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열차
이병률 (1967~ )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이 가을, 열차를 타고 갈 데가 있나?
어느 역의 플랫폼으로 잠깐 나와 줄 사람이 있나?
그 역에서 좀 만나자고 편지를 띄울 사람이 있나?
지난여름, KTX도 다니지 않고 공항도 없는, 겨우 무궁화호가 쉬고 또 쉬며 네 시간을 가서 도착하는, 그리웠던 그곳에 다녀왔다. 철로 주변 풍경도 옛날 같지 않았고 연락할 아무도 없었다.
그리웠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 어디에서 가혹한 그리움으로 각각 이 가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혹 내가 탔던 그 열차를 타기도 했을 것이다.
닥터 지바고는 눈 오는 날 새벽에 모스크바에서 쫓기듯 우랄 행 열차를 탄다. 그 장도열차는 눈 속으로 몇날 며칠을 달린다. 우랄에서 그는 지금 그걸 모르고 가고 있지만 라라를 재회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행복한 지바고......
지바고 이야기는 눈 이야기이고 열차 이야기이다. 「라라의 테마」를 들으면 눈 내리는 그곳, 열차가 달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고난의 세월까지 이제는 그리움이 되었으므로 사실은 모든 게 그리움으로 남는 것 같다.
그리워하다가 너무 열중했는지 가을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던 어느 날, 가을이 와 있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그런 식으로 또 겨울이 오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
그리움도 식어버린 지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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