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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시화동원 詩畵同源

by 답설재 2018. 12. 28.

                                                                       2018.12.26(수) 영등포

 

 

 

왕수이자오의 『소동파 평전』에서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논하는데 형체를 그대로 본뜨기를 주장한다면……".

'아니,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 부분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금 이 문장이 정말 그렇게 쓰인 것인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움'이란 부끄럽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동양화, 그러니까 우리나라나 중국 같은 나라들의 옛 그림(물론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일단 옛 동양화), 그 동양화를 감상해본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 화풍이 다양하다는 건 상식인데 어떻게 해서 나는 옛사람들은 사물을 사진 찍듯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 시에서는 단순히 '형사'形似(형태의 닮음)만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하여, 시와 그림은 그 근원이 같다는 시화동원詩畵同源의 예술 이론을 전개했다.

 

그림을 논하는데 형체를 그대로 본뜨기를 주장한다면
그 견식은 아이들처럼 유치한 것
시를 짓는데 반드시 이 시라야 한다면
정녕코 시를 아는 사람이 아니리라.
시와 그림은 본래 이치가 같은 것
천연스럽고 또한 청신해야 한다.

論畵以形似, 見與兒童鄰.
賦詩必此詩, 定非知詩人.
詩畵本一律, 天工與淸新.1

 

 

왕수이자오가 소동파의 예술론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왕유王維의 시를 평론하면서, "마힐(왕유의 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 「왕마힐의 '남전연우도'에 쓰다」書摩詰藍田烟雨圖)라고 했다. 또 시 「한간이 그린 말」(韓幹馬)에서 "두보의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요/한간의 채색한 말 그림은 말없는 시"(少陵翰墨無形畵, 韓幹丹靑不語詩)라고 했다. 이 모두 시와 그림은 본래 한가지 이치(詩畵本一律)임을 설명한 것이다.2

 

나는 오늘도 길을 걸으며 "시화동원詩畵同源" "시화본일률詩畵本一律"…… 쓸데없이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

1. 왕수이자오 『소동파 평전』(조규백 옮김, 돌베개, 2013), 204~205.
2. 이 책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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