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62 저 강물에서 떠내려가다가 서로 만나듯 1 "그날이 그날"이라더니 어느 날이나 휴일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멀쩡한 날'을 잠깐씩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착각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는 것이죠. 2 세월의 흐름을 실감합니다. 함께 근무하다가 헤어지고, 헤어지고, 또 헤어지고 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을 다시 만난다는 건 여간해서는 어렵습니다. 하릴없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좀 만나자고 하는 건 무조건 우스운 일이고, 무엇보다 나를 끔찍해할 것 같고, 혹 그렇진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아주 바쁘고 좀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저렇게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그저 잠깐씩 만났다가 헤어지고 하는 것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미물(微物)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이니, 거기에 관한 무슨 철학이나 있는 것처럼 다시 .. 2019. 1. 30. 윤문(潤文) 1 윤문 요청이 왔습니다. 초등학교 수석교사인데 어느 신문에 기고할 글이라고 했습니다. 윤문은 귀찮은 일입니다. 심지어 내 글조차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마침내 송고하게 됩니다. 남의 글 윤문이라니, 잘해서 빛나는 글이 되어봤자 내 이름이 빛날 것도 아니고, 좋은 글이 되었다며 원고료 일부를 받으라고 할 리도 없습니다. 원고료가 탐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귀찮을 뿐입니다. 2 윤문 요청이 왔을 때 싫건 좋건 거절한 기억도 없습니다. 상대방이 보면 별 것도 아닌 일로 관계를 끊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상황대로 일을 해서 부치게 됩니다. '상황대로'라는 표현은 이 경우에는 중요한 말입니다. 원고가 90점짜리이면 적어도 95점짜리를 .. 2019. 1. 26. 하루 하루 하루 하루 2018.11.12. 2019년 1월 20일(일요일). 흐림. 저녁에 양치질을 하며 양치질을 참 자주도 하는구나, 오늘은 양치질 말고 무얼 했는가 싶었습니다. 이불을 펼 때는 하루 전에 이불을 폈던 일이 잠시 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러다가 아무래도 곧 봄이 오고야 말 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 2019. 1. 21. 세상의 불합리한 일들 "편간회"라는 이름의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그 모임의 열 명 중 내 나이가 제일 적습니다. 그러니까 싫든 좋든 잘났든 못났든 '조만간(早晩間)' 떠날 사람들입니다. 한참 식사를 하는 중에 두 명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어서 황당하다 싶었습니다. 다 선배들이고 해서 어색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참만에 서로 사과했습니다. 친구 간에 저렇게 정중할 수 있나 싶은 사과였습니다. 일들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물론이고 거리에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정의(正義)'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져서 힘이 없는 처지에서는 분통을 터뜨리는 일밖에 할 일이 없고, 점점 성질머리만 나빠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차라리 잘된 일일 것입니다.. 2019. 1. 20. "세균이 많으세요" "행주는 깨끗해 보여도 알고 보면 세균이 상당히 많으세요." 어느 공영방송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참 희한한 말이었습니다. "세균님! 왜 그렇게 많으셨어요?" 희한한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2019년 1월 3일 오후였습니다. 2019. 1. 6.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 젊음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겠느냐?"란 물음을 듣기도 합니다. 남편이 옆에 있어도 "다시 태어나기나 하겠어요?" 대답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한 세상 다시 살고 싶기는 합니다. 그때가 중학생 때로 다시 태어나서 한 세상 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것의 터전이 되는 기본을 배우는 시기라 생각하기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1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꼭 찾아가는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그 글의 끝부분입니다. 혹 누(累)가 될까 싶어서 단서 같은 건 감추었습니다. 글이 탑재된 지 한 철이 지났는데도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요? 그분의 진솔한 어떤 글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서정가抒情歌』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나지막하게, 이슬비 내리.. 2019. 1. 4. 시화동원 詩畵同源 2018.12.26(수) 영등포 왕수이자오의 『소동파 평전』에서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논하는데 형체를 그대로 본뜨기를 주장한다면……". '아니,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 부분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금 이 문장이 정말 그렇게 쓰인 것인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움'이란 부끄럽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동양화, 그러니까 우리나라나 중국 같은 나라들의 옛 그림(물론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일단 옛 동양화), 그 동양화를 감상해본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 화풍이 다양하다는 건 상식인데 어떻게 해서 나는 옛사람들은 사물을 사진 찍듯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 2018. 12. 28. 엄연한 '노후' 1 날씨가 좀 풀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마나입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고, 이제 집에 들어가도 좋은 시간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걸 감추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렇긴 하지만 할아버지도 굳이 그걸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마나일 것입니다. 2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무저갱입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해도 금방금방 까무루해집니다. 그렇게 까무룩해져서 아래로, 그 아래로,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를 구렁텅이로 자꾸자꾸 내려갑니다. 많이 내려가면 정신을 차려봤자 다 올라오지도 못한 채 또 까무룩해집니다. 누가 먼저 떠나면 어떻게 하나, 그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는 그 문제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결론이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얘.. 2018. 12. 23. "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與汝定何親)"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시를 '화도시(和陶詩)'라고 한다는데 소동파는 120여 수에 달하는 화도시를 남겼다고 한다. 『소동파 평전(왕수이자오)』에는 「도연명의 '잡시' 11수에 화운하여」(和陶雜詩十一首)가 소개되어 있었다.1 비낀 햇살이 좁은 틈을 비추자비로소 공중에 티끌이 있음을 아네.가벼운 바람이 모든 구멍에 부니누가 내가 내 몸을 잊었음을 믿으랴. 한번 웃으며 막내아들 과過에게 묻노니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나를 따라 해남 땅으로 와깊숙이 단절되어 사방에 이웃도 없다. 반짝반짝 이지러진 그믐달같이홀로 장경성(금성)과 함께 새벽이 되네.내 사는 길 진실로 이러하니남을 원망하거나 탓해선 안 되리. 斜日照孤隙, 始知空有塵.微風動衆竅, 誰信我忘身.一笑問兒子, 與汝定何親.從我.. 2018. 12. 9. 전화번호 정리 1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전화기에는 수백 명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고 그 번호들은 '리얼타임'으로 쓰이고 있는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단한 사람들 얘기이긴 하지만 대단하지 않은가 싶었다. 내 전화기에는 몇 명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을까? 많지 않다. 대부분 지금 쓰이고 있는 번호도 아니다. 정리해버려야 한다. 내가 덜컥 죽게 되면 적어도 이 사람들에게는 나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꼴이겠는가! 2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죽은 사람이 문자 메시지로 내게 부고를 보내는 것이다. "내가 죽었으니 내일까지(모레 아침에는 장지로 떠나니까) ○○ 병원 장례식장 ○ 호실로 찾아오라!" 유족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혹은 편리하고 유용한 방법을 이용한 것이지만,.. 2018. 12. 2. 이매진(john lennon IMAGINE) 1 히피 운동은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주장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의 위계질서나 수직적 계층 구조를 부정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으며, 돈과 권력의 집중화에 반기를 들고,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인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자발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인간성을 회복하며 사는 사회, 이 우주와 하나가 되어 일체감을 만끽하는 상태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에 나오는 가사 그대로였습니다. 정재승의 책 『열두 발자국』(어크로스, 2018)1을 읽다가 '존.. 2018. 11. 29. 에이, 바보! 눈이 오잖아! 에이, 바보! 눈이 오잖아! 선물처럼 내리는 눈을 뭉쳐 선물처럼 안고 가는 아이 1 아파트로 올라오는 길섶과 소공원은 어수선합니다. 잔치가 벌어졌던 이튿날 아침의 마당같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찬란한 빛깔이던 낙엽이 여기저기 수북수북 쌓여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여서 .. 2018. 11. 24.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