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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저 강물에서 떠내려가다가 서로 만나듯

by 답설재 2019. 1. 30.

 

 

 

 

 

 

1

 

"그날이 그날"이라더니 어느 날이나 휴일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멀쩡한 날'을 잠깐씩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착각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는 것이죠.

 

 

2

 

세월의 흐름을 실감합니다.

함께 근무하다가 헤어지고, 헤어지고, 또 헤어지고 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을 다시 만난다는 건 여간해서는 어렵습니다.

하릴없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좀 만나자고 하는 건 무조건 우스운 일이고, 무엇보다 나를 끔찍해할 것 같고, 혹 그렇진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아주 바쁘고 좀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저렇게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그저 잠깐씩 만났다가 헤어지고 하는 것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미물(微物)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이니, 거기에 관한 무슨 철학이나 있는 것처럼 다시 만나고 어쩌고 한다는 건 자연스럽지도 않은 일일 것입니다.

 

 

3

 

공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오늘, 맑고 포근한 날, 12년 만에 혹은 14년 만에 나를 찾아온 세 사람의 교사와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들이 있는 학교에 교장이 되어 갔을 때 나는 학교라는 사회가 내가 교사였을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195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닐 때와 비교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았고, 그걸 바꾸고 싶었습니다.(가령)

"왜 아이들이 손을 들어서 의사표시를 해야 발표할 수 있습니까?"

"왜 지명을 받아서 발표해야 합니까?"

"왜 아이들이 똑바로 서서 발표해야 합니까?"

"왜 큰소리로 발표해야 합니까?"

"왜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발표를 해야 합니까?"…….

 

당연한 걸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나를 보고 그들은 미칠 지경이었는지 몰라도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4

 

그중 젊은 교사는, 그때, 자꾸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날에 초임교사로 만났을 때 내가 한 이야기들을 지금에 와서 비로소 상기(해석)하곤 한다고 했고, 한 명은 독서에 관한 우리의 메시지를 상기하며 '슬로 리딩' 수업으로 EBS 방송에 여러 번 나왔고 또 "교사를 위한 슬로리딩 수업사용설명서"라는 책을 내어 3판까지 찍었다고 했고, 또 한 명은 전근 간 학교에서 나와 함께한 경험으로 가르치려다가 '완전 또라이'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싱킹 디자인(thinking design)"이라던가 뭐라던가 그런 걸 주제로 해서 곧 책 한 권이 나올 예정이고 제주도 등 여러 곳에 강의도 다닌다고 했습니다.

 

 

5

 

나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떠오른 그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저 강물 속의 미물(微物)이라면 저렇게 떠내려가다가 '완전히' 헤어졌는데 이렇게 잠시 또 스치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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