납니다. 아이들은 학교가면 잘 적응하고 영어도 금방 는다고들 하던데…… 제가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튜터를 하나 구해서 강습이라도 받아야 할 듯싶습니다. 어제 인터넷, 전화 연결하러 온 사람과 얘기하는데(아니 거의 듣기만 하고 "yes" 혹은 "no" 아니면 "right here" 정도) 진땀이 났습니다. 휴대폰에 대고 왜 빨리 안 오느냐고 남편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그 사람이 갈 때까지 나가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그렇게 파란눈과 대화를 해야 할 때가 되면 주눅이 듭니다.

매일 파란눈의 사람만 보다가 교포마켓이라는 곳에 간적이 있습니다. “hi, hello” 대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점원 아가씨 때문에 울 뻔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너무나 그리웠어서. 밤이면 두고 온 사람들과 함께 있는 꿈을 꿉니다. 배경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입니다.

 

2008. 8. 2.

 

 

저는 지금 가장 평화롭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국을 끊이고 반찬을 만들고, 식탁에 둘러앉아 먹기를 기다리고 도시락 하나씩 들려서 학교로 회사로 다 보내고 나면 음악을 들으며 하나씩 치우기 시작합니다. 설거지를 끝내놓고 빨래를 해서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저희 집 일층은 타일입니다) 아니면 다림질을 하고, 그러고 나면 모자를 쓰고 MP3를 들으면 집을 나섭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씻고 영어공부도 조금하고(아주 조금 ㅎㅎ) 주로 드라마에 푹 빠져 삽니다. 아니면 동네 아줌마들과 모여서 차도 마시고 쇼핑도 다니고. 오늘도 동네 언니들하고 쇼핑하고 밥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일을 안 하고 지내니까 단조롭고 답답했었는데 이젠 완전 적응했나봅니다. 너무 좋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이 바늘구멍만 했었는데 지금은 대바늘 구멍만해졌습니다. 피곤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더 잘해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평온합니다.

저는 아줌마가 체질인가 봅니다. 매일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좋고 집안일 하나씩 해나가는 것도 좋고 다 만족합니다. 아이들이 여기를 많이 좋아하고 주말에는 남편이 회사에 나가지 않아서 그게 제일 좋습니다.

멀리 여행은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해변이나 다운타운에 김밥 싸 가서 나른하게 앉아 있다가 올 수 있어서 좋고, 아이들과 저에게 아빠와 남편을 돌려주어서 저는 아직까지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음에 듭니다. 물론 한국이 많이 그립기는 하지만요. 아직 휴직기간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저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평화로운 이곳 생활이 절 매료시켰습니다.

교장선생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 훌훌 털어버리시고 평화로운 곳에서 여생을 보내십시오. 참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쉬셔도 됩니다.

날씨가 많이 푹해졌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2009. 4. 2.

 

P.S. 영어가 저절로 되느냐고 물으셨죠. 정말 막막하지만 막힐 땐 그냥 웃습니다. 그럼 만사 O.K.

 

 

2004년 9월,  내가 그 학교에 갔을 때 행정실장이었습니다.

남매를 데리고 출근했습니다.

나는 출근해서 그 아이들에게도 "안녕?" 인사하곤 했습니다.

그 여성이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2021.5.15) 이 편지들을 다시 읽고 샌디에이고가 어떤 곳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이미지부터(2021.5.15. 저녁 DAUM 이미지 ; 부분).

 

 

 

 

아, 이런......

아름다운 여성들이 춤을 추는 곳?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다음 백과에서.

뉴욕이 아닌가 싶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저 여성의 편지를 다시 읽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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