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6(수) 영등포
왕수이자오의 『소동파 평전』에서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논하는데 형체를 그대로 본뜨기를 주장한다면……".
'아니,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 부분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금 이 문장이 정말 그렇게 쓰인 것인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움'이란 부끄럽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동양화, 그러니까 우리나라나 중국 같은 나라들의 옛 그림(물론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일단 옛 동양화), 그 동양화를 감상해본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 화풍이 다양하다는 건 상식인데 어떻게 해서 나는 옛사람들은 사물을 사진 찍듯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 시에서는 단순히 '형사'形似(형태의 닮음)만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하여, 시와 그림은 그 근원이 같다는 시화동원詩畵同源의 예술 이론을 전개했다.
그림을 논하는데 형체를 그대로 본뜨기를 주장한다면
그 견식은 아이들처럼 유치한 것
시를 짓는데 반드시 이 시라야 한다면
정녕코 시를 아는 사람이 아니리라.
시와 그림은 본래 이치가 같은 것
천연스럽고 또한 청신해야 한다.
論畵以形似, 見與兒童鄰.
賦詩必此詩, 定非知詩人.
詩畵本一律, 天工與淸新.1
왕수이자오가 소동파의 예술론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왕유王維의 시를 평론하면서, "마힐(왕유의 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 「왕마힐의 '남전연우도'에 쓰다」書摩詰藍田烟雨圖)라고 했다. 또 시 「한간이 그린 말」(韓幹馬)에서 "두보의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요/한간의 채색한 말 그림은 말없는 시"(少陵翰墨無形畵, 韓幹丹靑不語詩)라고 했다. 이 모두 시와 그림은 본래 한가지 이치(詩畵本一律)임을 설명한 것이다.2
나는 오늘도 길을 걸으며 "시화동원詩畵同源" "시화본일률詩畵本一律"…… 쓸데없이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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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수이자오 『소동파 평전』(조규백 옮김, 돌베개, 2013), 204~205.
2. 이 책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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