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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E. 데 아미치스 『사랑의 학교』

by 답설재 2009. 6. 4.

E. 데 아미치스 지음 사랑의 학교》

이현경 옮김/김환영 그림, 창비아동문고 1998.

 

 

 

 

 

 

평생 마음속에 간직해둔 책을 소개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화일보기자가 전화를 해서 Readers are Leaders라는 특별기획 코너에 교육자 한 명을 소개하기로 했고, 그 첫 번째 인터뷰가 하필이면  블로그 『파란편지』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고 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기자가 오면 인터뷰를 어디서 어떻게 하고, 그 기자와 식사를 할 식당 같은 건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습니다.

 

평생에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고 걸신들린 듯 읽어댈 자신도 없지만, 그동안 읽은 책 중에서 딱 한 권만 고르라면, "그 책을 고르고 어떠한 후회도 없겠는가?" 묻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이 책을 선택할 것입니다.

 

만약, 교육부장관에게 권할 만한 책을 고르라고 해도, 그 책을 각 시·도 교육감, 교육위원회 위원들,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장들, 수많은 교사들, 그보다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권할 예정이라고 해도, 나는 이 책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지금 교육대학교나 사범대학을 다니는 예비교사들에게도 역시 이 책이 좋다고 설명할 것입니다. 특히 나처럼 교장이 되어 있는 사람은 물론 아이들을 직접 대하고 있는 교사들은, 오늘 이 시간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는 일보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시키는 어떤 시책에 관한 일이 더 중요하게 생각될 때 지체 없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겠습니다.

 

나는 이 책을 40년 전에 처음 읽고 '우리도 이런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깊어서 '내가 우리나라에 적합한 한국판『사랑의 학교』를 한번 써볼까?' 싶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만날 아이들, 선생님들,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런 이야기들을 엮는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무모했을 것입니다. 내가 한국판 『사랑의 학교』를 써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 깊었기 때문에 결국 그동안 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장차 내가 쓰게 될 『사랑의 학교』를 읽을 사람들이 굳이 이 책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교육부 장학관으로 일하다가 정년이 겨우 5년 반만 남아서 교장으로 나올 때는 '이제 한국판 『사랑의 학교』를 집필할 시간도 없으니까 아예 『사랑의 학교』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했는데, 어영부영하다가 그것도 다 틀린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내가 딴 생각 전혀 하지 않고 교장이 해야 할 일에 골몰한 시간이 있었다면 다 이 책 덕분입니다. 가령, 아무리 피곤하고, 바쁘고 해도 선생님들께서 출제한 시험지를 아이들보다 먼저 일일이 풀어보는 것도 다 그런 일들의 한가지입니다.

 

이 책을 좀 소개해야 하겠지만, 잘난 체하기보다는 갖고 있는 번역본의 옮긴이가 쓴 글 중에서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E. 데 아미치스 지음/이현경 옮김/김환영 그림, 『사랑의 학교』1~3, 창비아동문고 154~156, 1998, 204~207쪽)

 

원제목인 꾸오레(Cuore)'는 '마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사랑이나 우정, 감동, 열정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이 글을 쓴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 1846~1908)는 오랫동안 도시국가로 나뉘어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던 이탈리아가 통일운동을 벌이던 시기에 태어나 직접 군인으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군대생활』(1868), 『추억들』(1872) 같은 작품을 발표해 단숨에 유명해졌고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기행문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작품은 나오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어 이제 이탈리아에서는 성서처럼 꼭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엔리꼬라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다. 그의 학교생활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가정의 일, 사회와 국가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작가가 일기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사랑의 중요성을 선생님과 아버지의입을 통해, 엔리꼬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들려준다. 초기 사회주의에 매료되어 있던 작가는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평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특히 작가는 누군가의 기쁨 뒤에는 다른 이의 슬픔과 어두움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난과 질병과 죽음의 모습들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인데, 통일운동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라와 사회에 대해 가지는 염려와 희망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깔라브리아에서 전학 온 소년을 또리노 소년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나 상장을 전해주는 소년을 이탈리아 전 지역을 상징하는 열두 명으로 뽑는 것 등, 통일된 이탈리아에서 부딪치게 될 지역 차별이나 지역 간의 불화의 씨를 없애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뚜렷하다. 시대를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고 지나치게 애국심을 강조하는 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에게 시달려온 이탈리아의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작가의 강경한 어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등장인물들도 의도적으로 거만한 귀족, 벽돌공, 대장장이, 철도원, 상인의 아들 등 다양한 사회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로 골랐다. 중산층의 아들인 엔리꼬가 이들의 자연스러운 화합에 한 몫 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을 존경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항상 격려해준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사회와 개인,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고 건강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진리로 받아들여질 가치이다. 『사랑의 학교』가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책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일기 형식의 이 책은 매달 엔리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버지의 편지와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달의 이야기’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이달의 이야기’로 그 생생한 사실성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많은 감동을 전해준다.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만화영화로 더 유명한『압뺀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도 '이달의 이야기'의 한 편이다.

 

 

10월

개학날

 

17일, 월요일

 

오늘은 개학날입니다. 시골에서 보낸 석 달간의 방학은 정말 꿈처럼 지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바렛띠 학교에 나를 데려가 사학년에 등록시켜 주셨습니다. 난 시골 생각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았습니다. 길마다 아이들이 북적댔습니다. 책가방과 보조가장, 공책 등을 사려는 부모님들과 두 개의 문방구는 북새통을 이루었고, 학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수위 아저씨와 경찰관 아저씨는 교문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교문 근처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쳤습니다. 삼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빨간 곱슬머리의 선생님은 언제나 명랑하셨습니다. "엔리꼬, 이제 영원이 이별하는 건가?" 그렇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슬퍼졌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겨우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진급증명서를 든 귀부인과 신사, 서민층 아주머니, 노동자, 공무원, 할머니, 하녀들이 휴게실과 계단을 가득 메운 채 극장에 들어갈 때처럼 떠들어댔습니다. 일곱 개의 교실로 통하는 일층의 큰 휴게실을 다시 보게 되자 기뻤습니다. 삼 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다닌 휴게실이었습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여선생님들이 왔다갔다하셨습니다. 이학년 때 담임이셨던 여선생님이 교실 문 옆에 계시다가 나를 알아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엔리꼬, 올해엔 이층으로 가겠구나. 이젠 네가 지나다니는 걸 못 보겠네!" 선생님은 슬픈 듯이 나를 쳐다보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자기 아이의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여 계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수염이 작년보다 더 하얗게 센 것 같았습니다. 나는 키가 좀 더 크고 덩치도 좋은 아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미 반이 나뉜 일층에는 일학년 꼬마들이 있었는데 교실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새끼 당나귀들처럼 발버둥쳤습니다. 그 아이들을 강제로 교실로 끌고 가야 했습니다. 앉아 있던 의자에서 달아나버리는 아이도 있었고 부모가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부모들이 다시 들어가서 그 애들을 달래거나 달아난 아이들을 붙들어 와야 했습니다. 여선생님들은 낙담하고 계셨습니다. 동생은 델까띠 여선생님 반이 되었고 나는 이층의 뻬르보니 선생님 반이 되었습니다. 열 시에 우리는 모두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모두 쉰다섯 명이었는데 삼학년 때 친구들은 겨우 열댓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는 항상 일등만 하던 데롯씨도 있었습니다. 여름을 보낸 숲속과 산을 생각하면 학교는 얼마나 작고 우울한 곳인지요! 우리에게 항상 미소를 보내던 친구같이 작고 착한 삼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다시 생각났고 그분을 더 이상 교실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슬펐습니다. 새 담임선생님은 키가 크고 긴 회색 머리에 콧수염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이마 위에는 곧은 주름살 하나가 박혀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굵었고, 마음속을 읽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를 차례차례 뚫어지게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웃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첫날이지. 아직도 아홉 달이 남았어. 그 많은 공부에, 그 많은 월말 고사에, 정말 지겨워!' 이런 생각 때문에 어서 수업이 끝나 교문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힘내렴, 엔리꼬! 엄마랑 함께 공부해보자." 나는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선량하고 명랑한 미소를 짓는 선생님이 이제 안 계시기 때문에 예전처럼 학교생활이 즐거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9~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