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
"병풍입니다."
탁자 위에 놓으며 딱 그 말씀뿐이었는데, 놀랍고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더니 몇몇 선배들이 "받아도 된다" "받아야 한다" "우리도 전에 받았다"고 해서 얼떨떨한 상태에서 받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 선배들과 어느 호숫가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로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하다가 세월만 갔습니다.
그 전이나 이후로나 우리는 철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식사를 했는데 더러 다과를 사드리긴 했지만 고마움을 표시한 적도 없었습니다.
병풍을 만든 가게 주인에게 90대 중반의 선배님이 써주었다고 했더니 아주 잘 쓴 글씨라기보다는 노령의 선비가 최선을 다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점에 대해서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것쯤은 나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일 것이었습니다.
돈으로 인사를 한다고 하면 얼마쯤이 적당할까?
무슨 물건으로 성의를 표시한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
아, 그러다가 말았습니다.
선배님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나는 병풍을 펼 때마다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노고를 더듬어봅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금까지도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이라도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돈으로?
물건으로?
…….
어쩌면 나의 '욕망'이라는 게 그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허망한 수준인가 싶기도 해서 한결같이 온화하고 말씀조차 늘 정돈되었던 그 선배님께 송구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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