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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與汝定何親)"

by 답설재 2018. 12. 9.






"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與汝定何親)"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시를 '화도시(和陶詩)'라고 한다는데 소동파는 120여 수에 달하는 화도시를 남겼다고 한다. 『소동파 평전(왕수이자오)』에는 「도연명의 '잡시' 11수에 화운하여」(和陶雜詩十一首)가 소개되어 있었다.1



비낀 햇살이 좁은 틈을 비추자

비로소 공중에 티끌이 있음을 아네.

가벼운 바람이 모든 구멍에 부니

누가 내가 내 몸을 잊었음을 믿으랴.


한번 웃으며 막내아들 과過에게 묻노니

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

나를 따라 해남 땅으로 와

깊숙이 단절되어 사방에 이웃도 없다.


반짝반짝 이지러진 그믐달같이

홀로 장경성(금성)과 함께 새벽이 되네.

내 사는 길 진실로 이러하니

남을 원망하거나 탓해선 안 되리.


斜日照孤隙, 始知空有塵.

微風動衆竅, 誰信我忘身.

一笑問兒子, 與汝定何親.

從我來海南, 幽絶無四.

耿耿如缺月, 獨興長庚晨.

此道固應爾, 不當怨尤人.



  왕수이자오는 소동파가 해남 유배 생활 중에 쓴 이 시를 포함한 그의 화도시에 대해 심원하고 담박하여 도연명의 면목과 아주 흡사하며, 선인들은 흔히 이들 화도시를 소식의 시(詩) 예술의 최고봉으로 높였다고 하였다.2


  내가 소식의 문학이 이처럼 훌륭했다는 얘기를 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사실은 그가 자식에 대해 이와 같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부러웠다. 하기야 애정이 없는 애비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옛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애정 표현이 어색한 것일 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색하다기보다는 그런 건 하지 않았을 줄 알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자식에 대해 귀하게 여기는 마음 같은 건 겉으로 드러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라도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與汝定何親."

  그래서 그 옛날에 이미 이렇게 표현하며 살아간 소식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2018.11.30.








  1. 261~262. [본문으로]
  2. 그러나 소식은 숙련된 기교가 있었기 때문에 화운이라는 제약에 관계없이, 시의 내용이 풍부하고 맛이 좋은 시를 짓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으나 도연명 시에 화운한 시가 100여 수나 된다는 사실은, 그가 재주를 드러내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묘기를 보이려고 자승자박에 빠졌음을 얘기해 주는 것이고, 또한 왕약허가 소식 자신이 시적 재주를 낭비시킨 것을 애석해함도 생각 못할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이 책 266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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