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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영광 「사랑의 미안」

by 답설재 2009. 7. 17.

 

 

 

사랑의 미안

 

 

이영광 (1967~ )

 

 

울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이 들어가서 태우는 몸

네 사랑이 너를 탈출하지 못하는 첨단의 눈시울이

돌연 젖는다, 나는 벽처럼 어두워져

아, 불은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한다

사랑 앞에서 죄인을 면할 길이 있으랴만

얼굴을 감싸쥔 몸은 기실 순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성채

울어야 할 때 울고 타야 할 때 타는 떳떳한 파산

그 불 속으로 나는 걸어들어갈 수 없다

사랑이 아니므로, 나는 함께 벌 받을 자격이 없다

원인이기는 하되 해결을 모르는 불구로서

그 진흙 몸의 과열 껴안지 못했던 것

네 울음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는 소용돌이치는 불길에 손 적실 의향이 있지만

그것은 모독이리라, 모독이 아니라 해도, 이 어지러움으론

어느 울음도 진화鎭火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랑보다 더 깊고 무서운 짐승이 올라오기 전에

피신할 것이다 아니, 피신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을 것이다

네가 단풍처럼 기차에 실려 떠나는 동안 연착하듯

짧아진 가을이 올해는 조금 더디게 지나가는 것일 뿐이리라

첫눈이 최선을 다해 당겨서 오는 강원도 하늘 아래

새로 난 빙판길을 골똘히 깡충거리며

점점 짙어가는 눈발 속에 불길은 서서히 냉장되는 것이리라

만병의 근원이고 만병의 약인 시간의 찬 손만이 오래

만져주고 갔음을 네가 기억해낼 때까지,

한 불구자를 시간 속에서 다 눌러 죽일 때까지

나는 한사코 선량해질 것이다

너는 한사코 평온해져야 한다

 

 

 

 

운다고 되겠습니까. 좀 우는 게, 울 수 있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요. 죽자, 죽어버리자고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도 않아서 번민과 우울, 번민과 우울…… 계획하지 않은 시시한 침묵……. 그러나 그걸로 되겠습니까. 다시 처음부터 일기장 들여다보듯 자꾸 꺼내보고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생길 리도 없지요. 그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수없는 생각만 자꾸 앞서갑니다.

 

그러게 뭐 하려고 가까이 간, 가까이 가는 것입니까. 온몸 온마음으로 산다는 게 어디 그리 쉽습니까. 그럼에도 눈물쯤으로, 미안하다는 것쯤으로, 혹은 또 무엇으로 피해보려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이제는 착하게 살겠다는 결심도 그렇지요. 그럴 수 있는 입장은 왕자님, 공주님에게나 해당하는 것 아닐까요.

아, 그러면 아무도 떳떳할 사람이 없겠군요.

 

더 생각해봐야 별 수 있습니까.

이 시 덮고 나면 또 시간이 흐르고, 그러면 다시 다른 일에 파묻혀 핑계도 좀 생기고, 세월이 가고, 그러겠지요.

 

지난 연말 혹은 올해 초 어디에서 본 시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어딘가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영광 시인이 이 블로그에 올 리는 없지만 대단히 미안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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