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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Ⅲ

by 답설재 2009. 8. 11.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문학성’ 혹은 문학의 ‘자기 지시기능’ -

 

 

 

 

 

 

월간『현대문학』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다음 문장에 밑줄을 그어놓았습니다. 글의 분위기가 생각날 수 있도록 앞뒤의 몇 문장을 덧붙여 옮겼습니다(『현대문학』2009년 8월호, 213, 220).

 

 

“벌써 세 시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게 흐르는 시간이라니까!”

무엇이 와서 부딪친 것인지, 유리창을 때리는 작은 소리가 한 번, 그 다음에는 이층 창문에서 모래를 뿌리는 듯 다량으로 가볍게 쏟아지는 소리, 그리고 이어 그 쏟아지는 소리가 넓게 퍼지면서 고르게 조절되며 어떤 리듬을 갖추는 듯하더니 음악처럼 낭낭한 소리를 내며 무수하게 불어나 온 세상에 골고루 퍼지며 흘렀다. 비였다.

“봐요, 프랑수아즈. 내가 뭐랬어? 참 잘도 오신다! 아니, 정원 쪽 문의 방울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가보고 와요. 이런 날씨에 밖에 나다니다니 대체 누굴까.”

프랑수아즈는 돌아왔다.

“아메데(할머니의 이름) 마님이세요. 한 바퀴 돌고 오시겠다는군요. 비가 억수로 오는데 말예요.”

 

밑줄 그은 부분의 끝에 미주(尾註)가 있었습니다. 이 번역에는 미주가 많아서 때로는 귀찮기까지 하지만 제대로 읽어보려면 일일이 찾아봐야합니다. ‘신기하고 멋진 표현이어서 밑줄까지 그어놓았지만, 뭐 이런 곳에까지 주가 붙어 있나?’면서도 찾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31) 마음이 바쁜 독자들이여, 창문에 흩뿌리기 시작하는 비가 우리의 의식 속에 순차적 음향들로 지각되는 과정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 이 대목에 잠시 깃들었다 가시라. 프루스트 특유의 긴 한 문장 다음에 화룡점정과도 같은 짧은 한 마디, “비였다”, 지난 백 년 동안 세상의 수많은 프루스트 독자들이 어김없이 주목했고 감탄했던 이런 텍스트야말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라는 메시지와 동시에 스스로를 가리키며 “이것은 문학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유식한 말로, “문학성littérarité, 혹은 문학의 자기 지시기능”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번역자가 이미 이렇게 덧붙였으므로 밑줄을 그은 이유를 덧붙이는 것이 참 구차하기도 하려니와 전혀 쓸데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냥 한마디 ‘아, 그렇구나.’

 

<덧붙임>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동경"(1955년, 알베르 까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