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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전화번호 정리

by 답설재 2018. 12. 2.

 

올해의 달력이 또 한 장만 남았다.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다는 것인지…

 

 

1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전화기에는 수백 명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고 그 번호들은 '리얼타임'으로 쓰이고 있는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단한 사람들 얘기이긴 하지만 대단하지 않은가 싶었다.

 

내 전화기에는 몇 명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을까?

많지 않다. 대부분 지금 쓰이고 있는 번호도 아니다. 정리해버려야 한다.

내가 덜컥 죽게 되면 적어도 이 사람들에게는 나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꼴이겠는가!

 

 

2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죽은 사람이 문자 메시지로 내게 부고를 보내는 것이다.

"내가 죽었으니 내일까지(모레 아침에는 장지로 떠나니까) ○○ 병원 장례식장 ○ 호실로 찾아오라!"

 

유족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혹은 편리하고 유용한 방법을 이용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다! 자신이 죽었다고? 와서 애도하라고?

 

다른 사람이 부고를 전해서 '그가 죽었구나……' 했다가 얼마 후 내 전화기에서 이름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연락을 하려고 전화번호를 이렇게 저장해놓고 있었단 말인가! 만약 그 번호로 된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 어떤 미련 같은 걸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3

 

시급하다. 미련을 부릴 일이 아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덜컥 눕게 되어 아무래도 내가 일어나지 못하겠구나, 죽고 말겠구나 싶으면 그나마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전화기를 달라고 해서 얼른 모든 전화번호를 없애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겠다.

 

내 전화번호는 지금 몇 사람에게 저장되어 있을까?

나는 지금 그들에게 생생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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