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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최문자 「VERTIGO비행감각」

by 답설재 2009. 7. 28.

VERTIGO비행감각

 

 

최문자 (1943~ )

 

 

계기판보다 단 한 번의 느낌을 믿었다가 바다에 빠져 죽은 조종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런 착시현상이 내게도 있었다. 바다를 하늘로 알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수평비행으로 알았다가 뒤집히는 비행기처럼 등대 불빛을 하늘의 별빛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승하는 것으로 알았다가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은 일이었다. 궤를 벗어나 한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었다. 까무룩하게 거꾸로 거꾸로 날아갈 때 바다와 별빛과 올라붙는 느낌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이었다.

 

 

『현대문학』, 2007. 3월호

 

 

 

 

 

 

미안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가늠할 수도 없는, 어쩌면 치밀함과 용기와 갖은 술수를 다 동원했다 할지라도 의도적이진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나도 함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미쳤었다는 것인데 그랬다 하더라도 미안합니다. 두고두고 반성했습니다.

그러기에 한 시인(詩人)은 '참회록'을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겠습니까?

 

"구름을 비껴 날으는 기러기 같은 당신을 밤나무나 느티나무 가지 위에 얼기설기 지어놓은 까마귀 둥지로 손짓해 불렀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괴롭습니다."

(오탁번 『겨울강』 세계사 1994「참회록」 중에서)

 

 

 

vertigo (‘회전’의 뜻에서) [病理] 현기(眩氣), 어지러움, (정신적) 혼란, (동물의) 선회 : 선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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