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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

by 답설재 2009. 8. 5.

엘사 모란테 『아서의 섬』

천지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7

 

 

 

 

 

 

소년 아서 제라체가 지중해 나폴리 군도 프로치다 섬에서 어른이 되어가며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섬세하고 상징적입니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아버지 빌헬름 제라체를 마치 신(神)만큼 존경하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냉담합니다. 그가 어른이 되게 한 사람은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눈치아타입니다. 열여섯 살 눈치아타가 아버지를 차지한 것입니다. 열다섯 살인 아서는, 처음에는 그녀를 질투하고 증오하다가 어느 순간 그 증오와 질투가 이성적 사랑으로 변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괴로움에 싸이게 됩니다. 가슴속에 성장통의 그늘이 남아 있다면 이 소설이 더욱 읽을 만할 것입니다.

 

제1장 '왕과 별'에서는 프로치다 섬과 아버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소개합니다. 멋진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이 책이 자서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넋 놓고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이름 '아서Arthur(북쪽하늘 목동자리 별 중 가장 반짝이는 별의 이름으로, 전설 속의 영국 어느 왕의 이름에서 유래)', 프로치다 섬의 정경, 그의 집에 관한 글은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제2장 '어느 겨울날의 오후'부터 제7장 '작별인사'까지는 새 어머니 눈치아타와의 이야기로, 485쪽을 단숨에 읽을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 같지만 심리적 과정의 전개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 편의 멜로드라마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습니다.

 

1957년에 이탈리아에서 출판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50년이 지난 2007년에 소개되었습니다. 번역이 잘 되어 읽기가 좋고 오탈자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 연보를 보면 엘사 모란테 Elsa Morante(1912~1985)는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는 로마 소년원 '아리스티 데 가벨리'의 설립자였으나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Alberto Moravia와 결혼하여 그로 인한 어려움도 겪다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소설 『아서의 섬 L′isola di Arturo』으로 스트레가 Strega상을 받았습니다. 1983년 4월, 다리의 통증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가스 벨브를 열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985년 11월, 그가 태어난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로치다 섬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옮겨 놓겠습니다.1 이런 표현 때문에 엘사 모란테를 전후 신사실주의 이탈리아 문학을 주도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문학은 대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 아래 나폴리 해(海) 위에 군도를 이루고 있는 섬들은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땅의 대부분은 원래 화산지대였는데, 특히 옛 분화구 근처에는 자연적으로 피어난 수많은 야생 들꽃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그중엔 뭍에서는 비슷한 것을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봄이 되면 언덕은 금작화로 뒤덮인다. 누구든지 6월에 바다를 항해하다가 우리 항구에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한다면 곧 향기로운 야생화의 향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섬은 들판으로 이르는 언덕을 따라 지어진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는 좁고 한적한 길들이 여러 개 나 있을 뿐만 아니라, 과수원과 포도밭이 마치 황제의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맑고 섬세한 모래가 가득한 해변과, 자갈과 조개로 뒤덮인 커다란 암초들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제방도 여러 개 있다. 물 위로 탑처럼 쌓여 있는 바위틈에는 갈매기와 산비둘기가 집을 지어놓아서 이른 아침이면 때로는 명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구슬프기도 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바다가 깨끗하고 잔잔해진 평온한 날이면 새들은 마치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들처럼 제방에 나와 앉아 있다. 아, 나는 그것이 갈매기인지 돌고래인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이 쏨뱅이이거나 아니면 바다에서 제일 못생긴 물고기일지라도, 내가 그곳에 앉아서 그들과 바다에 대해 농담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항구 주변의 거리들은 모두 해가 들지 않는 골목길이다. 길 양 옆에 늘어선 집들은 모두 몇 세기 전에 지어져 오래되고 촌스러운데다, 조개 빛이나 분홍색, 회색 등으로 깨끗하게 칠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엄숙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 고작해야 통풍구만 한 아주 작은 창문가에는 작은 새장에 갇힌 산비둘기가 놓여 있기도 하다. 가게들은 마치 산적소굴처럼 깊숙하고 음침하다. 항구의 카페 안에는 석탄난로가 있는데 주인여자가 그 난로 위에 올려놓은 파란색 주전자 안에서는 터키식 커피가 끓고 있다. 그 여주인은 몇 년 전에 과부가 되어서 언제나 검은 상복에 검은 머플러를 두르고 검정색 귀걸이를 하고 있다. 죽은 남편의 사진이 먼지 낀 종이 리본에 둘러싸인 채 계산대의 맞은편 벽에 걸려 있다.

 

물고기를 낚는 예수님상 정면에 있는 가게의 주인은 부엉이를 키운다. 부엉이는 가느다란 쇠사슬로 담 위에 삐죽 솟은 나무판자에 묶여 있다. 검정색과 회색이 섞인 부엉이의 털은 매우 부드럽고, 머리 위에 난 털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눈썹은 푸르고, 금빛과 붉은빛이 도는 커다란 눈에는 검정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녀석은 부리로 자신을 계속 쪼아대는 바람에 날개에 언제나 피가 묻어 있다. 누군가 손을 뻗어 가슴을 간질이면 커다란 머리를 숙이며 아주 놀란 인상을 한다. 저녁이 올 무렵이면 부엉이는 쇠사슬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여러 번 날개를 퍼덕이며 날기를 시도하다가 떨어지곤 한다.

 

이 섬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의 성당 안에는 밀랍으로 만들어진 성자들의 상이 여러 개 있다. 그것들은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는데, 키가 세 뼘도 채 되지 않는 것들이다. 성자들의 조각상은 누렇게 변한, 진짜 레이스로 만든 속옷과 색이 바랜 비단 망토를 입고 있으며, 머리는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 손목에는 진짜 진주로 만든 작은 묵주가 매달려 있다. 죽은 사람의 것처럼 새하얗고 작은 손가락 끝에는 손톱이 빨간색으로 실처럼 가느다랗게 표시되어 있다.

 

우리 섬의 항구에는 군도의 다른 항구에 드나드는 많은 배들처럼 스포츠나 관광용의 멋진 배가 정박하는 일은 거의 없다. 섬 주민들의 고기잡이배가 아니라면 큰 화물선이나 거룻배 따위가 드나들 뿐이다. 항구의 광장은 온종일 거의 텅 비어 있다. 물고기를 낚는 예수님상 왼쪽에는 단 한 대의 마차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증기선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증기선은 겨우 서너 명의 손님을 태우고 와서는 섬에서 더 많은 사람을 태워 가기 위해 몇 분 동안 머문다. 관광 철이 되어도 우리 섬의 외로운 해변에서는 나폴리나 여러 도시들, 또는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주변의 다른 해변들처럼 해수욕을 하는 인파의 함성 같은 것은 절대로 들을 수 없다. 어쩌다 외부인이 이곳 프로치다 섬에 내리게 되더라도 거리 어디에서도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나 파티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데다, 온 나라에 알려진 나폴리 특유의 만돌린이나 기타 소리, 노랫소리조차도 들을 수 없는 것에 놀라워한다. 프로치다 사람들은 성미가 까다롭고 말이 없다. 집집마다 문을 모두 걸어닫고 지내며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도 별로 없다. 가족들은 사각형의 벽 안에 갇혀 다른 가족들과 섞이지 않고 지낸다. 우리는 사람을 사귀는 것도 싫어한다. 외부인이 들어오거나 해도 어느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계를 한다. 만일 외부인이 질문을 건네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마지못해 대답을 해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섬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키가 작고 피부가 갈색이며 동양인들의 눈처럼 길게 찢어진 검은 눈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친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닮았다. 그리고 오랜 풍습에 따라 여자들은 수도사처럼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다. 겨울에는 여자들이 아직도 길게 땋은 멀리에 숄을 걸치고 다니며 긴 치마를 입고 지낸다. 또 겨울이 되면 두툼한 면양말 위에 나막신을 신는 반면 여름에는 맨발로 생활하는 여자들도 있다. 여자들이 사람들을 피해서 맨발로 소리 없이 재빠르게 걸어다니는 모습은 담비나 도둑고양이를 연상케 한다.

 

여자들은 절대로 해안으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 여자들에게는 바다에 몸을 적시는 것이 흉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젖은 몸을 보는 것조차도 흉이 되기 때문이다.

 

종종 책을 통해 언덕배기나 계곡에 무리지어 모여 있거나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봉건도시의 집들을 볼 수 있다. 그 집들은 모두 꼭대기에서 통치하는 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치 목동 주변에 모여 있는 양떼들 같다. 이처럼 프로치다에도 항구 아래쪽에 촘촘히 모여 있는 집들에서부터 언덕 위에 드문드문 솟아 있거나 저 멀리 들판에 떨어져 있는 집 등, 성을 중심으로 발밑에 흩어져 있는 것이 이와 아주 흡사하다. 성은 제일 높은 언덕에 솟아 있으며(다른 작은 언덕들 사이에 있는 성은 마치 하나의 산처럼 보인다), 몇 세기를 거쳐 내려오면서 주변에 다른 건물들이 세워져서 거대한 도시에 버금가는 마을을 형성하였다. 특히 한밤중에 멀리서 배를 타고 지나면서 프로치다를 바라보면 이 음침한 건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섬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요새처럼 느껴진다.

 

성은 약 200년째 교도소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제일 큰 교도소 중 하나일 것이다.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섬의 이름을 감옥의 이름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우리 집은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서쪽 편에서 성을 마주하고 있는데, 거리상으로는 성과 일직선으로 몇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수많은 만에서는 밤이면 어부들의 배가 등불을 밝히며 멀어져가곤 한다. 교도소는 건물에 난 작은 창문의 창살이나 담 주위에 있는 간수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잘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다. 특히나 흐리거나 안개가 낀 겨울날 교도소 앞을 걸어서 지날 때면 그 건물은 마치 고대도시에서나 많이 볼 법한 버려진 저택처럼 느껴진다. 단지 제비나 올빼미, 뱀 따위만이 살고 있는 기괴한 폐허처럼 말이다.(1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