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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잡초(雜草)가 자라는 화분들을 보며

by 답설재 2009. 8. 21.

심미안(審美眼)이 부족한 걸까요? 저는 오묘하게 구부린 분재(盆栽)가 싫습니다. 누가 선물로 주면 말은 “참 좋다”고 해놓고는 그걸 그 원형대로 보살피지 않고 제 멋대로 자라게 두거나 긴장감과 해방감 같은 걸 느끼며 조여 맨 철사를 다 풀어줍니다. 그러면 “아, 시원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교장실에도 제멋대로 자라는 화분들뿐이어서 값나갈만한 화분은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분재처럼 자라야하는 아이들이 애처로워 보입니다.

학교 앞뜰의 대형 화분들에는 이것저것 갖가지 화초들을 심어놓았습니다. 그 중에는 수련도 있는데 여름 내내 그 아름다운 꽃을 보는 이가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곧 개학을 하니까 아이들이 많이 쳐다보게 될 것입니다.

담당 선생님은 이른 봄에 그 화분에 일일이 화초들을 심었는데, 그 중에는 망한 것도 있어서 여름방학을 앞두고 몇 가지를 다시 심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가보십시오. 약 한 달 만에 몇 가지가 또 망했고, 그 망한 화분을 잡초가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걸 거의 날마다 쳐다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담당 선생님이 와서 확인해보고 미안해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 화분의 팻말을 아예 ‘잡초’라고 써서 꽂으면 어떨까요?”

제 말은 그 선생님 말고도 몇 명이 더 들었습니다. “정말”이라고 강조를 해도 모두들 농담인 줄 알고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오늘도 혼자 그 화분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건 개비름이고 저건 강아지풀이지만 다른 것들은 뭐지?’ 미안해하는 그 선생님께는 제가 오히려 미안하고, 까짓 거 자꾸 망해버리는 장미나 꽃잔디보다는 그냥 잡초를 키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지난봄, 화초를 심는 날, 몇몇이 작업하는 모습이 하도 좋아서 “화초가 어느 건지 사람이 어느 건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 선생님은 “화초들이 시원찮다는 뜻이냐?”고 했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오묘한 것보다 그냥 수수한 게 좋습니다. 사람을 귀찮게 하지도 않습니다(귀찮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건 교장실 화분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은 오묘한 걸 더 좋아한다면 제 생각은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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