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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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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제1절 학교장 인사 어느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생각은 있어도 직장 때문에 학교에 나올 수 없을 때는 아이에게 미안하며, 그래서인지 하루에 한 번씩 꼭 학교 홈페이지를 열어본다고 했습니다. 우리 학교 같으면 굳이 그렇게 홈페이지를 점검해보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학교에 무슨 일만 있다 하면 틀림없이 별도의 안내장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거롭고 경비도 만만치 않아서 웬만한 일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알리자고 제안해보면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학부모들은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지 않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저도 이 '학교장 칼럼'이라는 걸 쓰고 있지만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3000여 학부모들 중에서 독자가 겨우 수십 명, 혹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경우라야 백 수십 명에 지나지 않으니 실망스럽.. 2008. 5. 9.
학교폭력, 누가 해결해야 하나(경기신문080506) 학교폭력, 누가 해결해야 하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자신의 교육관이라고 했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간’은 인성교육,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은 지식교육에 의해 길러진다면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은 그 교육관에 잘 함축돼 있다. 그러나 새 정부 교육정책의 초점은 누가 뭐래도 공교육에 의한 실력향상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론은 ‘교사의 경쟁력강화 시급하다’ ‘교사와 학생, 무한경쟁 시작됐다’고 날을 세운다. 그 ’경쟁‘이 인성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우리의 교육현실을 전혀 모르는 질문에 틀림없다. 지난 3월말, 대구교육감은 이러한 교육정책에 어깃장을 놓듯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성.. 2008. 5. 6.
나가노(長野)의 추억 후쿠오카의 이 영사가 그렇게 들어앉아 있지만 말고 놀러 좀 오라고 사정을 하는데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 메일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즈음 이곳 산과 들에는 먹거리가 ‘천지’입니다. 대나무밭에는 죽순이 즐비하고, 논둑 밭둑에는 마늘만한 달래가 한없이 깔려 있고, 머위도 아주 좋아 욕심내지 않고 먹을 만큼만 따옵니다. 지난주에는 더덕을 한 자루나 캐왔습니다. 참 좋은 계절입니다. 산나물을 먹을 줄 모르는 민족들과 살고 있으니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즐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7년 11월에 열흘간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도쿄에 있는 일한문화교류기금이 초청하고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선한 교사연수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연수단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명으로 구성되었고, 교육부에서 근무한다고 내가 단장.. 2008. 5. 1.
학교장의 경영관 우리는 한 달에 두어 번 교직원 정기회의를 개최합니다. 어제 회의에서는 ‘어린이날 기념 바른생활 어린이 표창건’도 의제가 되었습니다. 시상일, 대상, 방법 등을 이야기하고 한 반에 한 명씩 추천하자는 이야기로 끝날 무렵에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한 반에 한 명씩이냐?”고 해서 2명 이내(0~2명)로 결정되었습니다. 사실은 그것도 그리 합리적인 결정은 아니지만 ‘담임들은 가능하면 많이 주려고 한다’는 논리도 있고 그 문제로 시간을 끄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100명이면 어떻습니까? 이른바 ‘공적조서’에 상을 주어야 하는 당위성이 드러나 있다면 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학교장의 경영관’ 서두에서 이런 이야기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 2008. 4. 29.
‘밥 퍼주는’ 어머니들께 1993년부터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어느 단체에 매달 1만원씩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별것 아니네.’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어 군데 더 내게 되었습니다. 건방지게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천국은 몰라도 연옥 정도는 가겠지’ 그런 생각도 했고, ‘조금 더 생색을 내면 천국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단체에서 한 장애인의 후원자가 되어달라면서 인물사진을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회비만 내지 말고 시간을 내어 좀 만나기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사지(四肢)가 비비 꼬인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걸 어쩌나?’ 싶었습니다. ‘안 되겠다. 도저히 못하겠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회비만 내겠다고 알렸습니다.. 2008. 4. 19.
무얼 이야기하러 그렇게 돌아다니나? 저는 자주 강의를 하러 다니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강의의 내용이 특이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현장 교육에서 기본이 되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어서 제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그 내용을 밝힙니다. 이제 저는 교육자로서의 길에서 떠나야 할 때가 가까이 왔으므로 이 강의초를 바꾸거나 더 다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이 기회에 한가지 덧붙이면, 어떤 교장은 자기네 학교에 와서 강의 좀 해달라고 하는데, 사실은 같은 교장으로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상당히 용기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 교장이 와서 우리 교사들에게 떠들어도 나는 그 결과를 다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교사들을 잘 지휘할 수 있다'는 생각 없이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 2008. 4. 18.
뉴질랜드로 유학 간 D의 어머니께 “교장선생님, 저 지금 비행기 탑승합니다. 가서 멜 하겠습니다.” 2006년 7월 11일 저녁에 보내신 메시지입니다. 저는 복사꽃 찬란한 이듬해 봄은 그 학교에서 보내고, 올해의 이 봄날은 이 학교에 와서 보내고 있습니다. 두 자녀가 운동이나 활동적인 학습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잘 적응한다는 소식을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읽었습니다. 가을 축제 때 난타 지휘를 해서 그 학교 온 가족의 마음을 한데 모으던 4학년 D가 수학문제를 풀며 마음을 졸이던 그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게 그리 쉽지 않은 줄 알면서도 담임이 그까짓 수학공부 좀 제대로 하도록 간단히 지도해줄 수 없는지 답답했었습니다. 말없이 미소 짓던 J, 그 애의 표정도 떠오릅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크고 시원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아주던 J, 체육시.. 2008. 4. 17.
하인스 워드를 위한 감사패(경기신문080415) 하인스 워드를 위한 감사패 2006년 4월, 한․미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다. 그는 30년간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하며 지낸 것을 사과했고, “나는 슈퍼볼 MVP지만, 어머니야말로 나의 진짜 MVP”라는 효성어린 말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언론은 혼혈인에 대한 시각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 2008. 4. 15.
학교의 '회의문화' 요즘 우리 교육계를 바라보는 시각 중의 한 가지가 '우리나라 교사에게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을 옹호하여 찬사를 들으려는 가벼운 입장에서의 방어논리를 펼쳐보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도대체 우리에게 왜 경쟁력이 없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생각하면 아무래도 억울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입니다. '경쟁력'이라니요. 그 용어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로서는 우선, 우리에게 경쟁력이 없어지도록 한 제도와 문화가 원망스럽습니다. 그 주요 요인이 바로 문서상의 실적 위주로 평가를 하게 된 교육행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문서 중에서는 이 가장 중요한 문서인데도 오늘날 그것보다 중시되는 문서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것조차 은 만드는 데 혈안이 될 뿐 그 이후의 실천이나 평가, 피드.. 2008. 4. 12.
교육의 큰 그림도 필요하다 이 글은 <경기신문> 2008년 4월 1일자 시론의 원고를 일부 수정하고 부분적으로는 더 구체화한 것으로, 한국교과서연구재단에서 발행하는 저널 <교과서연구> 제53호(2008. 4)의 권두언입니다. 저는 2005년부터 이 저널의 편집기획위원장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기구를 개편하.. 2008. 4. 12.
세 월(Ⅱ) 지나는 길의 개나리가 이야기합니다. "봐, 노랑이란 바로 이런 색이야." 누군가 모를 무덤가에는 진달래가 곱습니다. 멀리에서 복사꽃도 담홍색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복사꽃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1960년대나 70년대의 그 정서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가 나만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봄꽃들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곧 아지랑이 피어오를 봄을 ‘희망’만으로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에게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그 희망이 잔인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린애들이나 소년소녀들은 저 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란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얼굴이 무너지고 마음이나 정서도 그만큼 누추해져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2008. 4. 9.
세 월 (Ⅰ) : 나의 일생 살다 보니까, 산다는 것의 리듬이, 생각 없이 자고난 겨울날 새벽 창밖에 쌓인 눈의 경이로움 같은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겨울이 와도 그만이고 가도 그만이고, 그래서 플라타너스 -가로등을 배경으로 서 있는 봄날 초저녁의 그 싱그러운 자태- 를 보아도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어느 날 이번에는 여름이 와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산의 온갖 푸나무가 초록을 넘고 넘어 숨차도록 푸른데도 동해 - 그 그리운 바닷가에 갈 일이란 전혀 없어져버리고, 그 다음에는 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여, 추억에 젖어 ‘사계(四季)’나 ‘무언가’(無言歌, 멘델스존) 그런 음악을 들어보는 일도 우습고 웬지 좀 부끄럽기도 하고 차라리 시시하게 .. 2008.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