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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59

그대와 나 ⑸ 가지고 온 걸 다 받아냈다. 할 수 있는 일 다 하게 했고 마침내 할 수 없었던 일들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중이다. 2018. 10. 29.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1 '염라국 입국 안내서'를 보면1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까지 진광대왕전(염라국 첫 번째 건물)에 가면, 생전에 생명을 어떻게 대했는지 따지게 되고, 죽은 지 14일째 되는 날까지 초강대왕전(삼도천 너머)에 가서 저울로 죄의 무게를 달아보게 되고, 죽은 지 21일째 되는 날까지 송제대왕전(업관 너머)에 가서 거짓된 말과 행동에 대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고, 죽은 지 28일째 되는 날까지 오관대왕전(송제대왕전 맞은편 뜨겁고 큰 강 너머)에 가서 죄의 무게에서 착한 일의 무게를 덜게 되고, 죽은 지 35일째 되는 날까지 염라대왕전(염라국 한가운데)에 가서 죄를 변명할 기회를 갖게 되고(단, 사정이 있었을 경우에만), 죽은 지 42일째 되는 날까지 변성대왕전(염라국에서 걸어서 이레가 걸리는 바윗길 끝)에 .. 2018. 10. 25.
「추운 아침」 추운 아침 내 입에서 하얀 꽃이 피네요. 친구들의 입에서도 꽃이 피네요. 포옥 포옥 꽃이 피네요. 지금도 옛 교사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거나 꿈을 꾸거나 합니다. 그런 일들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그건 다행입니다. 일전에는 꿈 속에서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어본 동시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50년 전의 일입니다. 그 3연의 정체는 거의 정확할 것이라는 확신까지 주었는데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동시'라고 하기에는 쑥스럽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 이어지는 심상(心想)에 조금만 가까이 간 상태를 보여주어 아이들도 한 편의 시를 써보게 하고 싶었을 것이었습니다. 가브리엘 루아의 소설 『내 생애의 아이들』에서 본 문장이 생각나서 .. 2018. 10. 23.
수컷 기질 암컷 기질(데즈먼드 모리스 흉내내기) 1 저기쯤 아직 조금밖에 삭지 않은1 남녀 한 쌍이 보입니다. 암컷은 수컷의 팔짱을 끼었고 둘은 보조를 맞추어 걸어오고 있습니다. 암컷은 계속 뭔가를 이야기하고 수컷은 분명 가장(假裝)한 과묵으로 듣기만 합니다. 나를 보고도 비켜 걸을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고, 그 상황을 조금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2 그것들이 마침내 두어 걸음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컷은 줄곧 내 눈길을 살폈습니다. 내가 제 암컷을 훔쳐보지나 않는지, 제 암컷이 예쁘고 몸매도 죽여준다는 걸 확인하지나 않는지 감시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눈길은 결코 순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란히 걷는 상황에서 그 수컷이 제 암컷의 눈길까지 살필 수는 없으므로 마주보는 내 눈길을 확인하는 것만이 가능한 방어가 될 것이었습니다.. 2018. 10. 13.
포비엔 풍경 "포비엔" 풍경 한정식집 하나 없는 곳이어서인지 손님이 많다. 음식을 기다리며 막연하게 베트남을 생각하고, 가본 적도 없는 나라들도 생각해보고 벽면이나 천정의 장식에서 무언가를 찾아본다. 이런 것도 마침내 끝날 것이다. 우리의 정부, 회사, 대중매체, 종교 기관, 자선 단체들이 아.. 2018. 10. 8.
영화 "베테랑" 텔레비전에서 영화 "베테랑"을 보았습니다. 《다음영화》에 소개된 줄거리입니다. 한 번 꽂힌 것은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서도철'(황정민), 20년 경력의 승부사 '오팀장'(오달수), 위장 전문 홍일점 '미스봉'(장윤주), 육체파 '왕형사'(오대환), 막내 '윤형사'(김시후)까지 겁 없고, 못 잡는 것 없고, 봐주는 것 없는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수사대. 오랫동안 쫓던 대형 범죄를 해결한 후 숨을 돌리려는 찰나, 서도철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만나게 된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안하무인의 조태오와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는 오른팔 '최상무'(유해진). 서도철은 의문의 사건을 쫓던 중 그들이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직감한다. 건들면 다친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서도철의 집념에 판은 .. 2018. 10. 3.
거미 거 미 딴에는 날쌘 녀석, 날개가 걸렸습니다. 주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잔인한 표정으로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을까요? 맛있는 부위를 골라 점심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는 중일까요? 아니면 먹다가 먹다가 지쳐서 잠시 쉬고 있을까요? 미동도 없는 흉칙한 것. 어떤 .. 2018. 9. 30.
낙서 찾기 어느 것이 낙서일까, 잠시 딴 생각을 했습니다. 그 딴 생각을 따라가면 저것들보다 더 수치스러운 낙서가 나타날 것 같았습니다. 그딴 낙서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을까, 또 딴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 9. 27.
아내와 나의 대결 나는 컵을 '이렇게!'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렇게!'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놓아야 위생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내는 '저렇게!' 놓아야 위생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나는 아내가 주장하는 방법으로 놓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위생적인 점을 지적합니다. 아내는 내가 주장하는 방법으로 놓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위생적인 점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내가 컵을 관리할 때는 내가 주장하는 방법으로 놓았습니다. 아내는 아내가 컵을 관리할 때 아내가 주장하는 방법으로 놓았습니다. 아내는 내가 놓은 컵을 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고쳐놓았습니다. 나도 아내가 놓은 컵을 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고쳐놓았습니다. 나는 3이나 4로 놓는 방법도 생각해.. 2018. 9. 22.
안동립 선생의 독도 사랑 컴퓨터 바탕 화면 배경 사진입니다. 이전의 사무실에 나갈 때는 거기서도 이 사진으로 설정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도 전문 출판사 '동아지도' 안동립 사장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입니다. 그는 '독도지기'쯤으로 불려야 할 사람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독도에 가서 사진도 찍고 지도 제작 자료도 수집하면서 그곳 주민 김성도 씨 댁에서 며칠씩 지내다 온다고 했습니다. 독도의 어느 바위섬에 자의적으로 이름을 붙여 지도를 그렸다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혼쭐이 나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결국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찍은 수많은 사진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무료 전시회도 열어주고 있습니다. 독도 지도, 독도 식생 지도 등.. 2018. 9. 8.
아파트 마당의 소음 초저녁에나 늦은 밤에나 아파트 마당에서 도란거리는 소리는 한적한 어느 호텔, 아니면 펜션에서 들었던 그 소음처럼 들려옵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던 그 대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러면 나는 제시간에 먼저 잠자리에 들 때처럼 혹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슬며시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지만 그건 지난여름이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떠오르고 또 떠오르는, 그러나 점점 스러져가는 느낌입니다. 이 저녁에는 바람소리가 낙엽이 휩쓸려가는 소리로 들리고 사람들이 도란거리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든 속절없이 떠나야 할 여름의 서글픈 저녁입니다. 2018. 9. 6.
달력 몰래 넘기기 1 달력을 넘기려고 하면 섬찟한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뭐가 이렇게 빠르지?' 붙잡고 있는 걸 포기해버리고 싶고, 아니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이내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어쩔 수 없지.' 2 '또 한 달이 갔어? …… 우린 뭘 했지? ……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털어내야 할 것들,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 해결해야 할 것들…… 온갖 것들이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내가 그렇게 따지고 들 것 같은 초조감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런 질문들이 점점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3 그런 '숙제'가 싫습니다. 해결되거나 말거나 정리할 게 있거나 말거나 그냥 지내면 좋겠습니다. 덥거나 말거나 언제까지나 8월이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으면 그만이겠습니다. 이 .. 2018.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