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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최병권·이정옥 엮음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by 답설재 2009. 4. 27.

최병권·이정옥 엮음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2003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에 중국에 대해 '쎄게' 나왔다가 중국이 "이것 봐라?" 하니까 눈치 빠르게 얼른 그 중국의 곁에 서려고 한 점도 재미있지만, 나폴레옹이 창설했다는 학술원의 권위가 어마어마하다는 점, 바칼로레아 논술고사도 생각납니다. 예술의 도시 '파리' 같은 걸 얘기하면 하품이 나오겠지만, 루이 16세의 애첩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떻습니까?

 

지난번에 미국의 Application Essay에 대해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라는 책을 소개한 것처럼 오늘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대한 책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소개합니다.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입니다.

 

구태여 "이 책을 보십시오." "이 책은 참 좋은 책입니다."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Application Essay처럼 Baccalaureat를 알아보고 싶은 것뿐입니다. 우리나라 논술고사 문제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문제보다 훨씬 더 정교한(?) 것 같은데도 "논술고사를 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부터 그 논술고사가 왜 발전하지 못하는지 답답한 마음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처럼 이 책도 앞부분에 Baccalaureat에 대한 약간의 소개가 있고, 전체적으로 문제에 따른 모범답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밑줄쳐 둔 부분입니다.

 

 

▷ 머리말「타인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가다듬자」(최병권; Weekly SOL 발행인)에서

 

고등학교 1학년 과정까지만 해도 프랑스 학교의 수학은 한국 학교의 수학보다 어렵지 않다. …(중략)… 이전까지의 수학 교육은 끊임없이 기초를 다지는 과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수학과 철학의 나라이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무엇이건 간에 수학과 철학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 프랑스의 모든 대학 지망생들이 똑같이 치러야 하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서도 수학과 철학에는 가산점을 주고 있다. 그만큼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중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어 수업에서도 시험으로 리포트를 요구할 때가 많은데, 예를 들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앞으로 한 달간 에밀 졸라의 작품을 3권 이상 읽고 그 작품 세계에 나타나 있는 시대 상황과 사회․경제․정치적인 역학 관계를 분석하라는 식이다.1 이 때 남의 것을 베껴 쓰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좋건 나쁘건 간에 자신의 견해를 써야 한다. 그래서 한 과목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 달간 학생들이 받는 고통은 사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을 준비할 때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만큼 창조성이 높아진다. 창조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은 고통의 과정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중략)…

고통스럽지만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 결과, 하나를 말하면 하나밖에 모르는, 창조성을 기르지 못한 인간은 결코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 기초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소홀히 하는 기능 위주의 교육은 능동자의 교육이 아니라 남의 뒤나 따라가기에 바쁜 피동자의 교육이다.

기능 위주의 교육으로는 창조성과 독창성, 리더십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 승자를 낳을 수 없다.

 

 

▷ ‘일러두기’에서

 

이 책에 게재한 바칼로레아의 질문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출제된 것이고,

- 답변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한 각종 모의고사에서 가장 수준이 높거나 출제자의 의도에 부합한 것을 골라 뽑은 것이다.

-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철학시험 문제가 발표되면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과 모의고사를 치른다.

 

▷ 프롤로그 「교양이란 부차적일 뿐인가?」(최영주; 불문학 박사, Paris 8 대학 시학부 Polart 연구원)에서

 

우선적으로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체계화된 독서 시스템이었다. 불어 수업의 경우 교과서가 아닌 문학책들을 돌아가며 읽고 요약, 비판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15~16)

 

이 수업과 관련해 추천된 책은 족히 100권이 넘었는데, 이를 마스터하지 못한 채 바칼로레아에 임할 경우 적절한 인용구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16)

 

글을 읽는 것과 분석 이해하는 것, 또 직접 쓴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는 차치하고라도, 문학책 읽는 것을 사치가 아닌 생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책을 좋아했던 나는 매우 큰 기쁨과 흥분을 느꼈던 듯하다.2(16)

 

프랑스에서는 문학과 철학의 구분이 그리 크지 않기에 문학 실력이 좋은 학생이 철학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다.(16)

 

이 과목에 있어 독서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인생관의 성립이다. 당시 기말, 중간고사에 출제되었던 여러 문제들, 가령 “죽음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종교는 약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환상인가?”,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의무가 있는가?” 등은 그 종교적․윤리적 함축이 지닌 과감성으로 나를 상당히 당황시켰고, “역사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가?”, “권리는 권력 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한가?”,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들은 나를 한때 회의론자로 몰고 가기도 했다.(16~17)

 

가령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주제에 관해 한국에서라면 전자로 당연히 기울었을 입장이 그곳에선 하나도 보장되지 않았다. 오직 나의 사고와 독서력, 수사력을 총동원해 친구들을 설득시키는 방법뿐이었다.(17)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있는 날은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또 하나의 국경일 ‘생각하는 날’이다. 2주 이상 계속되는 바칼로레아는 항상 철학으로 시작된다. 주어진 시간만도 3시간이니 첫날부터 학생들은 큰 고역을 치르는 셈이다. 이 날 그 해 제시될 문제에 온 언론이 관심을 기울인다. 제출된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에게 묻는 모습을 거리에서도 적잖이 목격할 수 있다. 즉,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이지만 그 날만은 인문, 사회과학에 적을 둔 프랑스인 모두가 그 진지함에 참여한다. 이 같은 국민적 관심은 당일 저녁에 열리는 흥미로운 토론회를 통해 반영된다. 아침에 출제되었던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계, 문화계, 언론계의 유명 인사들과 시민들이 대강당에 모여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유머스런 일종의 모의고사를 치르게 되는데, 나는 매해 이 방송을 애청하며 그들의 진지함과 재치에 놀라곤 했다.(18)

 

오랜 기간의 연습과 체계적인 사고, 독서의 경험 없이는 단 1년간의 공부로 철학사를 관통하는 심오한 질문에 답하기란 불가능하다.(18~19)

 

유럽인, 특히 프랑스인들은 지성이 특수 계급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육점 아저씨도 말단 간호사도 똑똑하다는 말, 교양 있다는 말을 듣기를 선호한다. 어찌 보면 프랑스인들의 각별한 철학, 문화에의 사랑 뒤엔 우리와는 다른 세계관과 인생관이 숨어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착한 사람’, ‘인간성 좋은 사람’이 칭찬의 표현으로 많이 쓰이지만, 프랑스인들은 상대방을 칭찬할 때나 이상형의 배우자를 표현할 때 ‘영리한’ ‘현명한’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19~20)

 

우리는 성인이 된 후 여유 있을 때 읽는 책이 교양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떤 책이 교양으로 읽힌다는 것, 그것은 부차적이란 뜻일까?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일차적이란 말인가? 돈을 벌고 빌딩을 세우고 권력을 잡고 전쟁을 하는 것? 이를 일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교양이 이것들의 온갖 폐해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22)

 

 

▷ 이 책에 소개된 질문들 ; (    ) 안은 출제 연도

 

인간(Human)

 

1.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1998)

2. 꿈은 필요한가?(1997)

3.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1995)

4.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1998)

5. 관용의 정신에는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6.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7. 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1997)

8. 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1999)

9. 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1996)

10.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1999)

11.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1996)

 

 

인문학(Humanities)

 

1.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2.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1999)

3.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1997)

4.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1997)

5. 역사학자가 기억력에만 의존해도 좋은가?

6.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1997)

7.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1998)

8. 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9. 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10.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예술(Arts)

 

1.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1997)

2.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2002)

3. 예술 작품의 복제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것인가?(1997)

4. 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1998)

5. 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과학(Sciences)

 

1. 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1994)

2.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1997)

3. 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1997)

4. 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5. 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1997)

6. 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 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1988)

7.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8. 현실이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9. 기술이 인간 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10. 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1994)

11. 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1997)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1.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2002)

2.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2001)

3.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1998)

4.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1997)

5.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1997)

6. 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과한가?(1993)

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8. 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9.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10. 유토피아는 한낱 꿈인가?(1997)

11.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12. 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1999)

13.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2000)

14. 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15. 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1997)

16. 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1996)

 

 

윤리(Ethics)

 

1.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2002)

2. 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2002)

3.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1998)

4. 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1998)

5.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1997)

6.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는가?(1988)

7. 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1996)

8.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1997)

9. 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10.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11.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