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바보! 눈이 오잖아!
선물처럼 내리는 눈을 뭉쳐 선물처럼 안고 가는 아이
1
아파트로 올라오는 길섶과 소공원은 어수선합니다. 잔치가 벌어졌던 이튿날 아침의 마당같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찬란한 빛깔이던 낙엽이 여기저기 수북수북 쌓여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여서 우리는 토, 일요일 이틀 동안에는 얼굴도 못 보기 일쑤입니다. 녀석은 주말이 즐거울까요? 나는 다음 월요일 아침을 생각하며 걷습니다.
"눈은 언제 와?"
녀석이 갑작스레 물었습니다.
"글쎄……."
"대충 언제쯤이야?"
순간, 며칠 안으로는 눈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이거 참 난처하다 싶어서 애매하게 느껴질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일단 저기압이 몰려와야 눈이 올 텐데?"
"아, 그 저기압이 언제 몰려오냐고!"
"모르겠어. 일기예보를 봐야 알겠는데……."
2
이런, 바보!
"어디 보자!" 하고 스마트폰 상단의 일기예보 아이콘을 클릭하면 정보가 주르륵 쏟아지는데……. 거기엔 일주일치 장기예보도 보기 좋게 제시되어 있는데……. 심심하면 열어보는 그것이 그 시간에는 왜 생각나지 않았는지……. 아침 뉴스 시간에 서너 번씩 등장하는 그 기상 캐스트만 생각났는지……. 스마트폰은 왜 갖고 다니는지……. 바보라는 걸 증명하려고?
나는 녀석과 녀석의 담임 선생님 앞에만 서면 늘 '바보'가 되고 맙니다. 그런대로 돌아가던 머리가 아주 '팽' 돌아버리거나 '콱!' 막혀버립니다.
3
녀석이 실망했겠지요?
'할아버진 별 수 없군. 도대체 쓸모가 별로 없단 말이야! 어제는 바람 부는 날 솜사탕은 온갖 먼지가 다 들러붙는다고, 마치 독약을 먹는 거나 같다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을 타고 마녀도 따라와 솜사탕에 들러붙을지 모른다고 귀에 대고 얘기하더니만…… 솜사탕은 구경 뿐이고 허구한 날 쿠기, 요구르트, 에이, 지겨워!'
저기압 따위는 경비실 옆을 지나며 이야기했고, 소공원을 가로질러 오르는 계단을 녀석은 단숨에 뛰어올라서 헉헉거리며 따라가는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녀석은 어떤 생각을 더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눈 같은 건 곧 잊고 말았습니다. 치매 전조 현상만 아니면 좋겠는데…….
4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무슨 첫눈이 곧장 함박눈이 되었고, 한 시간쯤 지나자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녀석은 무얼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눈 오는 걸 내다보고 있겠지? 아니야, 이미 밖으로 나갔겠지?'
'지금 이 시간에는 내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아니야! 이제 눈 내리는 날만 되면 내가 생각나는 건 아닐까? 심지어 내가 죽은 다음에도?'
― 바로 이튿날 눈이 쏟아지는 것도 알지 못했던 나의 바보 할아버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도 그냥 쩔쩔매기만 한 불쌍한 나의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